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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내 아이의 손, 때로는 놓아라…'세상의 엄마들이 가르쳐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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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현대사회의 맞벌이 부부들에게 육아가 '전쟁'이 되면서 불거진 여러 갈등 가운데 하나가 아이를 맡아주는 친정엄마 또는 시어머니와 양육 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일이다. "너희들도 다 이렇게 컸어!"라고 주장하는 어머니 세대와 "요즘은 그렇게 키우면 안 돼요!"라고 맞받아치는 신세대 엄마들의 대립에는 육아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의 차이가 깔려 있다. 아이의 수면 습관부터 우는 아이를 어르는 방식, 이유식에 들어가는 재료 선택에 이르기까지, 부모 세대의 전통적 가르침뿐만 아니라 홍수를 이루는 육아 정보와 상품 속에 부모는 깊은 혼란에 휩싸인다.

신간 '세상의 엄마들이 가르쳐준 것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시행착오를 따뜻하고도 치밀한 시선으로 공유한다. 우선 아이들을 재우고 먹이는 일에서 출발한다. 미국에서는 아기가 부모와 함께 자는 것이 위험할뿐더러 독립적으로 자라는 데 방해가 된다는 믿음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미국 가정에는 일종의 '취침 의례'라는 것이 있어 부모는 아이가 두려움을 떨칠 때까지 옆에서 책을 읽어주고, 물건 하나하나에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게 한다. 아이는 푹신푹신한 인형에 둘러싸여 안도감을 확보한 뒤 '이행 대상(영아가 어머니와 동일시해 애착을 부여하는 낡은 담요 같은 것)'을 손에 쥔 뒤에야 잠들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오랜 관행을 거슬러 원점으로 돌아간다. 실제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초보 부모들이 토로하는 육아의 가장 무거운 고충이 아이의 수면 습관에 관한 것인데, '어디든 아기가 가장 편히 잘 수 있는 곳에서 방법에 얽매이지 말고 재우라'는 단순명료한 해법, 심지어 아이가 꾸벅꾸벅 존다면 졸게 내버려둬도 된다는 위로(!)는 아이의 울음에 밤새 전전긍긍하다 파리한 안색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부모들에게는 '구원'과 같다.
세상의 엄마들이 가르쳐준 것들

세상의 엄마들이 가르쳐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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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 2세인 저자는 역시 이민 가정에서 자란 유대계 미국인 남편을 따라 두 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두 명의 아이들을 더 낳았다. 이질적인 문화 사이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또다시 다문화가정의 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 저자는 동서양의 스펙트럼을 유연하게 넘나들면서도 객관성과 균형을 잃지 않는다. 식습관 교육을 일본인과 미국인의 관점에서 각기 바라보는 시선도 흥미롭다. 미국 아이들 세 명 중 한 명이 과체중이나 비만을 겪고 있으며 이는 가공식품의 편리성에 익숙해진 우리나라의 젊은 부모들에게도 이미 경고등이 켜진 이야기다. 식사에 '공을 들이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은 미국에서는 격식 없는 식사를 허용하는 분위기가 있는 반면, 일본의 식사는 '나는 반듯이 앉아서 정성껏 차려진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특별한 의식이다. 이는 음식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영양분'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사회적 공감대와 정책적 지원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프랑스의 사례를 들어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훌륭한 점심식사를 제공하면서 삶의 기쁨을 가르치는 것은 부유한 계층 아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아이를 어디까지 칭찬하고 어디서부터 혼내야 하는가'라는 의문도 모든 부모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다. 어떤 부모들은 '기를 죽이면 안 된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나무라는 것을 극도로 삼간다. 그러나 아이에게 '네가 잘못했다'는 인식을 일깨우지 않고 칭찬만 거듭함으로써 주어지는 자존감은 상당히 왜곡된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제한 없는' 칭찬은 아이들에게 '너의 개인적 성취가 타인과 조화하는 삶보다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함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는 공허한 칭찬과 격려로 자녀의 동기를 약하게 만들기보다는 아이가 도전에 맞서고 실패를 성장의 동력으로 받아들이도록 지지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타인이 자기에게 어떠한 꼬리표(칭찬 또는 비난)를 붙였는지에 연연하지 않는 '내재적 동기'로 자신의 삶을 이끌게 된다.

아이에게 한껏 관여하는 교육이 사랑이라고 여기는 미국식 양육법에 젖어 있던 저자가 '과잉보호'를 경계하게 된 경위도 소개된다. 저자는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아이들의 싸움을 보고도 말리지 않는 유치원 교사를 보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아이들의 싸움이 마치 예방접종처럼, 사회적 충돌에서 회복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판단했다. 싸움을 포함한 가상의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악인이나 영웅 역할을 해보면서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또한 자기 한계를 조금씩 넓히는 위험한 경험을 통해 한 번에 조금씩 두려움에 익숙해지고 이것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도 배운다. (가벼운 상처 같은) 지각된 위험을 너무 염려한 나머지 실제로는 (활동량이 적은 실내 놀이에서 오는 비만 같은) 더 큰 위험으로 아이들을 밀어넣고 있는 상황을 '잉여 안전성(surplus safety)'이라고 하는데, 잉여 안전성 속에서 성장한 아이가 열 여덟 살쯤 됐을 때 갑자기 전권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험이라는 분석은 의미심장하다.

저자의 한 친구는 자기 아이들을 저자의 집에 맡길 때 나무에 오르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단다. 저자는 이러한 염려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마음속으로 간절히 말한다. “저 아이들도 나무에 오르고, 다음 가지로 이동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어디까지 올라가야 좋을지 결정하고, 나뭇가지에 앉아 갑자기 작아진 발아래 세상을 보면서 성취감을 맛보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의 엄마들이 가르쳐준 것들/크리스틴 그로스-노 지음/김수민 옮김/부키/1만5000원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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