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김흥순 기자 8일 동안의 취재 기록
전 교수가 한국 쇼트트랙에 도입한 소위 '작전'은 국제대회에서 메달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짬짜미’라는 이름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의 작전은 팀플레이로 상대를 견제하는 가운데 한국의 가장 뛰어난 선수가 경쟁국 선수를 이기고 우승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에이스 밀어주기' 전략이다. '전명규식 작전'의 최대 수혜자는 '안현수' 시절의 빅토르 안(29)이다. 빅토르 안은 전명규식 작전을 그대로 러시아 대표 팀에 이식했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세 개를 따냈다. 그와 함께 뛴 동료의 증언은 작전의 실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남자 쇼트트랙 10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그리고레프는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작전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금메달을 만들어낸 필승 전략이었지만 최근의 한국 분위기라면 틀림없는 ‘짬짜미’다. 국제대회에서 한국에 수많은 메달을 선사한 전명규 교수의 ‘작전’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승부 담합·조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정 선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다른 선수들의 불만도 없지 않았다. 뛰어난 선수들이 속속 한국체대로 진학하자 한국체대를 중심으로 파벌을 구축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 비판이 대표선발과 관련한 파벌론의 근원이다. 결국 그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터진 '짬짜미' 시비에 책임을 지고 빙상연맹 임원직에서 물러났다.
2년 만에 부회장에 복귀했으나 갈등은 가라앉지 않았다. 소치올림픽을 앞두고도 분위기는 심상찮았다. 빙상계 원로인 장명희(82) 아시아빙상경기연맹 회장이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은 잘못도 용서해 주지만, 눈 밖에 나면 불이익을 준다"며 전 교수를 지목했다. 빅토르 안의 아버지 안기원(57) 씨도 "코치 선임과 대표 선발 방식 등 연맹의 모든 행정을 한 사람이 독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안 씨는 "아들의 귀화 결정이 파벌 싸움과 전 교수와의 갈등으로 대표 선발전에서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빅토르 안이 러시아 대표로 3관왕을 차지하자 네티즌들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고 편 가르기를 조장해 유능한 인재를 외국으로 내몰았다"며 전 교수와 빙상연맹을 성토했다.
“…아이스하키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캐나다 출신 선수를 귀화시킨 것은 무엇인가? 라던스키도 캐나다 파벌때문에 한국인이 됐나? 이번에 러시아에 귀화한 다른 선수들은 또 무슨 사연인가. 중국 탁구선수들이 한국으로 귀화한 것도 중국 파벌 때문이라고 할건가?…”
그는 또 “안현수가 대회를 마친 뒤 자신의 귀화는 파벌과 관계없다고 했지만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치인, 공무원이 나섰다. 그리고는 이 꼴이 났다. 죄 없는 체육국장 모가지가 달아나니 그 어느 누구도 바른 소리를 하지 못했다. 진짜 죄인은 따로 있다. 빙상연맹 곁에서 각종 이권개입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철저히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빅토르 안은 자신의 러시아 행에 대해 "파벌 문제는 있었지만 그것이 귀화를 택한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라며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전 교수는 말을 아끼면서 논란에 대한 해명을 쓴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너무 일방적으로 사람을 매도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 같다"면서도 "누구와 싸우는 듯한 모양새로 비쳐도 '지금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빙상 관련 기사를 확인하지 않는다. 텔레비전 뉴스 자막에 이름이 나오는 걸 보고 바로 전원을 껐다"고 했다. 취재를 마친 25일 오후까지 전 교수는 연구실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침묵을 지킬 것 같다. 운영하던 블로그도 폐쇄했다.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힘들다고 토로했다.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하고 공과를 평가받기에는 상당한 용기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한국 빙상에서 전 교수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제 2의 전이경, 김동성, 이상화, 모태범을 꿈꾸는 제자들은 지금도 그의 방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은반 위를 열심히 달리고 있다.
'빙상 대부' 전명규의 침묵 <상>
김흥순 기자 s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