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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박병호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①

최종수정 2013.12.29 13:41 기사입력 2013.12.2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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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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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박병호(넥센)는 현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다.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와 골든글러브를 2년 연속 수상했다. 이어진 연봉 협상에선 전년 대비 127.3% 인상된 5억원을 챙겼다.

3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박병호는 ‘만년 유망주’였다. LG 입단 당시 거포로 주목받았으나 좀처럼 1군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와 한솥밥을 먹었던 관계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장점을 살리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지도자들이 거포로 성장할 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인내를 발휘하지 못했다. 몇 차례 삼진을 당하면 그대로 2군 행을 통보하는 식이었다. 선수의 자존심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다른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는다.

“주축으로 성장하길 기대하면서 그만한 뒷받침을 해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코치진 교체가 잦았다. 여러 코치들의 지도를 받다보면 선수는 혼란에 빠지기 쉽다. 병호가 그랬다. 자신의 장점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 자신감까지 결여돼 한때 야구를 포기하려 했던 것으로 안다.”
절망의 나락에 빠져있던 박병호에게 넥센 이적은 터닝 포인트가 됐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김시진 감독은 말한다.

“삼진을 많이 당하는 건 상관이 없었다. 힘 있는 4번 타자가 필요했다. 병호는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충분했다.”

박병호(왼쪽)와 강정호[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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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으로 물러나는 등 부진할 때마다 자주 고개를 숙였던 친구다. 그래서 여러 번 감독실로 호출했다. 볼 때마다 ‘잘했다’고 했다. ‘삼진을 당해도 좋으니 네 마음껏 해보라’고 독려했다. 자신감을 잃은 타자가 4번을 맡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자존심부터 세워줘야 했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타자. 물론 결정적인 요인은 따로 있다. 스스로의 노력이다. 험난한 여정을 박병호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의 복기와 생각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은 박병호와의 일문일답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거의 모든 시상식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계속 상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순회했다.

-다양한 기록에서 커리어하이를 뽐냈다. 어떤 점이 가장 만족스럽나.
▲전 경기 출장이다.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부상 없이 4번 타자를 끝까지 지켰다. 2년 연속 이룬 성과라 의미가 남다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경기를 뛰어야만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교훈이 있다. 지난해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그 중요성을 절감했다. 올해도 다양한 깨우침을 기대하고 전 경기 출장을 목표로 세웠다. 생각만큼 잘 된 것 같아 기쁘다.

-다양한 타이틀을 챙겼으나 팀은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너무 아쉽다. 이겼다면 선수단 전체가 영웅이 됐을 텐데. 말도 안 되는 드라마가 연출됐다. 정상적인 대본이었다면 우리 팀이 플레이오프에 올라야 했다. 막판 흐름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웃음).

박병호[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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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아쉬움이 커 보였다. 경기 뒤 더그아웃을 한참동안 떠나지 않았다. 멍하니 그라운드만 응시했다.
▲나는 야구선수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시즌을 소화한다. 그런데 그때만큼은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벌써 끝났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당분간 목동구장이 조용해질 것이란 생각에 허무하기도 했고. 선수들이 뛰어다녀야 어울리는 곳 아닌가. 빨리 그때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경기 뒤 많은 위로를 받았을 텐데.
▲솔직히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야구는 아무리 개인 성적이 뛰어나도 팀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어딜 가서도 당당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많은 걱정이 됐다. 다시 돌아봐도 아쉬웠던 가을이다.

-앞선 여러 인터뷰에서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10월 5일 대전 한화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시즌 최종 순위가 가려졌던 경기 아닌가. 그래서 꼽았을 뿐이다. 사실 아쉬웠던 경기는 시즌 중반에도 많았다. 아깝게 놓친 경기를 하나만 잡았더라도 포스트시즌을 보다 편하게 치렀을 것이다. 1승의 소중함을 절감한 해였다.

-그렇다면 어떤 경기가 가장 인상 깊나.
▲홈런 3개를 몰아친 9월 29일 목동 두산전이다. 지난해 8월 1일 문학 SK전에서 3개를 쳤을 땐 팀이 4대 11로 졌는데, 그땐 11대 6으로 이겨 기분이 좋았다.

-다수 관계자들이 이른 가을야구 탈락의 주 원인으로 체력적 부담을 거론했다.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다. 정신적 충격도 있었고. 10월 5일 대전 한화전을 1대 2로 진 탓이다. 서울로 향할 채비를 하는데 동료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 무겁고 조용한 분위기는 한동안 깨지지 않았다.

-바로 가을야구를 준비해야 했다.
▲그렇다. 흐름을 뒤집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훈련을 하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살아났다. 1, 2차전을 승리해 상승세도 탈 수 있었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남은 경기를 치러야 했다. 가을야구는 정규시즌과 확연히 달랐다.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나.
▲평소보다 가벼운 배트를 들었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라운드만 밟으면 힘이 났다. 경기를 소화하면서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경기를 마치고 나면 누적된 피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런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포스트시즌이 끝나버렸다(웃음).

박병호[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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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야구 플레이를 자평한다면.
▲준 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안타를 1개밖에 치지 못했다. 그런데 유일한 안타는 홈런이었고, 볼넷도 나름 많이 골랐다. 스스로 괜찮다고 여겼다. 문제는 3, 4차전이었다. 두산의 신경전에 말려들고 말았다.

-특정 발언이 신경 쓰였단 것인가.
▲그렇다. 내게 승부를 하지 않겠다고 한 말이다. 타석에서 발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특히 볼이 들어올 때면 ‘정말 승부를 하지 않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깊어지는 고민은 배트를 여유롭게 돌릴 수 없게 했다. 미디어데이가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여겼는데, 적잖은 영향이 있더라. 중요한 경기일수록 집중력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겠다.

-타율과 장타를 모두 끌어올렸다.
▲높은 타율은 볼넷을 많이 골라 가능했다. 시즌 초 목표 가운데 하나였는데 생각보다 1루로 많이 걸어갔다. 3할 타율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장타율 상승은 많은 홈런 덕이다. 개인적으로는 결정적인 순간 자주 때렸다는 점이 더 흡족하다. 중심타자 역할을 나름 잘 해낸 것 같다.

-시즌 전 어떤 노력이 있었나.
▲타격감이 좋았을 때의 훈련을 토대로 장점을 극대화하는데 중점을 뒀다.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몸 쪽 코스 공략에도 신경을 많이 기울였고. 지난해 대처가 60점이라면 올해는 75점을 주고 싶다. 특히 왼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이 많아 고무적이었다.

-맞추는 능력도 꽤 향상됐던데.
▲투 스트라이크 뒤 타격에서 테이크백 동작을 줄였다. 상황에 맞게 타격에 변화를 주고 있다. 그 대처가 괜찮았던 것 같다.

-올해 정도의 성적이면 스스로 만족할 것 같다.
▲아니다. 잘한 부분도 많지만 더 전진해야 한다. 특히 마음가짐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나 자신에게 여러 번 채찍질했다. 초심이 흔들릴 만한 위기가 적지 않았던 까닭이다.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100% 만족하긴 어려운 것 같다. 그럴 수도 없는 것 같고.

박병호[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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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시즌을 치르면서 슬럼프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었나.
▲힘들 때마다 허문회 타격코치에게 많이 기댔다. 어려운 점을 털어놓고 나면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다. 이어진 조언에 마음도 한결 가벼울 수 있었고.

-프로 입문 뒤 다양한 타격 자세를 시도했다.
▲몇몇 선수들의 폼을 따라 하긴 했다.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많아서(웃음). 앨버트 푸홀스(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경우 왼다리를 고정해 힘을 모았다가 강한 회전으로 공을 때린다. 그 부분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몸 전체에 안정을 더할 수 있어 타격을 더 잘할 것 같았다.

-요즘도 메이저리그를 시청하나.
▲물론이다.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정도는 꼭 챙겨 본다. 준 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두고도 보스턴 레드삭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2차전을 시청했다. 보스턴이 데이비드 오티스의 8회 극적인 동점 만루 홈런으로 6대 5 승리를 거뒀는데, 기세를 이어가더니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했다. 동점 홈런을 보며 오티즈가 대단하다고 감탄했는데, 나 역시 그날 9회 동점 쓰리런을 때렸다. 팀이 플레이오프만 진출했다면 한국에서도 보스턴의 기적이 일어났을 것이다.

-현 타격 자세에 영향을 준 메이저리거가 있나.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선수는 없다. 아마추어 시절 폼이다.

-성남고 시절 타격 폼이라는 건가.
▲그렇다. 프로 입문 뒤 한참을 고생하지 않았나. 그래서 정말 잘 했을 때를 떠올리다 고교 시절 타격 자세를 기억해냈다. 다시 시도를 했는데 무리가 따르지 않았다. 머리도 그렇지만 몸이 정확하게 반응했다.

-성남고 시절 4타석 연속 홈런을 터뜨린 거포였다.
▲아마추어 시절 힘이 좋다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그럴 만 했다. 영남중 3학년 때 키가 181cm였다. 영일초 5학년 때부터 매년 10cm 이상씩 컸다. 성남고에 막 입학해 홈런을 쳤으니 아무래도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높은 신장 때문만은 아닐 텐데.
▲분명한 연관은 있다. 영남중에 다니면서 근육을 키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성장이 빨리 진행된 덕에 웨이트트레이닝을 남들보다 일찍 접할 수 있었다. 타구가 또래 선수들보다 멀리 날아갈 수 있었던 이유다.

박병호[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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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했겠다.
▲그렇긴 했지만 자랑으로 여기진 않았다. 야구는 팀 스포츠다. 동료들과의 경쟁의식이 무의미하다. 한솥밥을 먹는 친구들과 잘 어울려야 팀도 강해질 수 있다.

-당시에도 4번 타자였다. 책임감이 남달랐을 것 같다.
▲제대로 느낀 건 프로 입문 뒤다. 4번 타자를 풀타임으로 소화한 지난해가 그 출발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팀 성적에 대한 적잖은 부담이 있었다. 가령 한두 점차로 팀이 지면 나도 모르게 자책을 했다. ‘내가 한 방만 쳤다면’과 같은 아쉬움 말이다.

-시상식에서 팀 성적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낸 것도 같은 맥락인가.
▲그렇다. 큰 상을 받는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인데,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기쁨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올해는 그나마 괜찮았다. 정규시즌 3위가 결코 나쁜 성적은 아니니까.

-풀타임으로 2년차지만 횟수로는 9년차다. 경기장 밖에서도 할 일이 많아졌을 것 같다.
▲후배들을 다독여주기도 해야겠지만 선배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인 것 같다. 많은 걸 배우고 싶어 올해 (이)택근이 형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어떻게 하면 선수단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많이 듣고 고민했다.

-기량과 마음가짐 모두 성숙해진 듯하다.
▲아직 더 배워야 한다. 여러 타이틀을 차지하고 MVP까지 거머쥐었지만 나 혼자 이룬 성과가 아니다. 특히 홈런이 그렇다. 잘 나오지 않았을 때 (이)성열이 형이나 (강)정호, (김)민성이가 많이 쳐줬다. 그 덕에 집중 견제를 피할 수 있었고, 수월하게 부진을 이겨낼 수 있었다. 모두에게 너무 고맙다.

②편에서 계속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정재훈 사진기자 roz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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