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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공부하는 축구계 원로 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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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축구계 원로 박경호 선생을 만나 60년이 넘는 축구 인생을 귀담아들을 수 있었다. 신세대 축구팬들을 위해 잠시 소개한다. 박 선생은 1930년 황해도 해주 출신이다. 1946년 남쪽으로 넘어와 경신중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아시안컵) 우승 멤버다. ‘아시아의 황금 다리’로 불린 최정민을 비롯해 대표팀 골키퍼 계보의 2세대인 함흥철, 차태성, 손명섭, 김지성, 우상권, 성낙운 등이 국가 대표 동료들이다.

당시 아시안컵은 개최 협회인 홍콩 외에 아시아를 동부, 중부, 서부 등 3개 지역으로 나눠 예선을 치렀다. 1차 예선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대표팀은 2차 예선에서 필리핀을 2대 0(마닐라)과 3대 0(서울)으로 가볍게 제쳤다. 최종예선에서 맞붙은 상대는 오늘날 대만인 자유중국. 대표팀은 8월 26일 서울 홈경기에서 2대 0 승리를 거뒀다. 이어 9월 2일 타이페이에서 원정경기를 갖게 됐는데 비용 문제가 골칫거리였다.
협회 재정이 워낙 빈약해 당시 국적기인 KNA를 외상으로 타는 촌극이 벌어졌다. 요금은 예선이 끝난 뒤 자유중국과 친선경기를 치러 그 수입금으로 갚기로 했다. 2차전에서 대표팀은 자유중국을 2대 1로 누르고 본선에 올랐다. 그런데 비 때문에 친선경기는 취소됐다. 결국 국적기인 KNA가 오기를 기다려(당시 김포~타이페이~홍콩 노선은 주 1회 운항됐다고 한다) 9월 6일, 경기 당일 새벽 가까스로 홍콩에 도착했다. 나중에 갚긴 하지만 이 비행편도 외상이었다.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경기장으로 갔으니 홍콩전에 나서는 선수들의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초반 연속 2골을 내주고 말았다. 이제 졌는가 싶었을 때 반전이 일어났다. 갑작스레 비가 쏟아져 선수들이 생기를 되찾았다. 결국 대표팀은 2골을 만회해 가까스로 2대 2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 홍콩은 프로리그를 운영하고 있었다. 1958년 도쿄 아시아경기대회 결승에서 한국을 3대 2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자유중국도 상당한 경기력을 갖고 있었다.

글쓴이는 박 선생을 뵙고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오늘날 보잘 것 없는 대만의 축구 실력이 당시 한국과 승패를 주고받을 정도로 강했던 이유다. 그때 자유중국 대표선수들은 홍콩 프로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었다고 한다. 본토와는 교류가 없을 때이니 홍콩 선수들이 자유중국 유니폼을 입고 뛴 것이다.
어쨌든 본선 첫 경기에서의 무승부는 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2차전에서 서부 지역 대표인 이스라엘(당시에는 아시아축구연맹에서 활동)을 2대 1, 월남(남베트남)을 5대 3으로 각각 누르고 초대 챔피언이 됐다. 1960년 제2회 대회(서울)에서도 우승한 한국은 그 뒤 반세기가 넘도록 아시안컵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일본(4회), 사우디아라비아(3회), 이란(3회) 등은 통산 우승에서 한국을 앞질렀다. 박 선생은 이 대목을 가슴 아파 했다.

1960년대 초반 동생인 박경화 선생이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박경호 선생은 선수생활을 매듭짓게 된다. 그 뒤 지도자로 제2의 축구인생을 살게 된다. 모교인 경희대를 시작으로 한양공고, 건국대, 육사, 서울대 등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1990년대에는 일본 프로축구 J리그 오이타 클럽에서 기술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그런데 이력에는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칼럼니스트다. 1990년대 한 신문사에 칼럼을 장기 연재했다. 이때 기고한 내용들은 ‘한국 축구사’에 꽤 많이 반영됐다. 박 선생은 요즘도 국내 한 축구 전문매체에 정기적으로 글을 쓴다. 공부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어느 정도 담아 쓰고 있는 이른바 경기인 출신이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펜을 잡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많이 봤어요.” 일본어에 능통한 박 선생은 일본 축구 서적은 기본이고, 손에 잡히는 대로 여러 분야를 공부한다고 한다. 다른 종목이긴 하지만 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끈 어우홍(1931년 생)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도 풍부한 독서량으로 언제 어느 곳에서든 다양한 분야를 화제로 삼아 견해를 밝히곤 한다. 운동선수는 결코 무식하지 않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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