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일의 '오츨라레 오츨라레' 중에서
■ 내게 천박한 우쭐함이 있는 것이, 우리보다 좀 못산다 싶은 나라에 가면 문득 졸부가 된 양 괜히 으쓱해지는 걸 봐도 알 수 있겠다. 몽골에 가서 시커먼 얼굴을 한 그 나라 사람들과 먼지투성이의 낡은 옷을 보면서 주머니에 든 푼돈이라도 쥐여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더구나 쭉 찢어진 눈에 광대뼈와 튀어나온 입술이, 내 고유의 신체적 식별코드였다는 생각을 버리게 만드는, 먼 친인척같은 얼굴을 한 그들을 보며, 갑자기 시간의 멀미를 느꼈다. 조금 야윈 말이긴 했지만, 우리 돈으로 20만원이면 살 수 있다는 붉은 말 한 마리를 어루만지며 턱도 없는 지름신까지 느끼기도 했다. 박태일의 시를 읽으며, 광대한 사막에 먼지처럼 날리던 긴 여행들이 다시 떠올랐다. 시인은 거기서도 마사지가게를 간 모양이다. 원나라에 끌려간 고려의 공녀들이 팔목이 시끈거리도록 몽골인들의 발목을 꺾어댔을 역사를 뒤집어, 시인은 징기스칸의 어린 아내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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