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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칼럼]부가가치세의 명예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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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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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이 늦은 한국은 이웃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오고 제도를 본떴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도입하고 일본에 한 수 가르쳐 준 것도 있다. 바로 1977년 7월1일 시행한 부가가치세다. 직접세인 소득세만으로 나라살림을 꾸리기 어렵자 꺼내 든 세율 10%의 간접세 카드다.

일본은 20년 늦은 1997년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인상할 때 우리를 찾아와 노하우를 배워 갔다. 그러나 2015년까지 세율을 10%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놓고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 경기 회복세를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가 맞서 논란을 빚고 있다.
우리도 부가가치세를 도입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세금 구조가 어렵다' '영수증 주고받기가 정착되지 않았다' '물가가 오른다'며 정치권과 경제단체들이 반대했다. 법안을 만든 재무부 외 다른 경제부처도 시기상조라고 했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 "정치는 내가 걱정할 테니 장관은 경제를 챙기라"며.

시행 초기 소상공인들이 수익이 줄었다며 반발했다. 1978년 제10대 총선에서 집권 공화당이 패배하자 여당에서 폐지론이 나왔다. 1979년 10월 부마사태가 터졌고 서부산세무서가 공격을 받았다. 10ㆍ26 사태로 유신 체제가 막을 내리자 부가가치세에 대한 조세저항이 영향을 미쳤다며 역적 취급을 했다.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다시 폐지론을 들먹였다.

이런 과정을 청와대에서 지켜본 박근혜 대통령의 트라우마인가. 세금 인식이 보수적이다. 세금 신설이나 세율 인상 등 증세는 절대 불가다. 나흘 만의 세법개정안 재검토 파동도 재정 운영에 3중 울타리를 쳐 놓은 데 기인한다. '세율 인상은 안 된다' '법인세는 손대지 마라' '복지 축소도 안 된다'는 울타리 안에서 머리 좋다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짜낸 게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꿔 근로소득세를 더 걷는 것이었다.
반대론과 연기론을 뚫고 3년여 준비해 도입했으나 시행 초기 3년 사이 세 차례나 폐지론이 제기된 모진 운명의 주인공 부가가치세. 어느새 연간 50조원 넘게 걷히면서 국세 수입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효자 세목으로 성장했다. 세계적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속상처가 적지 않다. 연매출 4800만원 미만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간이과세자 비율이 여전히 높다. 매출을 축소 신고해 탈세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이다. 면세 범위가 너무 넓은 것도 문제다. 이 참에 도입 당시 모델로 삼은 유럽 수준으로 정밀 손질해 제 이름값 하도록 만들자. 그렇게 해 늘어난 세수를 복지사회로 가는 길에 쓰면 국민도 납득할 것이다.

부가가치세는 소득세와 법인세의 기초인 선행 세목이다. 분기별 부가가치세가 속임수 없이 신고돼야 4분기 1년 실적을 토대로 이듬해 소득세와 법인세도 제대로 부과된다. 부가가치세를 촘촘히 손보지 않고선 아무리 소득세나 법인세법을 바꾼들 효과를 보기 어렵다.

현재 면세인 의료보건업과 금융서비스 분야 등을 과세 대상으로 돌리자. 이들 업종에서 세금계산서를 확실히 주고받으면 소득세와 법인세 징수도 늘어나는 등 과세 기반이 자동 확충된다. 탈세 혐의가 짙은 업종에 대해선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할 때 부담하는 부가가치세액을 사업자에게 맡길 게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납부하는 방식으로 바꾸자.

36년 전 아버지 박정희가 부가가치세를 도입할 때와 견주면 현재 여건은 우호적이다. 복지 확대를 위해선 증세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무엇이 두려운가. 망설이다 시기를 놓치면 막대한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일본 꼴이 날 수도 있다. 부가가치세에 대한 명예회복을 시작으로 증세 문제를 정면 돌파하라. 그것이 아버지를 뛰어넘어 새 역사를 쓰는 길이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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