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감고 지휘를 한다는 것은 단원들과 완전한 교감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는 그만큼 치밀하고 완벽한 연습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날카로운 성격은 1984년 베를린 필하모니를 이끌고 방한(訪韓) 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지휘했을 때도 잘 드러났죠. 공연을 주최한 신문사의 인터뷰는 물론 그 신문사 회장이 베풀겠다는 파티도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독일대사가 만나자고 하는 데도 뿌리쳤습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그는 오스트리아 짤스부르크에서 외과 의사 아버지와 슬로바키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1908년 4월 5일 태어났습니다. 짤스부르크는 모짜르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죠.
결국 그는 유럽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가 되었고, 나아가 오페라 연출, 음악 영화 연출, 매니지먼트 사업, 교육, 음악 치료 등 전방위로 뮤직 비즈니스에 손을 뻗어 성공했습니다. 특히 CD로 많은 음악을 녹음해 유통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CD의 용량이 74분으로 정해진 것도 카라얀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카라얀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이 CD 한 장에 모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당시 소니의 부사장 오가 노리오도 같은 의견 이어서 그렇게 정해졌다는 것이죠.
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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