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7일 파리의 저택에서 21세기 행동하는 지성 '스테판 에셀'이 조용히 삶을 마무리했다. 영면하기 3년전 스테판은 그의 저술 '분노하라'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빈곤계층에 대한 멸시가 득세하고 지구 자원의 파괴가 이뤄지는 시대에 저항의 가치들이 잊혀지거나 무시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며 "행동하고, 분노하고, 불의와 싸울 것"을 주문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세계가 '마지막 레지스탕스'의 말에 화답하듯, 지구촌 곳곳에서 1%에 대한 99%의 거대한 행진이 일어났다.
에셀은 스스로 "언제나 글쓰기보다는 행동을, 향수와 추억보다는 미래를 선호했다"고 회상하며 "버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모두 실현된다고 확신하는" 낙관주의적인 인물임을 밝힌다. 에셀은 1917년 독일 베를린에서 유대인 작가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에셀의 부모는 트뤼포의 유명한 영화 '쥘과 짐'의 실제 모델로 '세기의 삼각관계'를 연출한 사람들이다. 부모의 세기적 연애 사건에 대해 에셀은 기묘하고 이상한 부모의 관계가 불편하거나 이상하지 않았으며 갈망, 분노, 솔직, 기발, 사랑에 적극적인 기질을 갖게 됐다고 회고한다. 또한 인습 혹은 성관계에 관련된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와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줬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 유엔 대사로 봉직하며 다양한 세력과의 대화, 균형의 전달자로 자리할 수 있는 정신적 배경에는 독일출신이며 프랑스 유대인이라는 독특한 존재가 낳은 실존적 선택이라고 규정한다.
"성공한 존재란 없다. 그러나 중재는 번번이, 그 실패를 통해 또 다른, 더욱 너른 중재의 길을 열어준다. 또 다른 중재도 역시 실패할 것이다. 이렇게 지치지 않고 이어지는 중재와 중재를 통해 우리 인류의 용감한 역사는 쓰여지는 것이다."
에셀은 자신을 중재적 삶으로 규정하면서도 99%는 1%에 분연히 투쟁할 것을 주문한 것이 매우 이채로운 대목이다. 그의 진심 어린 앙가주망 안에는 불의와는 중재도 타협도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불의에 대해 참여와 연대로 이겨낼 것을 주문한 그의 외침은 잠든 시대를 깨우고, 높은 이상을 실천해 간 용기의 표상으로 다가온다.
에셀의 회고록은 진정한 세계 시민으로 살고자 한 에셀의 성찰을 한 눈에 읽을 수 있다. <'세기와 춤추다'/스테판 에셀 지음/임회근ㆍ김희진 옮김/돌베개 출간/값 2만원>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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