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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문화 이끄는 '역사가'와 '독립군'

최종수정 2013.03.26 09:13 기사입력 2013.03.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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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젠 '문화'다②] 게임, 새로운 시각을 만나다

[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 새로운 게임 문화를 만들어가는 이들을 만났다. 게임의 역사를 정리 중인 개발자 오영욱씨(32), 인디게임을 제작중인 2인회사 파이드파이퍼스 얘기다. 게임 역사가와 독립군. 아직 우리나라에서 낯선 이야기들이다. 이들은 자본에 잠식당한 게임 업계, 편견에 휩싸인 사회 시선 속에서 철저히 '아래에서 위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공통점이라면 주변에 묵묵히 도와주는 지원군이 많다는 것이다. 바로 게임을 사랑하는 네티즌들이다.

◆ 게임의 역사는 '박제'할 수 없다
오영욱 바닐라브리즈 시니어 프로그래머.

오영욱 바닐라브리즈 시니어 프로그래머.

앱 게임 회사 바닐라브리즈의 수석 프로그래머 오영욱씨는 8년전인 2006년부터 국내 PC 게임의 역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국내 게임 개발자의 계보를 정리하고자 하는 욕심에서였다. 90년대 활동했던 1세대 개발자 뿐 아니라 국내에 게임 문화를 정착시켰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0세대' 개발자까지 정리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지난해 말 자신이 활동했던 게임문화연구회 회원, 업계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게임의 역사'라는 책을 펴냈다. 국내 최초로 게임학 박사학위를 받은 윤형섭씨, 원조 게임 리뷰어로 명성을 떨쳤던 전홍식씨 등이 함께 참여했다. 이 책은 현재 대학교재로 쓰이고 있다. 대학생들이 '게임'의 역사에 대해 암기하고 필기하며 기말 시험을 치는 것이다.

오씨가 게임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주로 과거 출간된 잡지를 통해 입수한다. 닥치는데로 모은 게임 잡지는 지금까지 1000여권에 달한다. 지금도 어딘가에 책을 내놨다고 하면 냉큼 달려간다. 수집한 책들을 일일이 스캔해 디지털 자료로 만들었다. 이렇게 지금까지 모은 스캔 자료만 2테라바이트 분량이다. 이미지 한장당 20메가바이트정도라고 보면 총 10만장을 혼자서 정리한 셈이다.
전자게임의 역사는 길어야 70년, 한국에서는 이제 막 40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도 게임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관련자료는 방대하게 늘어났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본격적으로 게임의 역사를 정립하자는 움직임이 인 것은 고작 1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문화재처럼 게임 플랫폼이나 플레이 형태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씨는 "게임의 유지·보수, 재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역사 정리에 있어 남겨진 과제"라고 말한다. 게임 전시회에서 스크린샷만을 걸어 둔다면 그건 게임을 박제한 것이다. 게임은 어디까지나 플레이 과정을 통해 감동을 줘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예를 들어 현재 뉴욕현대미술관이 게임을 전시중이지만 장시간 플레이해야 하는 도시 건설 게임 '심시티'는 스크린샷과 게임 플레이를 담은 동영상만 전시돼 있다. 플레이 자체가 빠진 게임 전시는 결국 게임의 생명을 빼버린 박제품에 지나지 않는다.

비디오 게임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진행돼야 한다. '덕헌트'라는 닌텐도 패미컴 게임은 전자총으로 브라운관 TV 화면에 나온 오리를 사냥하는 게임이다. 전자총과 브라운관 TV가 있어야 이 게임을 실행할 수 있다. 오씨는 "나중에 브라운관 TV를 구할 수 없다면 이게임을 전시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온라인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MMORPG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는 매번 업데이트를 통해 초기 버전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역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게임 초기의 모습과 플레이 형태를 수 백년이 지난 뒤에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씨는 이같은 일이 혼자 하기엔 힘에 부치는 일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이 게임 역사 관련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지만 OCR(문자 판독) 기술로 텍스트를 전산화해 온라인 검색 서비스도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그는 역사 정리 뿐 아니라 게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편견을 타파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해에는 아동청소년보호법 등 게임 문화를 탄압하는 일련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인터넷에 네티즌 공동대응 게시판을 만들었다. 1만2000여명이 현재 여기에 동의 서명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 게임편견타파 컨퍼런스도 열 예정이다.

◆ "돈보다 더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파이드파이퍼즈 임현호(사진 왼쪽) 기획자와 김주명 프로그래머.

파이드파이퍼즈 임현호(사진 왼쪽) 기획자와 김주명 프로그래머.


파이드파이퍼스는 지금은 한국에서 사양화 되다시피한 패키지 게임을 만드는 인디게임회사다. 인디게임은 홍대 앞 인디밴드와 비슷한 개념이다. 자본이나 주류에 영합하지 않고 개발자가 원하는 내용과 장르로 자유롭게 만들어진다. 인디게임은 해외에선 상업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 등 이미 활성화됐지만 국내에선 심의 등 각종 규제로 인해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파이드파이퍼스의 직원은 단 2명. 기획자 임현호씨(33)와 프로그래머 김주명씨(32)다. 캐릭터 디자인 등은 현재 다른 회사에 재직중인 3명의 회사원이 퇴근 후 일을 도와준다. 이들 중에는 얼마전 아이를 낳은 여성도 포함돼 있다. 두 사람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위해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고 말한다.

김주명씨는 파이드파이퍼스를 창립하기 전 펜타비전이라는 게임회사에 있었다. 오락실과 휴대용 게임기 버전으로 출시됐던 리듬게임 'DJ맥스' 시리즈가 그의 손을 거쳐간 작품이다. 하지만 회사측이 요구하는 게임을 정해진 시간 내에 만들어내야 했고 즐거웠던 게임은 그에게 스트레스만 안겨줬다. 지금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느낌에 마음이 편하다.

이들은 현재 '아미 앤 스트레테지 - 십자군(Army and strategy)'이라는 제목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제작중이다. 프로그래머와 기획자가 둘다 좋아하는 장르로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토 전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게임은 올 상반기 완성될 예정이다. 완성직전의 게임을 뒤엎고 기획단계부터 재검토한 적도 부지기수였지만 게임 만들기가 요즘만큼 즐거운 때는 없었다.

주변의 도움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들은 지난 달 기적같은 경험을 했다. 아미앤 스트레테지를 만들기 위한 클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결과 예상금액의 4배에 달하는 2000만원이 순식간에 모인 것이다. 물론 처음 펀딩에 참여한 이들중엔 지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트위터 등을 통해 소식을 알게된 이들이 속속 참여하며 펀드 모금액은 예상치를 초월하기 시작했다.

최초 목표액 500만원은 하루가 채 지나기 전 초과 달성했다. 총 201명의 펀드 참여자 중 70%는 임씨와 김씨도 모르는 네티즌들이다. 게임 플레이 장면을 실제로 보여준 적도 없이 동영상만 보여줬을 뿐인데 "게임이 재밌게 보인다", "멋진 게임을 만들어달라"며 지원이 잇따랐다. "우리도 모르는 사람이 도움을 줬다는 게 믿기 힘들었다. 그만큼 패키지 게임과 인디게임에 대한 바람이 살아 있었다"고 기획자 임씨는 말했다.

파이드파이퍼즈가 제작중인 인디게임 '아미 앤드 스트레테지'

파이드파이퍼즈가 제작중인 인디게임 '아미 앤드 스트레테지'


이들은 현재 세계적인 게임개발업체 밸브가 만든 온라인 게임몰 '스팀' 입성을 노리고 있다. 스팀 입성은 인디게임 개발자들의 꿈이다. 수익과 함께 세계의 네티즌에게 이름을 알릴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게임이 완성되면 해외 뿐만 아니라 국내 출시를 위한 심의도 받을 예정이다. 이유는 단 하나, 클라우드 펀딩으로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함의 표시로 완성도 높은 게임을 보내주기 위해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대부분의 인디게임은 국내 출시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복잡한 심의 절차와 함께 높은 심의 수수료를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의를 거치지 않고 유통되는 모든 게임을 불법으로 몰아가는 규제도 인디 게임 개발자들을 숨막히게 한다.

임씨는 "제 다섯살배기 딸이 계단을 오르면서 스스로 게임 규칙을 만들어서 즐기더라"며 "게임은 어디에나 있고 또 즐기기 위해 존재한다"고 게임의 본질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만드는 이도 즐기는 이도 모두 행복한 게임이 그들의 최종 목표다.

☞ 관련기사 <[게임 이젠 '문화'다①] '오락실 가면 몹쓸놈' 그때를 아십니까>


박충훈 기자 parkjo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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