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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삼, 골든글러브에도 맘껏 웃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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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삼, 골든글러브에도 맘껏 웃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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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영웅들의 날이었다. 넥센의 창단 이래 가장 많은 골든글러브 수상자 배출. 무려 3명이었다. 시즌 최우수선수(MVP) 박병호, 신인왕 서건창, 국가대표 유격수 강정호.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유력한 후보가 7표차로 수상에 실패했다. 넥센의 에이스 브랜든 나이트. 아이러니하게도 대신 영광을 거머쥔 주인공은 팀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을 당시 에이스였던 장원삼이었다.

장원삼은 11일 열린 2012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 투수 부문에서 유효표 351표 가운데 128표를 획득, 생애 첫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그는 올 시즌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올 시즌 27경기에 출장해 17승 6패 1홀드 평균자책점 3.55를 기록했다. 생애 첫 다승왕을 거머쥐며 삼성을 2년 연속 통합우승으로 이끌었다.
“나이트와의 경쟁이 심할 것이라 예상했다. 개인적으로 꼭 받고 싶은 상이었는데 정말 감사하다.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냈다. 내년에는 더 열심히 하는 장원삼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시상식 뒤 이어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장원삼은 솔직담백했다. 그는 “나이트에게 미안하다. 솔직히 내가 7표를 더 받은 게 신기하다”라고 했다. 경쟁자와의 기록을 놓고 보면 그런 느낌을 받을 만 했다. 나이트는 올 시즌 30경기에서 16승 4패 평균자책점 2.20을 남겼다. 208.2이닝으로 장원삼보다 무려 51.2이닝을 더 소화했고, 평균자책점도 1.35가 더 낮았다. 승률도 80%로 73.9%의 상대를 제쳤다. 투수의 성적을 가늠하는 기본 잣대에서 모두 앞섰던 셈. 더구나 나이트는 올 시즌 퀄리티스타트를 27차례나 선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야구관계자는 흥분된 어조로 수상 결과를 비판하고 나섰다.

“골든글러브를 평가하는 기준이 대체 무엇인가. 단지 외국인이기 때문인가. 이대호(144경기 타율 2할8푼6리 24홈런 91타점)가 올해 퍼시픽리그 타점왕에 오르고도 일본야구기구(NPB) 선정 베스트 나인에 뽑히지 못했다고 생각해보라. 국내 야구팬들의 기분이 어떻겠나. 이대호는 선수들이 뽑은 베스트나인에선 탈락했다. 그보다 떨어지는 성적을 남긴 이나바 아츠노리(니혼햄, 127경기 타율 2할9푼 10홈런 61타점)에게 돌아갔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선수회에서 뽑은 것이니까. 골든글러브는 선수들이 뽑는 게 아니다. NBP 선정 베스트 나인처럼 보다 공정해야 했다. 나이트의 성적은 분명 훨씬 월등했다.”

브랜든 나이트(사진=정재훈 기자)

브랜든 나이트(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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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수의 수상이 힘들 것이란 전망은 시상식 전부터 있었다. 실제로 역대 외국인 선수가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사례는 10건에 불과하다. 1999년 롯데 외야수 펠릭스 호세, 한화 지명타자 댄 로마이어, 2000년 두산 지명타자 타이론 우즈, 2002년 삼성 유격수 틸슨 브리또, 2004년 현대 외야수 클리프 브룸바, 2005년 현대 외야수 래리 서튼, 한화 외야수 제이 데이비스, 2007년 두산 투수 다니엘 리오스, 2008년 롯데 외야수 카림 가르시아, 2009년 KIA 투수 아킬리노 로페즈 등이다. 물론 수치에선 많은 구단들이 그간 경쟁이 치열한 투수를 주로 데려왔단 점이 감안되어야 한다.
다수 관계자들은 장원삼의 수상에 소속팀의 통합우승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류중일 삼성 감독은 “삼성의 우승에 장원삼의 역할이 무척 컸다. 가장 잘했을 때보다 4승을 더 했다”라며 제자를 응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이 그랬던 건 아니었다. 다른 야구 관계자는 말한다.

“야구는 단체운동이라 팀 우승이 중요하다. 장원삼을 비롯한 삼성 선수들은 이미 최고 자리에 올라섰다. 다른 팀 선수들이 누리지 못한 영예를 2년 연속 차지했다. 골든글러브는 다르다. 평등한 조건에서 누구나 타이틀을 노릴 수 있다. 꼴찌로 쳐진 팀 성적은 관계없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 빼어난 성적을 남긴 점은 더 인정받아야 한다. 축 쳐진 팀 분위기와 동료들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장원삼(사진=현대 유니콘스 제공)

장원삼(사진=현대 유니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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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장원삼과 나이트의 투구 환경은 판이했다. 삼성의 블론세이브는 5개. 넥센은 11개로 2배가 더 많았다. 타선의 득점도 다르지 않았다. 삼성이 628점을 올린 반면 넥센은 549점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 야구 해설위원은 “악조건을 딛고 좋은 성적을 남긴 것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나이트는 지난해 7승 15패로 리그 최다패 투수였다. 당시 승률은 31.8%. 류 감독이 가리키는 4승 추가가 놀라운 성적이라면 나이트의 반전은 기적에 가까웠다.

사실 장원삼은 나이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투수다. 빼어난 투구에도 좀처럼 빛을 보지 못했었다. 그가 프로에 데뷔한 2006년을 기점으로 넥센의 전신 현대는 내리막을 걸었다. 선수단은 2007시즌 뒤 문을 닫기까지 했다. 장원삼은 상복과도 거리가 멀었다. 2006년 12승 10패 평균자책점 2.85를 남기고도 류현진(18승 6패 평균자책점 2.23)이라는 괴물의 출현으로 신인왕을 받지 못했다. 소속팀이었던 현대는 인기도 없었다. 승리를 챙기고도 인터뷰 한 번 받지 못한 채 쓸쓸히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당시 장원삼은 “제 팔자가 원래 이렇죠 뭐”라며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했다.

넥센 프런트들은 이 같은 과거를 누구보다 잘 안다. 이 때문에 나이트의 수상 불발에 아쉬워하면서도 장원삼에게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 넥센에게 장원삼은 복덩이나 다름없었다. 팀이 재창단한 2008년,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도 12승 8패 평균자책점 2.85을 올리며 선수단의 탈꼴찌를 이끌었다. 팀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을 땐 삼성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숨통을 트이게 해줬다. 급전이 필요했던 선수단에 정상 운영의 기틀을 마련해줬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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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그토록 고대한 골든글러브 수상에도 장원삼은 함박웃음을 짓지 못했다. 수상 논란에 따른 팬들의 비난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대한 부담이다. 그의 측근은 “장원삼은 죄가 없다. MVP도 박병호가 받는 게 맞다고 이야기한 친구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갑작스런 팬들의 반응에 많이 힘들어하는 듯 보인다”라고 전했다. 장원삼은 앞서 MVP 후보에 올랐을 때 “내게 투표권이 있다면 박병호를 선택하겠다. 1위 팀 프리미엄 없이 순수하게 봐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시상식 직후에도 그는 겸손했다.

“WBC에 나가서 잘하라는 의미로 골든글러브를 받게 된 것 같다.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정말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체중은 그대로인데 아직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창원에서 등산을 하고 있는데 더 체력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수상자가 상을 받고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한 골든글러브. 프로야구 최고의 잔치는 그렇게 또 한 번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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