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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시장 붕괴 10대 사건

최종수정 2012.10.19 10:09 기사입력 2012.10.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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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1987년 10월 19일 미국 증시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사이 22.6%나 폭락했다.

경제 매체 마켓워치의 마크 허버트 칼럼니스트는 당시 대폭락이 오늘날 재현된다면 다우 지수가 3000포인트 정도 폭락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17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세계 대공황의 신호탄이었던 1929년 10월 24일 대폭락을 넘어서는 1987년 사건에 대해 흔히들 '블랙 먼데이'라고 부른다. 뉴욕 대학의 하비에르 가벡스 전 교수는 증시가 하루 사이 20% 빠질 확률이 104년에 한 번 꼴이지만 결코 방심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마켓워치는 블랙 먼데이 25주년을 맞아 시장 붕괴의 10대 사례에 대해 소개했다.

◆1637년 튤립 버블=17세기 해상 무역을 장악한 네덜란드는 유럽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의 소득 수준은 유럽에서 가장 높았다. 이들은 부(富) 과시용으로 정원을 가꿨다. 이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던 것은 터키에서 들여온 튤립이다. 네덜란드인들 사이에서 점차 특이한 튤립이 인기 끌면서 튤립 가격은 폭등했다. 튤립 가격은 노련한 경작인이 연간 챙기는 수입의 수배까지 치솟았다. 사람들이 튤립 가격과 관련해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다고 깨달은 순간 튤립 값은 최고치 대비 수천분의 1로 폭락했다.

◆1720년 미시시피 버블=프랑스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영국인 존 로는 프랑스령 아메리카 식민지 개발과 연계된 주식회사 '미시시피'를 세웠다. 미시시피는 실적이 매우 나빴다. 하지만 미시시피가 독점 개발권을 갖고 있는 루이지애나에 금이 묻혀 있다는 소문으로 500리브르였던 회사 주가는 1만5000리브르까지 폭등했다. 그러나 미시시피는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수익을 내지 못한 채 엉뚱한 데 투자해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1720년 남해 버블=1711년 남해상사는 영국의 막대한 재정부채 일부를 떠안는 조건으로 세워졌다. 남해상사는 무역으로 이윤을 챙기는 회사였다. 그러나 밀무역과 해난사고로 사업 자체가 부진하자 복권업에 손댔다. 이후 국채와 회사 주식 교환 등 각종 편법으로 수익 사업을 벌였다. 이에 100파운드였던 주가는 1050파운드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시장이 위기에 처했다는 판단 아래 개입하자 주가는 폭락하고 투자자는 막대한 손실을 안게 됐다. 당시 손해 본 사람들 가운데는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도 포함됐다.

◆1869년 블랙 프라이데이=미국의 벼락부자 제이 굴드, 금융업자 제임스 피스크는 정치권과 유착해 금 시장을 장악했다. 1969년 9월 24일 금값이 온스당 145달러에서 162달러로 치솟았다. 이는 굴드의 가격 조작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자 당시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은 시중에 금을 풀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금값은 순식간에 폭락했다. 이후 100년 동안 금값은 162달러를 넘어서지 못했다.

◆1882년 프랑스 증시 대폭락=이는 위니옹제네랄 은행의 파산으로 촉발된 증시 붕괴 사건이다. 당시 증권사 중 25%가 파산 위기를 맞았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증시는 비로소 문 닫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증권거래소 직원이었던 폴 고갱은 증시 폭락 여파로 일자리를 잃어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1907년 패닉=1907년 신탁업체 니커보커가 유나이티드 코퍼의 주식을 사들였다. 유나이티드 코퍼를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구리 가격이 하락하자 유나이티드 코퍼의 주식은 폭락했다. 니커보커 고객들이 투자금을 날릴까 두려워 니커보커로 몰려가는 '뱅크런'까지 발생했다. 당시 사태는 미 증시 전체를 189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투자은행 JP모건의 피어폰트 모건 회장은 다른 신탁회사 회장들을 소집해 파산 위기에 처한 은행ㆍ증권사ㆍ신탁사를 구제했다. 당시 미 금융기관들의 위기 대응에서 훗날 탄생한 것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다.

◆1929년 대공황=1929년 증시 붕괴로 미국은 대공황에 휩싸였다. 투자자들은 주가가 오르리라는 기대 아래 빚까지 내 주식을 사들였다. 그러나 증시 붕괴로 그 동안 모은 재산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후 미국은 이런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연방 기구 설립에 나섰다.

◆아시아 외환위기=1997년 10월 27일 홍콩 항셍지수가 6% 하락한 것을 계기로 다우 지수도 같은 날 554.26포인트나 빠졌다.

◆2008년 금융위기=2008년 9월 29일 미 의회가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실패하자 다우 지수는 700포인트 가까이 빠졌다.

◆플래시 크러시=2010년 5월 6일 다우 지수가 20분 사이 급락했다. 장중 역대 최대 하락폭인 998.50포인트나 하락했다. 당시 증시 붕괴는 고성능 컴퓨터로 1초 사이 수차례 주문을 내는 초단타 매매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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