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 '수출의 여인상' 화단 구석서 1년째 방치
'수출의 여인상'을 만난 것은 태풍 텐빈이 비를 뿌리던 30일. 서울 구로동 한국산업단지공단 내 화단 귀퉁이에 그녀가 비를 맞으며 쓸쓸하게 서 있었다. 원래 위치는 산단공 앞마당이었지만 2014년 들어설 20층짜리 비즈니스센터에 밀려나 벌써 1년째 방치되고 있었다.
수출의 여인상은 지난 40년 간 구로공단에서 한국의 수출산업과 고락을 함께 해왔다. 올해 나이가 39세. 한국 최초 공업단지인 구로공단의 탄생 10돌(1974년)을 맞아 세워진 수출의 여인상이 한살한살 나이를 먹으면서 100억 달러였던 수출액도 50배인 5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수출을 상징하는 동상이 남성이 아닌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구로공단 초기 섬유ㆍ봉제산업을 이끈 여성 근로자들의 중요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주야간 2교대, 12시간씩 일하며 산업발전의 밑둥을 받친 여성 노동자들의 땀방울을 잊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공단 입주자들을 더욱 서운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풍조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다. 정치권에서 부는 기업 옥죄기 바람은 대선을 앞두고 더욱 서슬이 퍼렇다. 기업인을 죄악시하고 기업을 얕보는 세태에 수출 역군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구로디지털단지의 한 입주사 대표는 "여당의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씨가 전태일 동상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작 국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수출역군을 상징하는 여인상은 방치되는 현 상황이 떠올라 씁쓸했다"며 "구로단지를 만들고 수출산업 육성을 통해 이 나라를 발전시킨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대표적인 치적인데, 수출역군을 너무 홀대하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산단공 관계자는 "비즈센터와 어린이집 공사 때문에 동상을 잠시 옮겨놓았을 뿐"이라며 "2014년 비즈센터 건설이 완료되면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지은 기자 leez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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