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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聲 시원한 그 동네, 겸재가 그렸고 추사가 읊었던...

최종수정 2012.08.17 13:03 기사입력 2012.08.1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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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⑧ 수성동계곡

아파트 사라지니 나타난 인왕산의 속살..그림속 돌다리 아직 있어

옥인시범아파트 있던 자리
주민의견 따라 기린교 중심 복원
윤동주 하숙집·이중섭 가옥 등
근대의 흔적들도 남아있어


수성동 계곡이 겸재 정선의 그림 '수성동 장동팔경첩'에 담겨있다. (왼쪽, 영조 27년(1751년) 종이에 채색. 간송미술관 소장). 정선의 그림 따라 복원된 수성동 계곡. 점선 안 돌다리의 모습이 그림과 똑같다.(오른쪽)

수성동 계곡이 겸재 정선의 그림 '수성동 장동팔경첩'에 담겨있다. (왼쪽, 영조 27년(1751년) 종이에 채색. 간송미술관 소장). 정선의 그림 따라 복원된 수성동 계곡. 점선 안 돌다리의 모습이 그림과 똑같다.(오른쪽)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긴 폭염이 끝나고 장댓비가 내린 후 인왕산 자락 수성동(水聲洞) 계곡물이 오랜만에 콸콸 흘렀다. 이름처럼 물 소리가 청명하고 경쾌하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 담긴 '수성동' 그림처럼 그모습 그대로다. 계곡을 좌안과 우안으로 가르는 '기린교'도 보인다. 그림에는 세 명의 선비와 꼬마머슴이 기린교 오른편 좌안 언덕위에서 인왕산 자락을 한껏 쳐다보고 있다. 녹색빛을 머금은 소나무들과 빼어난 자태의 바위들은 여름 정취를 더 한다.

지난 15일 오후 4시께 경복궁 서쪽 서촌의 명소로 자리잡은 수성동 계곡을 올랐다. 통인시장의 긴 아케이드를 가로질러 곧장 20분쯤 천천히 걷다보면 육안으로 인왕산이 또렷해진다. 계곡으로 가는 오르막길 주변으로는 윤동주의 하숙집과 화가 박노수의 가옥도 만나볼수 있다. 티벳박물관을 지나 9번 마을버스 종착지가 다다르고 이어서 바로 계곡이 펼쳐진다. 옥인동 179-1일대 1만97.2㎡의 면적이다.
물살이 빨라진 계곡 가까이에 올라 인왕산을 등지니 서울시내가 한눈에 다 보인다. 뒤로는 안개낀 인왕산 바위의 장대한 모습이 펼쳐진다. 이곳 계곡물은 만수천, 인왕천, 인왕산에 자리한 작은 암자 석굴암 인근 등 총 3곳의 물길들이 합쳐져 내려온다. 이어 이곳 물은 청계천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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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수성동' 그림을 그대로 옮긴 '수성동 계곡'= 지난 6월 수성동 계곡 복원공사가 완료된 후 이곳은 주민들의 안식처이자, 서울시내에서 드문 역사적 문화적 경관으로 탈바꿈됐다. 원래는 지난 1971년 지어진 옥인시범아파트 9개동이 있던 자리였다.

한데 이곳이 정선의 그림처럼 똑같이 복원된 것은 그냥 된 게 아니다. 지난 2007년 이곳의 문화유적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옥인아파트 옆 계곡 암반의 벽사이에 그림의 '돌다리'가 아직까지 현존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도성내 유일하게 원위치에 보존된 통돌로 만들어진 가장 긴 다리라는 것이 확인되면서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자는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수성동 계곡이란 지명도 정선의 그림에서 연유됐다. 지난 2010년 10월에는 서울시 기념물 31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기린교가 발견되기 이전 인왕산자락을 가린 아파트를 철거하고 공원부지로 조성하려고 했던 것에서 '경관보존'을 중심으로 공사 계획이 뒤바꿨다. 기린교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수성동 계곡을 만나긴 힘들었을 것이다.

수성동 계곡은 조선시대 수성동으로 불리며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함경지략' 등에도 명승지로 소개됐다. 이들 사료를 통해서도 수성동 계곡을 역사적 고증대로 복원해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안평대군의 옛 집터인 '비해당'이 인근에 자리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추사 김정희의 시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에서도 계곡에 대한 찬사가 고스란히 적혀 있다.

"수성동에서 비를 맞으며 폭포를 보고 심설(沁雪)의 운(韻)을 빌린다.
골짜기 들어오니 몇 무 안 되고, 나막신 아래로 물소리 우렁차다.
푸르름 물들어 몸을 싸는 듯 대낮에 가는데도 밤인 것 같네."

수성동 계곡의 물살이 흐르고 있는 모습. 옛 기록에는 없지만 사모정이라는 정자를 하나 세워뒀다.

수성동 계곡의 물살이 흐르고 있는 모습. 옛 기록에는 없지만 사모정이라는 정자를 하나 세워뒀다.


◆수성동 계곡에서 만난 근대의 흔적들= 현재 수성동 계곡에는 정선의 그림에서 없는 것들이 몇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지난 1971년 지어진 옥인시범아파트의 흔적이다. 9개동을 다 허물고 6동 한개동 벽면 일부를 계곡의 좌안 경사진 언덕위에 그대로 보존해뒀다. 또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계곡 옆에 자그마한 정자 '사모정'(가칭)을 세워뒀다. 정선의 그림속 선비들이 서있던 위치다. 최대한 인위적인 시설물은 배제하되 정선의 그림 그대로 복원하자는 계획은 공사기간을 고려하고 주민 의견을 반영하면서 완벽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 수성동 계곡 복원사업은 대체로 주민참여나 만족도면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있는 공사라는 의견이 크다. 더욱이 6개월이나 공기가 지연된 까닭은 다양한 주민의견 수렴을 통해 설계변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복원사업에는 관할 구청뿐 아니라 문화재 위원과 주민들, 환경단체들이 함께 만들어나갔다. 서촌을 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민 모임 '서촌주거공간연구회'에서도 여러 의견을 보탰다. 콘크리트 등 기존 인공적인 석축과 계곡의 보들을 최대한 줄이고, 체육시설이나 인공물들을 없애자는 의견이 연구회에서 개진됐고 또 받아들여졌다.

김한울 서촌주거공간연구회 간사는 "3~4년정도 더 시간을 두고 자연스러운 물줄기를 만들도록 하자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1000억원 가까운 사업비용에 대규모 공사이기 때문에 이것까지는 반영이 쉽지 않았다"면서도 "전문가와 공무원, 주민들이 수차례 회의를 하고 조율했다는 데 좋은 행정사례"라고 설명했다.

김 간사는 이어 "이번을 계기로 해 앞으로 문화재 복원의 패러다임도 조금씩 바뀌길 바란다"면서 "자연과 기존 경관이 천천히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본 후 공사 설계에 들어가는 등 여러 변화들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송동 계곡 오른편으로 1971년도에 지어진 옥인시범아파트의 한 벽면을 남겨져 있다.

수송동 계곡 오른편으로 1971년도에 지어진 옥인시범아파트의 한 벽면을 남겨져 있다.


◆수성동 계곡 아래 서촌 명소 살펴보니= 서촌은 북촌이나 삼청동, 인사동 못지않은 관광명소라는 명함이 붙어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마을이 됐다. 최근 한옥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서촌은 사람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수성동 계곡 인근에도 인왕산자락을 거닐며 '서시', '별헤는 밤' 등 명시를 남긴 윤동주의 하숙집터, 친일파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은 후 박노수 화백이 살았던 가옥도 보인다. 또 인근 누상동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안 이중섭 화백이 첫 개인전을 준비하며 6개월 짧은 기간 동안 기거하던 가옥도 있다.

조선시대 중인계급들이 모여 시사를 결성한 곳도 수성동 계곡인데, 이 시사의 이름은 바로 '송석원'이다. 옥류동천의 이름을 따 옥계시사라고도 하는데, 정조 10년 1786년 규장각 서리들을 중심으로 결성됐다. 송석원 터는 윤덕영이 이 일대 벽수산장을 지으며 사라졌다. 현재 재개발 예정지에 포함돼 있는 송석원 터에는 추사 김정희가 바위에 새긴 각자가 어느 주택 안에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계곡 바로 앞 통인시장은 사람들이 지나가기도 어려운 좁은 골목으로 천막, 일본식 다다미방과 한옥이 즐비했다고 한다. 이곳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한옥담장 옆에서나 담을 허물어 소규모로 난전을 펼치고 장사를 하며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를 한다.

김 간사는 "서촌이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많은 데이트 명소로 단순한 이미지를 갖기 보다는, 대신 역사적으로 조명할만한 정취 있는 공간들이 많다는 것에 공감대를 가지고 보존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옥인시범 아파트 철거 전(왼쪽) 모습과 수송동 계곡 복원 후 모습(오른쪽).

옥인시범 아파트 철거 전(왼쪽) 모습과 수송동 계곡 복원 후 모습(오른쪽).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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