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가 정치권의 최대 유행어로 부상하면서 궁지에 몰린 곳이 있다. 바로 재계다. 정확히는 재벌과 대기업이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경제적인 불평등을 바로잡자는 경제민주화가 재벌과 대기업 때리기로 귀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계는 경제민주화가 재벌 때리기 수단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내놓은 재벌 총수 사면 금지(경제민주화 1호), 재벌 일감 몰아주기 금지(2호),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및 가공 의결권 제한(3호) 등의 법안만 보더라도 경제민주화가 기업 경영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건 분명하다.
대기업들이 불공정 거래를 하거나 위법행위를 한다면 분명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그러나 일시적 포퓰리즘 때문에, 혹은 국민정서를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규제 카드를 꺼내선 안된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의 규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출 필요가 있다. 성장동력 역할을 해온 대기업을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해소 등 대한민국만의 규제로 옥죌 경우 대기업은 물론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경제민주화가 재벌, 대기업 때리기로 귀결되면서 이들이 마치 부도덕한 집단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로 인해 최근 직원들의 사기저하나 경영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호소도 늘고 있다. 한 그룹 임원은 "선거철이면 되풀이되는 반기업정서가 올해 더욱 강하게 몰아치면서 엄청나게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며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정중동 해야 할 것 같아 신규사업 진출은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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