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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 이겨낸 김성현, 왜 경기 조작 가담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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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 이겨낸 김성현, 왜 경기 조작 가담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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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2007년 8월 16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날아든 소식에 고교, 대학선수들의 표정은 기쁨과 좌절로 나뉘었다. 명암을 가른 기준은 2008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회의 결과. 김성현은 웃는 쪽이었다. 6순위를 쥔 현대로부터 1순위로 지명됐다. 제주관광산업고(현 제주고)가 프로 진출 선수를 처음 배출한 순간이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가 느낀 짜릿함은 두 배에 가까웠다. 함께 마운드를 지킨 김수완과 배터리를 이룬 박상신이 각각 롯데와 KIA의 부름을 받은 까닭이다. 이전까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제주고는 그렇게 3명의 프로선수를 배출하며 야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외롭게 야구했던 아이”

사실 김성현, 김수완 등은 모두 제주도 출신이 아니다. 그해 제주고의 20명의 선수 가운데 지역 출신은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야구를 하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당시 박상신은 “(선수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전 학교에서 감독, 코치와 불화를 겪은 경험이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선수는 “이전 학교에서 ‘회비’가 밀렸다는 이유로 코칭스태프와 마찰을 빚다 (제주도로) 오게 됐다”고 털어놨다. 김성현은 코치와의 불화 등을 이유로 제주도 유학을 결심했다. 성낙수 제주고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성현이의 아버님이 직접 학교를 찾아와 아들의 전학을 부탁했다. 간곡한 요청에 허락을 했는데 이후로는 아버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아마추어 선수를 둔 일반 학부모들과 다소 다른 행보. 그래서 성 감독은 김성현에 대해 “외롭게 야구를 했던 아이”라고 말했다. 당시 팀 동료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한 선수는 “야구밖에 모르는 친구였다. 늘 밝은 얼굴을 보였지만 성공하려는 의지가 남달랐다”라고 전했다. 다른 선수는 “남들이 놀 때 남몰래 공을 던지는 등 두 배 이상 땀을 흘렸던 친구”라며 “당시 제주고가 전국규모 대회에서 두 차례나 8강에 오른 건 성현이의 피나는 노력 덕에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김성현이 처음 주목을 받은 건 대구고 1학년 때인 2005년이다. 팀을 청룡기고교야구대회 준우승으로 이끌며 감투상을 수상했다. 제주고로 둥지를 옮긴 뒤에도 승승장구는 계속됐다. 가장 빛난 건 2007년 대붕기대회 청원고전. 선발투수로 11.2이닝을 던지고 승리투수가 됐다. 이날 경기에서 그는 10.1이닝동안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현대가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 김성현의 이름을 호명한 주된 이유였다.

피나는 연습은 계약금 1억 1000만 원, 연봉 2000만 원의 입단 계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프로에서의 앞길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입단 첫 해부터 생각하지 못한 아픔을 겪었다. 현대 왕조의 몰락이다. 팀의 이름은 한순간 히어로즈로 바뀌었다. 연고지도 서울로 이전했다. 넥센 한 선수는 “성현이가 입단하자마자 팀이 문을 닫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신인으로 괴로움이 무척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신인은 곧 막내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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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은 외유내강에 가까웠다. 불안을 노출하는 법이 드물었다. 제주고 시절부터 그랬다. 동료들 사이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불렸다. 모자의 챙에 새겨 넣은 ‘I can do it(나는 할 수 있다)’ 글귀는 이런 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김성현은 문구를 적은 이유에 대해 “대구에서 자라서 제주도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글귀처럼 나 자신만을 믿고 훈련에만 매진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라운드 안팎에서 늘 당당했다. 막내로 참가했던 히어로즈 창단식 때도 그랬다. 올 시즌 포부를 묻는 질문에 “다른 구단의 쟁쟁한 신인들을 제치고 신인왕이 되고 싶다. 신인의 패기로 40세이브 이상을 따내겠다”라고 말했다. 공언은 빈말이 아닌 듯 했다. 시범경기에서 최고 구속 155km를 자랑한 까닭이다. 슬라이더의 스피드도 142km였다.

검은 돈, 왜 뿌리치지 못했나

프로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첫 해 성적은 승리 없이 4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03. 이듬해 2승(4패)을 거뒀지만 평균자책점은 6.99까지 뛰어올랐다. 가능성을 드러낸 건 2010년. 24경기에서 7승 8패 평균자책점 4.90을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해 넥센의 선발 한 축을 맡다 7월 31일 트레이드를 통해 LG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대구지방검찰청에 따르면 김성현이 경기 조작에 가담한 건 이적 전인 지난해 4월 24일 삼성전과 5월 14일 LG전이었다. 이 가운데 LG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게임당 500만 원씩 총 1천만 원 가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조작 사실이 알려진 뒤 넥센과 LG 구단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넥센 한 선수는 “믿겨지지 않는다. 승부욕이 무척 강했던 선수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선수는 “그렇게 밝던 성현이가 모자를 눌러쓰고 수갑에 묶인 모습을 보며 많이 안타까웠다. 아직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LG 구단 한 선수는 “참 좋은 친구였는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검은 돈의 유혹에 빠진 건 스포츠계의 엄격한 선후배 질서에서 비롯된다. 브로커로 알려진 김 씨는 제주고 선배였다. 프로 문을 두들기는데 실패한 뒤 영남대에서 투수로 활동하다 제주 출신 브로커 강 모씨를 만나 불법 스포츠도박과 관련한 선수 섭외 브로커로 일했다. 다수 야구 관계자들은 김성현이 정황상 선배의 끊임없는 권유를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제주 지역 한 야구 관계자는 “제주고는 타지에서 온 선수들로 구성돼 선후배 관계가 타 학교에 비해 센 편”이라며 “단순한 권유에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프로배구 경기 조작에서 KEPCO 소속의 일부 선수들은 선배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어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시각도 있다. 김성현의 변호사는 “승부조작을 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승부조작에 실패한 뒤부터 브로커들의 협박과 공갈에 못 이겨 자신이 받은 사례비에 집 보증금까지 보태 3000만원을 뜯기기도 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일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족이 많이 아파 돈이 필요하고 이로 인해 빚을 많이 지는 등 김성현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김성현이 브로커의 집에서 함께 지낸 정황을 포착해 함께 도박을 벌였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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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은 프로에서 뛴 4년 동안 총 2억 4100만 원을 벌어들였다. 이 가운데 1억 1천만 원은 계약금이었다. 적지 않은 돈은 다소 늦게 지급받았다. 히어로즈 구단의 불안정한 자금 사정 탓이었다. 넥센 한 선수는 “한 분기를 건너뛴 뒤에야 돈을 만질 수 있었다”면서도 “선배들보단 빨리 지급받아 큰 불만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성현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제때 지급되지 않는 급여는 경기 조작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최근 국제프로축구선수연맹이 동·남유럽 12개국에서 뛰는 선수 3357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23.6%는 자기 리그에서 경기 조작이 일어나고 있다고 답했다. 보고서에서 눈길을 끈 내용은 선수들의 급여가 제때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경기 조작이 기승을 부린다고 지적한 점이다. 생활고를 겪게 되는 프로 선수들이 거금을 제시하는 경기 조작 세력의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는 설명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동유럽에서 뛰는 선수 가운데 41.1%가 급여 체불을 겪었다.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경기 조작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김성현이 경기 조작에 가담한 지난 시즌 초는 넥센 구단의 재정이 안정화에 도달한 이후다. 이장석 대표는 “처음으로 구단 운영에 많은 신경을 썼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스며든 배금주의 등의 천민자본주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학연, 지연의 끈까지 얽매였다면 더욱 그러하다.

뫼비우스의 띠를 풀지 못한 대가는 참혹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5일 김성현과 박현준에게 규약 제144조 3항에 의거, 야구 활동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기로 했다. 이는 선수 생활의 불가를 의미한다. 경기, 훈련 등 일체의 구단 활동에 참가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그 기간 동안의 참가활동 보수도 받을 수 없다. 연봉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뼈아픈 건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다는 점이다. 제주도까지 내려가 외로움을 극복하며 배웠던 야구. 한 순간의 잘못으로 10년 넘게 쏟은 땀의 의미는 퇴색되고 말았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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