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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기획】물랑루즈, 원 나잇 스탠드 패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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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C말, 美는 야하게 조작됐다

[아시아경제 채정선 기자]

【스타일 기획】물랑루즈, 원 나잇 스탠드 패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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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영화의 옷을 벗기다
필자는 패션 큐레이터로, 패션이란 영역을 미술이란 광범위한 렌즈를 통해 풀어내는 일을 한다. 한 벌의 옷을 연구하기 위해서라면 다양한 자료를 살펴보는데, 영화도 그 중 하나다. 영화와 패션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특히 시대영화를 보는 날엔, 영화 속 의상의 역사고증 여부를 살피느라 온 몸의 감각을 다 동원하곤 한다.
역사적으로 패션의 절정기로 평가되는 시대가 있다. 19세기 말의 패션이다. 이 세기말 패션의 모든 것은 2001년 바즈 루어만 감독이 연출한 ‘물랑루즈(Moulin Rouge)’에 담겨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랑루즈’, 이것은 영화 타이틀이자 매춘부이자 배우인 샤틴(니콜 키드먼 분)과 작가인 크리스티앙(이완 맥그리거 분)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공연을 위해 리허설을 준비하는 장소, 영화의 주요 배경이다. 1899년 세기 말의 파리, ‘붉은 풍차’란 뜻의 물랑루즈 카바레는 파리 사교계의 정점이자, 구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매춘부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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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근대패션의 시작
세기말은 근대적 유행의 개념이 일상에 자리 잡은 시기다. 인공염색이 발명되어 여인들의 패션은 더욱 화려해지던 때. 재봉틀의 발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도시생활은 근대적 인간의 삶을 ‘기능’과 ‘용도’, ‘경우’에 따라 나누었고, 패션도 이에 따라 발전했다. ‘T.P.O(Time, Place, Occasion으로 때와 장소에 맞춘 옷차림)’ 개념의 시작이다.
당시 시대상을 설명하자면, 19세기 중반은 백화점과 고급 패션 하우스가 등장하던 때다. 백화점은 대량 생산된 싸구려 의상을 팔고, 패션 하우스에서는 디자이너들의 이름하에 자신의 옷을 예술품이라며 판매했다. 어디서 구입해, 어떻게 입는가는 곧 여성의 사회계층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 알리 드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물랑루즈

▲ 알리 드 툴루즈 로트렉이 그린 물랑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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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당시에는 패션의 민주화가 있었다. 이것은 영화에서 계층의 이해를 넘어, 서로를 탐닉하고 어울릴 수 있도록 만든 요소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이면이 드러나는 카바레, 그 속에서 부자들은 여인들의 몸을 탐닉했고, 일명 ‘재투성이 아가씨’라 불리던 여자 재봉사들은 럭셔리한 한 벌의 옷을 위해 원 나잇 스탠드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진리와 사랑, 자유를 외쳤다. 바로 보헤미안(Bohemian)이 등장한 것이다.

보헤미안은 19세기 후반에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기존의 계급과 질서에 반항하는 세력으로 반 부르주아적 성향을 띠는 집단이다. 영화 속에서 작가로 등장하는 크리스티앙이 바로 보헤미안이다. 영화는 매춘부이자 카바레 배우인 샤틴과 크리스티앙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며 흘러간다.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과 함께 출연하는 보헤미안들의 패션이 볼만 하다. 당시는 검정색이 남성복의 지배색상으로 자리 잡던 때다. 그럼에도 화려한 색상의 머플러와 재킷을 입은 피아니스트, 머리에 베일을 쓰고 나타나는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영화에 등장하는 프랑스 화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패션은 오늘날 하라주쿠의 고딕 의상, 소위 하위문화 패션이다. 영화는 이들의 패션을 통해 기성패션과 선을 그은, 예술가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물랑루즈, 세기말 패션의 아름다움
이 인상적인 영화의 의상은 바즈 루어만 감독의 부인 캐서린 마틴이 맡았다. 그녀는 정확한 역사적 고증을 통해 주인공의 성격에 맞는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영화 속 보여 지는 극장 관객들의 경우 당대 패션 코드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실크 모자를 썼다. 또한 영화 속 공작과 공연단장이 입고 있는 쓰리피스 정장(상의 조끼, 바지)은 남성복의 정형이다. 남성용 모자를 쓰고 투피스 정장을 한 여성의 모습도 보인다. 당시 1899년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더불어 복식의 간소화 경향이 짙어지던 시대임을 입증한다.

샤틴의 의상은 여느 인물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1890년대 여성복에 영향을 미친 예술사조인 아르누보(Art Nouveau, 19~20세기에 유럽과 미국 각지에서 유행한 장식 양식)를 감안, 꽃과 줄기를 모티브로 한 유기적인 곡선을 패션에 적용했다. 샤틴이 의상에 꽃무늬를 검정색 실크로 유려하게 수놓은 것들이 많은 이유다. 덕분에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의상에서 율동감과 생동감이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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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패션, 유럽강국의 은폐된 역사
샤틴과 크리스티앙은 영화 속에서 ‘장엄, 장엄’이라는 연극을 만든다. 이 연극 안에서는 인도를 배경으로 한 패션이 등장한다. 당시 유럽에선 동방 풍의 패션이 유행했다. 유럽 열강이 침탈국의 문화를 도입하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코끼리 방이 등장하는 것도 근대 말 침략의 역사와 지배를 표현하기 위한 메타포다.

또한 주인공 샤틴이 ‘드미몽드(demi-monde, 절반의 세계)’라 불리는 매춘부였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빛의 무대에 서지 못한 채 세상의 이면에 무차별로 노출되어야 했던 이들이다. 영화 밖에서 이들의 삶은 비참했다. 그럼에도 유럽은 유독 이들을 미화시키는 나쁜 버릇이 있다. 물론 이 영화는 돈만 많고 버르장머리 없는 부르주아에 대한 유쾌한 복수로 끝이 난다. 하지만 이 또한 다른 의미의 ‘은폐’인 셈이다.

글_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세계의 모든 미술관 다니기, 도록 및 모노그래프 모으기, 패션 시즌 신상품 체크하기, 복식 관련 책 읽기, 대학과 기관에 특강 다니기……. 이것은 그의 블로그(blog.daum.net/film-art)에 적힌 그의 프로필 중 일부다. 무엇보다 그는 국내 패션큐레이터 1호로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샤넬 미술관에 가다> <하하 미술관>이 있고, <패션 디자인 스쿨(미진사)>를 번역·출간했다.







채정선 기자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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