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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여자, 강북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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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강남 산다며? 형제 많은지도 살펴야해. 할아버지 직업도 봐야하구”

[아시아경제 박지선 기자]

“필립, 너 여자 만난다면서? 그 여자가 삼성동 부자들 산다는 마당 딸린 집에 산다고 들었는데, 형제는? 아버지 돈 많아도 형제 많음 꽝이야.” 레스토랑 뒷자리에서 얘기하던 그 남자는 강남 살까? 강북 살까?

프랑스 파리는 세느강을 기준으로 좌안 우안으로 성격이 달라진다.

중세 시대부터 왕궁과 귀족들의 거주가 많던 우안, 학문의 전당이던 소르본느가 자리잡은 좌안. 두 곳은 분위기도 다르고 대표되는 정신 또한 다르다.

정치와 상업 활동의 중심이던 우안은 귀족적이며 부르주아적인 전통이 강하다. 좌안은 새로운 학문의 산실이었고, 학생들의 개혁적인 사상이 태동하던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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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느강이 파리의 성격을 나누었듯 한강은 서울의 성격을 나눈다. 강남 강북으로.

지방 사는 후배가 서울 온 그날 밤 기자는 청담동에서 후배를 만났다. “간판에 ‘동’ 이름이 이렇게 크게 적힌 곳은 첨봤어요. 온통 청담동 투성이에요. 청담 치과, 청담 학원, 청담 동물병원, 은행까지도 청담 지점 글자가 제일 커요. 청담동이 정말 자랑스러운가봐요.”

후배는 말을 이어갔다.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친구들이 주말엔 강남 나들이 간댔어요. 그날은 젤 예쁘게 한댔어요. 정말 여긴 예쁜 여자 잘생긴 남자만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오늘 너무 지방 사람같아 선배님 부끄러우실 것 같아요.”

기자는 후배와 특별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다. 찾아간 곳은 신사동의 스테이크 전문점. 고기 숙성 방식을 고를 수도 있어 특이했고, 맛도 좋은 곳이다. 웬만한 레스토랑보다 두 배 비싸지만 후배에게 그곳을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예약 안주셨나요? 지금 자리가…” 레스토랑 직원은 친절하지 않다. 강남 음식점은 대체로 그렇다. “테이블 자리는 없고 바에 앉아 드셔야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테이블마다 비싼 와인 한 병씩 놓여져 있다. 와인을 안마시겠다하자 직원은 가르치듯 한마디 했다. “많이 안드실거면 하우스 와인이라도 곁들이세요. 그래야 고기 맛이어요.”

후배는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뒷자리 남자들은 영어를 섞어 쓰며 대화했다. 목소리가 커서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필립, 너 여자 만난다면서? 그 여자가 삼성동 부자들 산다는 마당 딸린 집에 산다고 들었는데, 형제는? 아버지 돈 많아도 형제 많음 꽝이야.” 다른 친구가 한마디 덧붙였다. “요즘엔 할아버지가 뭐하셨는지도 봐야한다니까!”

발레리나 선발 과정에서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 당사자의 할머니 체형까지 본다는 얘기는 들어봤다. 여자친구 만나면서 할아버지 직업까지 살펴야한다는 깨알같은 조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학 졸업반 조카가 했던 말이 있다. “강북 아파트 살 돈인데도 강남 소형 아파트 전셋값도 안된다죠. 강남 사는 여자 만나기 부담스러워요. 동기 여자애들 중에는 강남 사는 남자 만나기 위해 강남 스타일을 연구하고 다녀요. 잡지 보면서. 강북에서 태어난게 죄인것 같아요.”

한강. 강남의 기적을 만들었다

수지 살면 분당, 정릉 살면 성북동, 송파 살면 잠실 산다고 한댔다. 그렇다면 진짜 강남으로 불리는 압구정동, 삼성동, 도곡동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강남이 아니라 미국 어느 부촌 마을쯤이라고 착각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 있다.

장충동에서 동호대교를 지나 압구정 전철역을 뒤로하면 강남의 속살이 드러난다. 압구정 전철역 주변 반경 300M 안에는 성형외과 간판이 1백여개가 넘는다. 기자가 한 번 세어봤는데 여든개쯤 세다가 그만두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펴낸 ‘2009년 전화번호부 등록 기준 813개 업종’을 분석하면 서울에 있는 성형외과 3곳 중 2곳, 커피전문점 3곳 중 1곳이 강남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텍사스대학 노동경제학 교수 다니엘 헤머메시(Daniel hammer mesh)의 저서 중에는 <아름다움은 값을 한다: 매력적인 사람이 더 성공하는 이유>라는 책에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내용이 실렸다.

외모를 제외한 다른 조건이 같다면 미국과 캐나다에서 못생긴 남자의 소득이 평균보다 9.1% 낮다는 것. 잘생긴 남자는 평균보다 5.3%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강남 사람들은 아름다워질 수 있는 기회가 많기에 소득 수준이 더 높은 것일까? 아름다움이 권력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강남을지병원 사거리에서 도산공원 사거리로 향하는 도로 위 강남은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다면 한국인지 유럽인지 구분이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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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는 수입차 전시장이다. 택시를 제외하고 앞뒤옆에 늘어선 차는 모두 수입차일 때가 허다하다. 이곳에선 여간 비싼 차종이 아니고서는 대접받지 못한다.

늦은 밤이나 주말 이른 시간이면 이 도로 위에서는 질주가 벌어진다. 수억원 호가하는 수퍼카를 갖고 부릉부릉 엔진 소리를 발산하는 이들 때문에 오히려 낮보다 더 시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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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청담 사거리로 향하는 길. 온갖 명품 브랜드의 숍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네킹에 디스플레이된 옷을 구경하거나 잡지에서 보던 백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1억원 훌쩍 넘기는 시계도 디스플레이 되어있다.

이 부근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 강북에서 제대로 된 식사보다더 많은 돈을 내야한다. 커피 두 잔과 케이크 한 조각 먹고나면 거의 4만원이 훌쩍 넘는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공동 작업 소설 <좌안-마리 이야기>와 <우안-큐 이야기>가 있다.

“인생이란 강에는 항상 양쪽의 강가가 있기 때문에 좌안과 우안으로 이름붙였다. 에쿠니가 강남을 택했고 나는 강북을 택한 것 같다”는 츠지의 얘기가 기억난다.

우리나라에서 강남 여자와 강북 남자의 사랑 얘기가 등장한다면 어떤 상황이 될까?

33살 강남 여자는 다음 차로 포르쉐 카이엔을 계약할 생각이다. 점심은 인도 카레 전문 식당에서 2만원을 내고 런치 코스로 간단히 해결했다. 오후에는 퀸즈 파크 (청담동 핫 플레이스 레토랑으로 꼽히는 곳)에서 1만원에 육박하는 핫 초코를 마시고 7천원짜리 조각케이크를 먹으며 친구를 만났다. 저녁엔 건식 숙성된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시고 9만원을 계산했다.

33살 강북 남자는 얼마 전 국산 소형자를 사서 기쁘다. 7년 후에는 중형차를 사리라 마음먹는다. 부장님이 순두부 찌개를 사주어 점심값을 굳혔으나 후배와 커피 전문점에서 마주쳐 5천원짜리 커피를 사준게 뿌듯하면서도 지출이 커 저녁은 저렴한 걸 먹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이 두 사람이 만나며 행복할까? 이들은 강남 강북 어디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 어떤 결론을 내릴까?

고급 미용실, 커피 전문점, 성형외과, 명품 매장으로 꽉 찬 강남은 소비 공화국이다. 전통 부자가 많다는 강북은 그러나 성실한 넥타이 맨들의 건강한 에너지가 아직은 들끓는다.

기자는 오늘도 강북과 강남을 동시에 경험했다. 한강 주변엔 가을을 즐기는 이들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더없이 유쾌했다. 그들은 강북에 살까? 강남에 살까?






박지선 기자 sun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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