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근래 들어 주목 받고 있는 복잡계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한의학이 비과학적이라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 복잡계 과학은 사람, 뇌, 경제, 생태계, 자연 등 수많은 구성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는 복잡계를 연구하는 분야다.
복잡계 과학과 마찬가지로 한의학도 전일주의적 관점에서 진단과 치료를 한다. 한의학은 아픈 부위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병의 원인을 찾고 이에 맞추어 치료를 한다. 병은 사람의 몸에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계 과학에서는 이런 새로운 현상을 창발현상이라고 하는데, 창발현상은 여러 가지 요소가 상호작용해 무질서한 상태가 되고 복잡도가 증가해 임계치를 넘게 되면 발생하는 새로운 현상의 출현을 말한다. 병의 발생도 자연현상의 일부이며 복잡계로 볼 수 있다. 병이 나타나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들이 상호작용하다가 그 정도가 심해져 몸에 이상이 나타날 정도의 수준이 되면 표면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창발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 치료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여러 가지 원인을 파악하고 이에 적합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한의학은 병의 원인을 증상이 발생하는 부분에서 찾지 않고 전일주의적 관점에서 병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자 한다. 한의학에서는 보고, 듣고, 묻고, 만져보는 망문문절(望聞問切)의 4가지 진단기법을 활용해 병의 원인을 비선형적 방법으로 진단한다. 각 방법에서 얻어진 정보 분석은 현대과학으로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각 방법에서 얻어진 수많은 정보의 상호작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병을 진단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은 현대 과학기술로도 어려운 일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의학에서는 수천년 동안 축적되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4진을 통해 얻은 정보를 해석하고 병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하고 있다.
김기옥 한국한의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