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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딸깍발이]오월은 정말 푸른 빛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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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오월은 푸르구나. 아이들은 자라난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그토록 목청껏 가르친 오월의 색깔은 정말 푸르던가 ? 어제도 읊었고, 오늘도 읊는다. 하지만 아이들아. 오월은 절대 푸르지 않다.
우리가 가진 추억은 음습하고 처연하다. 오월, 빛바랜 삽화처럼 잔혹한 형상들이 어른거린다.

그가 어른거른다.
그는 뒤주에 갇혀 신음했다. 세상은 그가 '집 안뜰'을 걷는 자유, 창문 너머 먼 산을 바라볼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집앞에는 물론 사자바위 위에서도 수많은 카메라가 그의 집을 감시했으며, 안방에서 부부가 나눈 대화마저 다음날 버젓이 신문에 도배됐다.

커튼도 열 수 없는 지경였다. 그의 아내가 우산을 쓰고 마당에 나갔다가 사진을 찍혔고 이상한 해설도 뒤따랐다.
세상은 그를 뒤주에 가둬 숨결 하나하나 꺼져가는 모습을 철저히 지켜봤다. 현미경처럼 조밀하게 그의 내면까지 감시하며 인성이 무너질 때까지 모질게 학대했다.

마침내 그는 '집 마당'이라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세상은 외면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집밖으로 나와 벼랑에 섰을 때는 아예 등을 떠밀었다. '현대판 사도세자 노무현'은 한 때 아이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그렇게 그는 '새시대의 첫차'이기를 꿈꿨다. 결국 '구시대의 막차'도 되지 못한 그의 정치 잔혹사는 결코 아이들의 희망이 되지 못 했다.

정치적 공과를 떠나 안방까지 감시하고, 부부간의 대화마저 세세히 까발렸던 게 관음증 때문이었던가 ?

조금 더 먼 시간으로 되돌아가 보면 아이들은 커녕 뱃속의 아기들마저 정치의 피조물에도 미치지 못한다. 31년전, 사라진 사람들 중에서 365명의 시민이 아직도 귀환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그들이 우주의 블랙홀로 들어간 것도 아니고, 버뮤다위의 비행기에 오른 것도 아니었다. 아직 그들은 돌아올 수 없다. 어떤 강렬한 염원, 희망도 그들을 돌아오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귀환을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서다. 그래서 어떤 정권도 그들의 귀환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광주항쟁', 잊혀진 혁명의 날, 임산부가 죽고, 뱃속의 아기도 죽었다. 그 아기가 어찌 정치를 알겠는가 ? '오로지 그가 만나게 될 세상을 준비하고 있었을 터인데...'그러나 총검은 어린 아기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오히려 죄없는 생명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렀다.

폭력이 아기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했던 그 잘난 정치가들은 언제 한번 제대로 머리 숙여 사죄하기는 했는가 ? 그들은 여전히 떵떵거린다. 오히려 그들은 보호받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야할 이들은 구천을 헤메고 있다.

군인들이 탱크를 끌고 한강을 건넜던 오월이 푸르다고 가르칠 수 있는가 ?

퇴역대통령이 "집 안뜰을 돌려달라"고 절규하던 오월. 아기가 "살려달라"며 울부짖던 오월. 푸르름에 더욱 선연해 가슴 시린 오월. 지금 국토는 갈갈이 찢겨졌다. 국민들은 사분오열되고 정치가들의 과욕은 푸르른 금수강산을 덮을 지경이다. 신공항으로 찢기고, 공기업 이전으로 찢기고, 과학벨트로 찢겼다.

오월, 강물은 붉은 황톳빛으로 변했다. 산과 들은 산채로 매장된 짐승들의 썩은 냄새로 진동한다.그리고 신음한다.

또 무엇이 찢길지 모른다. 언제 멈출 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결코 푸르지 않은 오월이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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