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KBS, MBC 등 지상파 채널 4개가 있는 데도 한꺼번에 새로 4개의 종편을 허가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10년간 세계적으로 신문 방송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그래서 '미디어 버블(media bubble)'이란 조어도 나왔다. 국내에서도 케이블TV와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등 100개가 넘는 채널이 경쟁하며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제 미디어도 통폐합과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판에 한국 정부는 새로 무더기로 종합편성채널을 허용했다.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종편 사업자의 무더기 허용은 지상파, 기존 케이블 채널과 신문을 고사시키거나 쓸어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경제외의 다른 고려가 있는 결정이지 합리적인 결정은 아니다. "종편 생존이 불투명한 데도 무더기로 종편을 내주는 게 말이 되나. 다 국민 부담이 아닌가. 너무 했다." 술집에서나 등산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이 일반 국민들의 정서다.
뉴스채널 허용도 그렇다. 1998년 외환위기 후 10년간 암묵적으로 지켜온 기업구조조정의 불문율은 부실화를 초래한 장본인에게 그 기업을 살린 후에도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정권을 거치면서도 고위 정책 결정자들이 지켜온 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연합뉴스에 전문보도채널 TV를 허용한 것은 문제다.
일반기업의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그동안 수많은 기업을 워크아웃 등으로 처리하면서 회생시킨 다음 제3자에 매각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유일한 예외는 모 섬유업체인데 구조조정 후 다시 종전 사업주에게 넘겼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특혜로 알려졌다.
현대건설 매각의 경우 최근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이 박탈돼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넘어가게 됐지만 현대건설 오너와 관계된 두 그룹 모두 과거 정권에서라면 인수 후보에서 진작 탈락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제3자를 대상으로 입찰을 받았어야 했다. 현대건설의 경우 역시 구조조정의 불문율이 무시된 또 다른 사례다.
최근 일련의 결정들을 보고 '무리수'라고 지적하는 기업인들이나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 귀를 닫아놓은 소통부재이거나 무지의 소치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무리수임을 알면서 밀고 나갔다면 그렇게 하고도 얻을 경제외적 이익을 더 우선시한 상층부의 작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잘못된 작심을 '아니다'라며 제동을 거는 관료들이 없이 떠받드는 충복만 있어 이런 결정들이 나온다면 이 역시 문제다. 문제 있는 정책을 계속 내놓는 것은 정부 내 의사결정 시스템에 고장이 났다는 신호일 수 있다. 민심이 비웃는 정책을 계속 양산하면 결국 이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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