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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넥타이 풀고, 맞장 한번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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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날개다. 계급이자 신분의 표식이다. 또한 빈부를 가르는 잣대이기도 하다. 좋은 옷, 비싼 옷, 멋진 옷을 찾는 이유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것이 옷의 모든 것은 아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의 무엇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영혼, 철학, 신념과 같은 것. 자유스러워지기 위해 옷을 입기도 하지만, 옷이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기도 한다.

평범한 옷 차림새에 비범한 열정과 창의를 담아내는 대단한 남자가 있다. 그가 낡은 청바지, 검은 터틀넥 셔츠에 뉴 밸런스 운동화를 신고 무대에 오르면 세계 정보기술(IT) 시장은 긴장하고, 마니아들은 열광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다.
그가 130달러짜리 리바이스 청바지의 뒷주머니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아이팟을 꺼내 들었을 때, 애플의 마케팅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몇 년뒤 똑같은 옷차림으로 무대위로 걸어 나와 아이폰을 흔들었고, 다시 올해 초 아이패드를 치켜 올렸다. 스티브 잡스는 한 달 전부터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고 한다. 공연을 앞둔 연극배우처럼. 그러나 그의 프레젠테이션을 '쇼'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디자인 경영의 아이콘으로, 감각적 경영전략의 정수로 치켜 세운다. 그의 옷차림에서는 격식에 얽매인 속박이 존재하지 않는다. 창의와 절제가 묻어난다. '신념을 구현하려는 성직자의 옷차림'이라 평한 패션 전문가도 있고, 창의와 공유의 철학이 담겨있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스티브 잡스의 라이벌인 빌 게이츠는 어떤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헐렁한 옥스퍼드 버튼다운 셔츠다. 그의 옷차림에는 자유로움에 더해 아이비리그의 정체성이 배어 있다.

나이를 뛰어넘어 빌 게이츠와 절친한 워런 버핏은 동네 할아버지처럼 털털한 차림새다. 그는 얼마 전 TV 에 나와 "내 옷장의 양복 9벌은 모두 중국 톈진산 중국제"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이탈리아 명품을 걸치지 않았지만, 오히려 신뢰감있는 투자가의 면모가 배어 나온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워런 버핏이 입은 옷은 결코 부를 상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옷은 '날개'가 아니다. 신념이며 자유다. 그것은 정교하게 연출된 것일까.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개성있는 패션이 평소의 행태나 사고와 어우러지는 것을 보면, 연출의 혐의는 한결 옅어진다.

일본을 여행해 봤다면 지하철에 만난 감청색 싱글에 흰 와이셔츠, 우중충한 넥타이 일색의 샐러리맨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 획일화와 몰개성이 '잃어버린 10년' 또는 '늙은 기업'으로 상징되는 일본 경제의 오늘과 유관한 것은 아닐까.

미국에서는 어떻게 애플, 구글, 이베이, 마이크로 소프트와 같은 '젊은 기업'이 쏟아져 나오는가. 청바지, 운동화차림의 자유스러움, 감성 경영의 결과는 아닐까.

대한민국 최고경영자(CEO)와 창의적인 옷차림새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어느 재벌, 어느 기업을 떠올려도 '옷'으로 기억되는 곳, 인물은 없다. 우리는 기억한다. 총수 한마디에 회의실이 얼어붙고, 그의 나들이에 무리지어 뒤따르던 굳은 얼굴들을.

삼성생명 직원들이 이달부터 면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출근하게 됐다고 한다. 5월 상장을 앞두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가꾸기 위해 복장규제를 풀었다는 것이다. 봄바람처럼 상쾌한 얘기다.

보험회사보다 먼저 사고의 틀과 조직문화를 바꿔야할 곳이 있다. 글로벌 각축이 불꽃 튀는 IT 전선이다. 절제와 감성을 앞세운 아이폰에 오직 '기계적 스펙'만으로 맞서려한 우리 업체들. 넥타이를 풀자, 그리고 애플이나 구글과 멋지게 한번 맞장을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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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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