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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천재 유교수의 생활' 엿보세요

최종수정 2010.11.25 16:23 기사입력 2009.10.0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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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천재 유교수의 생활' 엿보세요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왜 모두들 시간이 있는데 그렇게 달리는 걸까? 또 없는데 왜 그렇게 헛되게 낭비하는 걸까? 왜 토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또 술을 마시는걸까? 왜 모두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농땡이를 치는걸까?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만화 '천재 유 교수의 생활(야마시타 카즈미·학산문화사)'은 경제학을 가르치는 노교수 유택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와는 좀 다른 인물이다. 취미는 신문의 경제기사 스크랩하기. 좌회전, 우회전 할 때는 90도로 꺾어 걷는다. 언제나 9시 정각에 잠들고 5시 30분에 일어난다.(10분 늦게 잠들면 10분 늦게 일어난다) 아내와 네 명의 딸이 있다.

그리고 그는 때론 게으르고, 때론 나태하고, 고민과 좌절 그리고 희망을 반복하는 '대부분'의 인간군상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

좀 성급하게 얘기하자면 이 만화, 강력 추천한다. 특히 휴일에 별로 할 일은 없고 어딘가 가기엔 귀찮은데, 또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겐 더더욱.

첫 장을 넘겼을 때 그림체가 다소 투박해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있지만 몇 장만 넘기면 금세 익숙해진다. 유 교수의 젊은 시절이 나오면 "이 남자 멋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박장대소는 아니더라도 웃을 수 있는 코믹 코드들도 곳곳에 숨어 있다. 무엇보다 유택 교수의 최대 관심사가 '인간' '인간행동'인 덕분에 우리는 끊임없이 출연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유 교수와 함께 자세히 바라볼 수 있다.

ⓒKazumi Yamashita/Kodansha Ltd.

ⓒKazumi Yamashita/Kodansha Ltd.

매 회의 이야기는 유 교수가 사소한 일상을 관찰하는데서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 항상 같은 길로, 같은 속도의 걸음으로 같은 학교로 출근해 수업을 하지만 그가 마주쳐야 할 인물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사건의 시작이다. 원칙을 중시하는 그의 이 단순한 일상에 가족, 이웃, 그리고 그의 학생과 과거 추억의 인물들이 개입하면서 에피소드가 발생한다. 길거리 부랑자부터 세계적인 부호, 유치원생 어린이, 바람둥이, 그리고 학생운동하다 죽은 대학생 귀신이나 도둑 고양이까지.
유 교수에게 대부분의 사람은 연구, 분석해야 할 대상이다. 그는 자신에게 총을 들이대는 은행 강도의 얼굴을 보면서 생명에 위협을 느끼기보다 그 강도가 예전에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었고, 논문에 '수'를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는 사람이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던 그의 무릎에 고양이가 와서 잠을 청하는 바람에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다. 그의 일상은 의도치 않은 사건과 그 안에 숨겨진 의미 찾기를 통해 독자에게 훈훈한 감동과 잔잔한 미소를 선사한다.

그가 엘리트 의식에 젖어있고 답답한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유 교수에 대한 실례다. 그는 딸 세쯔코의 남자친구의 펑크복장과 피어싱에 대해서도 아무런 꺼리낌이 없으며 길거리 부랑자와의 논쟁도 즐긴다. 유 교수는 평생 쏟아부어도 좋을 연구 가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 깊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야기가 지나치게 교과서적이고 단순하고 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오산이다. 몽골 소수민족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는 사건이나 여섯권에 걸쳐 태평양전쟁의 숨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놓는 것은 보면 어지간한 장편 소설보다 완벽하게 짜여져있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의 필수 요소가 돼 버린 '막장'은 이 만화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오히려 자극적인 이야기 구조에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에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천재유교수의 생활'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1989년 첫 번째 이야기가 발간됐으니 굉장히 더딘 속도로 진행되는 셈이다. 이야기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돼 1권을 읽다가 5권으로 넘어가도 크게 지장은 없다. 다만 몇몇 이야기들은 등장인물이 중복되거나 캐릭터를 이해해야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회를 거듭할수록 사건 간 연관성이 깊어지므로 가급적 순서대로 읽는 게 좋다. 최근에는 애장판이 발간됐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구매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유 교수가 마음에 든다면 야마시타 카즈미의 또 다른 작품 불가사의한 소년(야마시타 카즈미·대원씨아이)도 추천한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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