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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과 '짝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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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이 넘쳐나면서 '진퉁'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위협하고 있다. 이제는 짝퉁이 너무 흔해 짝퉁 브랜드가 마치 하나의 상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국의 희극배우로 유명한 찰리 채플린은 시골마을에서 열리는 '찰리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에 재미삼아 출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3등에 그쳤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채플린을 더 잘 흉내낸 사람이 두명이나 됐다. 짝퉁이 진품을 밀어내는 세상이다.
채플린은 어느 모임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멋지게 불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때 한 참석자가 "당신은 원래 노래를 못하는데 어찌된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채플린은 "제가 노래를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방금 그 노래는 카루소를 흉내낸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흉내는 과연 어느 선까지 가능한 것일까.

한국 온라인게임이 전세계를 호령하자 중국에서는 최근들어 짝퉁 게임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아직 출시도 안된 게임의 '짝퉁 사이트'가 버젓이 활동하기도 한다. NHN 한게임의 대표적 역할수행게임(MORPG)인 'C9'이 그런 케이스다. 아직 중국 서비스 파트너도 정하지 않았는데 짝퉁사이트가 벌써 온라인세상을 휘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NHN측은 내심 이를 즐기고 있다. 짝퉁사이트는 현지에서 성공을 예언하는 징조로 받아들여지는 데다, 중국 네티즌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는 일종의 보증수표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가 자사의 올해 최고 화제작인 '아이온'(중국 서비스명 '영원의 탑')을 그대로 베낀 '영원 세계'라는 중국의 짝퉁게임에 대해 알면서도 모른 채 수수방관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게임 품질면에서 짝퉁이 절대로 따라올 수 없다는 국내 업체들의 자신감과, 짝퉁제품 신고를 해도 처벌 대신 오히려 자국업체를 감싸고 도는 중국당국의 태도가 이같은 기현상을 만들어냈다.

오죽했으면 KOTRA가 지난주 특허청과 손잡고 '중국 모조품(산짜이-山寨) 비교 전시회'까지 열면서 '짝퉁 주의보'를 날려야 했을까. 짝퉁을 뜻하는 산짜이(山寨)는 원래 '산적들의 소굴'을 뜻하는 말이지만 이제는 고급브랜드 따라잡기라는 일종의 중국식 문화트렌드로 자리매김됐다.

놀라운 것은 삼송(SAMSONG) 애니콜(anycoll), LC 에어컨 등 짝퉁 제품에 대해 중국 소비자들의 90%가 '값싸고 합법적인 제품'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KOTRA 설문조사 결과다. 더욱이 구매한 짝퉁제품의 품질에 대해 응답자의 70%가 "만족한다"(16%)거나 "괜찮다"(54%)고 답한 것으로 나타나 '짝퉁 파워'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을 짐작케했다.

짝퉁이 단순 모방형을 벗어나 아이디어형이나 기술혁신형으로까지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점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한국기업들로서는 섬뜩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짝퉁과 진품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대대적인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온라인 게임과는 성격이 달라 넘쳐나는 짝퉁 제품을 성공의 징조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 수많은 기업들이 삼성이나 LG를 추격하고 따라잡기 위해 모방은 물론 기술혁신 등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BYD(比亞迪)라는 토종 중국기업은 중국이 단순히 짝퉁놀이에만 매몰돼 있지 않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휴대폰 배터리 생산부문에서 전세계 시장 점유율 15%를 차지하는 이 회사는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이 대량으로 주식을 사들였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앞으로는 오히려 BYD와 같은 중국산을 모방한 짝퉁제품이 여기저기서 생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짝퉁에서도 취할 것이 있다. 유명 브랜드 제품을 모방할 때 여러 디자인과 이미지 가운데 버려야 할 것과 살려야 할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짝퉁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자사 제품의 진정한 경쟁력을 짝퉁을 통해 발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짝퉁 경제'는 이미 현실세계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짝퉁을 경계하되 짝퉁에서 배울 수 있는 겹눈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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