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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HOT'를 보면 '동방신기의 나아갈 바'가 보인다

최종수정 2009.08.04 10:25 기사입력 2009.08.0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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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 황용희 연예패트롤] HOT를 보면 동방신기가 보인다.

1996년 청소년들에게 절대적인 우상으로 살아오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를 선언한 뒤 다섯명의 남성그룹이 다시 우리곁을 찾아왔다. 바로 HOT였다. 이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떠난 후 공허해진 청소년들의 마음을 색다른 컨셉트와 다양한 마케팅으로 완벽히 사로 잡았다.
말 잘하는 토니안, 잘생기고 노래 잘하는 강타, 랩 잘하는 이재원, '춤의 달인' 장우혁, 귀여운 문희준 등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가진 이들 5명은 한국 최고의 남성그룹으로 한국 가요계를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이수만 이사는 이들에게 각기 독창적이면서도 다양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천편일률적인 느낌의 아이돌 그룹을 새롭게 변모시켰다. 특히 저항적인 노래말과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은 과도한 학업과 불투명한 미래에 억눌려살던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등장은 한국사회에 '10대 역할론'을 부각시키며 사람들에게 대중문화도 컨셉트와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미국 등지에서 대중문화 마케팅을 눈여겨보던 이수만 현 SM이사에 의해 시도된 체계적인 프로모션이었다.

이수만 이사는 또 항상 우리의 우수한 음악이 언제든지 해외에서 먹힐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당시 '한류'라는 단어를 맨 처음 만들어낸 이도 바로 이수만이사와 HOT멤버들이었다.
HOT가 베이징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하던 2000년 어느날. 한국의 다섯명의 뮤지션에 열광하며 길게 줄을 늘어선 중국 관객들을 보고 베이징의 한 언론사가 '한류'(韓流)로 표현했던 것. '한국의 물결'이란 이 뜻은 한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아시아인들을 표현하는 '상징어'가 되어 버렸다. 당시 '한류'라는 단어는 이수만이사의 노력과 HOT멤버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빚어낸 산물이었다. 당시 한류는 지금은 해체된 클론을 비롯 NRG 베이비복스 등이 HOT와 함께 이끌었다.

당시 이수만 이사는 "한국인들의 높은 예술적인 감각은 세계 수준이다. 이같은 장점을 그냥 사장시킨다는 것은 국력낭비다. 그래서 우리는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말로 '한류'의 가능성을 역설했다.

이후 SM은 베이징에 사무실까지 냈다. 진정한 현지화를 위해서는 그 나라 정보에 정통하고, 체계적인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라는 나름의 소신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HOT는 중국 대만 홍콩 등을 아우르는 최고의 한류그룹이 됐다.

이후 이수만이사는 한류전도사가 됐다. 그리고 그는 한류를 활성화되기위해선 3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로 능력있는 뮤지션과 가치를 높일수 있는 촉진(매니지먼트), 그리고 그것을 현지에 담아낼 수 있는 유통(네트워크)등 이다. 이후 그는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에 이르기까지 전세계를 샅샅히 누비며 가능성있고, 능력있는 청소년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때 찾아낸 뮤지션들이 바로 신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보아, 동방신기 등이다.

하지만 이때 HOT 멤버들 사이에는 뭔가 새로운 의문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SM이 아닌 곳에서 활동하면 어떤 대우를 받을까? 지금 자신들의 대우가 과연 합리적인 것일까? 이때 그들에게 다양한 사람들이 엄청난 조건들을 내걸며 접근하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당시는 어렸던 멤버들은 'SM이란 울타리'가 자신들을 속박하고 옥죄는 '족쇄'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장우혁 토니안 이재원 등이 탈퇴를 선언했고 강타 문희준은 SM내 잔류를 선언했다. 멤버들도 둘로 나눴다.

SM도 아쉽지만 그들의 결정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장우혁등 3인방은 SM 탈퇴후 jtl이란 그룹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나머지 멤버인 강타와 문희준은 솔로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아쉬운 것은 아시아 각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전도사' HOT의 소멸이었다.

당시도 HOT 멤버들은 '우리는 하나'라며 비록 회사는 떨어져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하나된 HOT'를 보여줄 것이라고 팬들에게 굳게 맹세했다. 하지만 이후 한번도 HOT멤버들이 공연에서 함께 하는 일을 결코 없었다.

당시 탈퇴를 선언한 3명의 멤버들은 HOT의 인기요인의 상당부문이 개인들의 지명도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한류'도 3명의 멤버만으로 충분히 활성화 시킬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상황은 달랐다.

SM을 떠난 이들 3명의 존재가치는 평범한 뮤지션 3명에 불과했다. 이유는 SM의 장점을 더 이상 얻을수 없었기 때문이다. SM에는 해외시장을 개척해온 노하우와 탄탄한 네트워크가 있었다. 네트워크가 단단하면 비교적 만족치 못한 노래라도 충분히 인기곡으로 띄울수 있었고, 현지 유명 음악관계자들도 우리편으로 만들수 있었다.

대신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네트워크와 매니지먼트가 약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이들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꿔말해 SM의 강력한 네트워크와 브랜드가 있었기에 HOT가 있고, 보아가 있었다고 볼수 있었던 것.

이번 동방신기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최근 '동방신기 쇼크'를 몰고온 시아준수 등 3명이 별도의 회사를 차려 독립한다해도 예전 '한류 최고그룹 동방신기'라는 명성을 지속적으로 이어갈수 있을지는 미수다. 그들에겐 한류노하우가 없고, 그들을 유통해줄 네트워크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 '동방신기'의 인기는 대단하다. 일본인 10명중 7∼8명은 동방신기를 알고 있을 정도다. 연령층 또한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중국은 물론 태국 등 동남아에서도 이들 동방신기의 인기는 가히 초특급이라 할 수 있다.

이는 SM이 일본의 에이벡스와 자매결연 관계를 맺음으로써 일본 내 매니지먼트와 네트워크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또 중국에는 'SM차이나'를 만들어 현지화에 대비했고, 태국에서는 동남아 최대 음반사인 그래미레코드와 계약, 그 누구도 갖지못한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방신기가 소속사를 떠나 새로운 기획사에 둥지를 튼다해도 '한류전도사'로서의 제기능을 발휘할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는 것도 이같은 요인들 때문이다. SM만큼 그들을 잘 아는 회사가 없고, SM만큼 튼튼한 인적 네트워크와 현지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는 회사도 없기 때문이다.

당시 HOT 멤버들이 조금만 더 사려깊게 생각하고, 대처해나갔다면 HOT는 한류의 핵심이 돼 있었을 것이다. 또 아직까지도 '아시아 최고그룹'이 돼 아시아를 호령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동방신기는 어떤가? 조금만 더 양보하고, 조금만 더 이해의 폭을 넓힐수만 있다면 그들 역시 'HOT의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SM도 마음을 비워야 한다. 지금까지의 앙금도 모두 털어내야 한다. 물론 어렵고 힘든일이지만 '한류'를 보호하고, 더욱 발전시켜나간다는 차원에서 자중자애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 낳은 '글로벌 브랜드'가 다시 일어서기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포에버 동방신기'!.


황용희 기자 hee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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