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칼럼 오후 한 詩
  • 끝―내 마음의 킬리만자로/조정권

    꼭대기가 하도 고요해서 초원에서 40년 넘게 시를 기르다가 그 끝 올려다보니 이게 무슨 보람인지 허공에 큰 잎이 피어 있네 ■새앙철 지붕으로 쏟아지는 쇠못 같은 시인이 있었다. ...

    2018.11.07 08:48
  •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장정일

    2018년 3월 30일, 경희대학교 맥도널드점이 폐점했다. 어찌 이날을 울지 않고 지나가랴? 온통 맥도널드가 널려 있는 세상에 맥도널드가 없는 동네라니 우리는 노스트라다무스가 되었다. ...

    2018.11.05 15:15
  • 두고 온 소반/이홍섭

    절간 외진 방에는 소반 하나가 전부였다 늙고 병든 자들의 얼굴이 다녀간 개다리소반 앞에서 나는 불을 끄고 반딧불처럼 앉아 있었다 뭘 가지고 왔냐고 묻지만 나는 단지 낡은 소반 ...

    2018.11.02 09:00
  • 인기척/전문영

    처음 마음이 태어났을 때 그리고 죽었을 때 어떤 신음은 곰의 심장까지도 기어오르고 그저 느낌이었을 때가 좋았다는 생각만 한다 형식을 갖출수록 내가 가진 게 더 뻔해지니까 이때의 ...

    2018.10.31 10:33
  • 빈 화분에 물 주기/이근화

    어디에서 날아온 씨앗일까 누가 파 온 흙일까 마시던 물을 일없이 빈 화분에 쏟아부었더니 며칠 지나 잎이 나온다 욕 같다 너 내게 물 먹였지 그러는 것 같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그러면 ...

    2018.10.29 10:37
  • 리뾰시까/박정수

    인력 사무소 앞 새벽마다 부풀어 오르는 빵을 본다,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주머니 속 라이터가 불꽃을 만들 때까지 눈물의 빵을 적셔 줄 슈르파(shurpa)는 끓지 않는다 직선으로 서성이는 ...

    2018.10.26 13:00
  • 뜻도 모르고 읽는 책/심재휘

    처음 가 보는 바닷가였는데 해변의 여관방에 자리를 깔고 누웠더니 그곳에는 어두울수록 잘 읽히는 책이 있었다 밑줄을 칠 수도 없고 귀를 접을 수도 없는 사실은, 읽어도 뜻을 알 수 없 ...

    2018.10.24 10:52
  • 슬픈 열대/황인숙

    어제도 그제도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시비 걸던 남자 노인 오늘도 난닝구 바람으로 나와 있네 나도 모르게 고개 치켜들고 그쪽 하늘 향해 미친 듯 소리 질렀네 "루저들 때문에 힘들어 ...

    2018.10.22 10:03
  •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신현수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아무 것도 읽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숨이나 쉬면서, 그저 산에나 오르면서, 새 ...

    2018.10.19 13:00
  • 체 게바라 할머니/이영식

    신내동 굴다리 지하 차도 폐휴지 리어카에 매달린 노파 깡마른 어깨와 굽은 허리를 티셔츠로 감싼 채 자동차 줄줄이 세워 서행으로 끌고 있다 때 절은 검은 티셔츠 위에 프린팅된 체 ...

    2018.10.17 09:14
  • 서 있는 사람/문희정

    대기표를 손에 쥐고 사람이 서 있다 사람은 싸우는 사람을 본다 내동댕이쳐지는 대기표를 본다 한참이나 굴러 가는 종이 뭉치를 본다 싸우는 사람은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기계는 새 순 ...

    2018.10.15 10:26
  • 식구/이병국

    밥상에 김치찌개 올려놓고 불룩한 밥공기와 나란히 수저를 놓습니다. 마주함은 없어도 한 끼의 시장은 찬으로 다가옵니다. 한입 가득 숟가락을 머금고 다시 담아내는 손에 바람이 ...

    2018.10.12 12:30
  • 계상정거도/박윤일

    이 집 주인은 갑자기 길 떠났나 보다 밤새 근육통을 앓은 날씨 먹다 남은 두부가 식탁에 놓여 있다 이황이 머물던 진경산수를 헐값에 장만했다더니 주인은 천 원 속 암자까지 신발도 없이 ...

    2018.10.10 12:37
  • 자두나무는 열네 살/심은지

    자두가 익어 갈 무렵 아기 주먹만 한 풋자두 두 개를 골라 껍질에 그 애 이름을 새겨 넣었다 뜨거운 여름날이 계속되고 푸른 잎 뒤에 감춰진 몸에서는 달달한 향기가 피어났다 뒤란 ...

    2018.10.08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