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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167년 크레디스위스 결국 경쟁사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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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스위스 금융신화 왜 파산했나
폰뱅킹·인터넷뱅킹 '최초' 금융사
투자손실·비리 위기 확산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결국 16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경쟁사인 스위스 1위 은행 UBS에 강제 병합되며 CS라는 이름도 자취를 감추게 될 전망이다. 전 세계로 행동반경을 넓히며 영향력을 키워온 167년의 금융 신화가 파산 위기로 내몰리며 맥없이 쓰러지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위기의 시작... 공격적인 인수합병

‘글로벌 초자산가들의 은행’으로 불렸던 스위스 은행. 익명의 숫자와 문자만으로 계좌를 개설하고도 세계 최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 이런 스위스 은행을 대표하는 곳이 CS였다. CS는 스위스 금융업의 모태이며, 투자은행(IB)의 산역사나 다름없었다. 1856년 7월 스위스 철도망 확장과 산업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설립된 CS는 중산층의 비약적인 성장에 발맞춰 1905년 바젤에 첫 지점을 내고 소매금융에 진출했다. 이후 대형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드라이브 스루 은행을 취리히에 개설했고(1962년), 폰뱅킹(1993년)과 인터넷 뱅킹(1997년)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최초’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특히 1990년대 들어 ‘퍼스트보스톤’ 인수를 시작으로 뱅크루·폭스뱅크 등 활발한 인수합병(M&A)으로 투자은행으로 변모하며 사세를 키웠다. 안정적인 사업에 집중하는 대신 위험 성향이 뚜렷했던 CS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리스크 관리나 내부 통제 등 결함을 보안하지 못한 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기조로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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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확산...계속되는 투자손실

그러다가 2021년 3~4월 ‘영국 그린실 스캔들’과 ‘미국 아케고스 사태’가 연달아 터지며 위기에 봉착했다. 2021년 3월 초 영국 금융회사 그린실캐피털이 파산하면서 17억달러 규모의 투자 손실을 입은데 이어, 4월에는 헤지펀드 아케고스캐피털의 마진콜 사태에 자금이 물려 55억달러를 날렸다. 당시 JP모건이나 모건스탠리 등은 담보로 잡고 있던 주식을 블록딜로 처분해 손실을 최소화한 반면, CS는 뒤늦은 대처로 당시 글로벌 금융기관 중 가장 큰 손실을 봤다. 이는 CS의 신용도에 직격탄이 됐다.


이후 탈세와 마약상 돈세탁, 세금 사기 등 일련의 부패 스캔들이 드러나면서, 비밀주의를 자산으로 한 은행의 명성을 맥없이 무너뜨렸다. 경영진 비리로 회전문 인사가 이어지면서 경영 난맥상도 이어졌다. 수익과 외형이 감소하는 악순환 사이클이 수년간 이어졌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 4분기에만 1100억스위스프랑(약 155조8500억원) 이상의 고객 자금이 빠져나갔다. 지난해 한 해 동안 73억스위스프랑(약 10조3400억원)이라는 사상 최악의 순손실을 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대주주의 ‘손절’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장의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최근 공개된 사업보고서에서 내부 통제 미흡 등 회계상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면서 재무 우려가 증폭되는 가운데, 사우디 국립은행 아마르 알 쿠다이리 회장이 ‘유동성 추가 지원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자금 이탈의 물꼬가 터졌다. CS의 부도 위험 지표인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사상 최고치로 급등하며 부도 공포가 절정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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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조원 풀었지만 ‘밑 빠진 독’...특단의 대책

다행히 스위스 중앙은행인 국립은행(SNB)과 금융감독청(FINMA)이 지난 16일 CS에 최대 500억스위스프랑(약 70조원)을 투입한다고 긴급 발표하면서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슈퍼리치들을 중심으로 고객 예금 인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당국의 70조원 투입 카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퍼졌다.


당국도 금융산업의 근간인 신용이 바닥까지 추락한 상황에서 자구적인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결국 경쟁사인 UBS에 매각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19일 UBS와 CS는 UBS를 존속법인으로 하는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인수가액은 30억스위스프랑(약 4조2400억원), 주당 인수가액은 0.75스위스프랑이었다. 지난 17일 종가(주당 1.86스위스프랑) 기준 시장 가치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악셀 레만 크레디스위스 이사회 의장(왼쪽)과 콜름 켈러허 UBS 의장이 19일(현지시간)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기자회견 후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악셀 레만 크레디스위스 이사회 의장(왼쪽)과 콜름 켈러허 UBS 의장이 19일(현지시간)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기자회견 후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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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은 UBS와의 강제 병합이 ‘최후의 수단’이라 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결정했다. 알랭 베르세 스위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주 (당국의 유동성 지원 방침 발표 뒤) 확인된 유동성 유출, 시장 변동성은 더 이상 (CS에 대한) 시장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이 해법이 UBS의 CS 인수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합병 시너지와 구조조정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UBS와 CS의 사업 구조가 상당 부분 중복돼 있고,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가진 CS와 보수 성향의 UBS의 기업문화가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영업 환경이 악화할 대로 악화한 데다 수익구조가 기형적으로 뒤틀린 IB 부문을 축소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투자은행이 사업을 규모를 축소하는 것은 마치 원자로를 해체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며 "UBS와 CS의 합병은 상업적 논리가 약하고 상당한 난기류를 수반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는 과거 독일 도이체방크와 영국 스코틀랜드왕립은행 사례에도 잘 드러났다. 한때 JP모건에 이어 세계 2위 투자은행이었던 도이체방크는 돈세탁과 금리 조작 등 연이은 스캔들로 인한 신뢰도 추락으로 구조조정에 돌입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변방으로 밀렸다.


CS에 이어...또 다른 ‘약한 고리’ 파열

이번 합병 과정에서 CS가 발행한 채권 가운데 160억스위스프랑 규모의 신종자본증권(AT1)을 모두 상각 처리하기로 하면서 후폭풍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위기 시 원리금 손실 가능성이 있지만 기존 채권 보다 수익이 높은 '코코본드'로 불리는 채권이다. 글로벌 대형은행 가운데 채권을 강제 상각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CS에 닥친 유동성 위기가 UBS와의 합병으로 일단락 맺는 분위기지만, 전문가들은 CS와 같은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리먼 사태와 같은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상승에 따른 자산 가격 폭락이 계속되면서 CS와 같이 글로벌 금융의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언제든 또 다른 은행 위기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강타한 1997년 외환위기로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붕괴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서 촉발됐듯, 고금리로 인한 침체가 깊어지면서 위기로 내몰리는 금융사가 CS가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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