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건 올해 상승률, 화나는 건 체감물가 수준"
2021년 이후 생활물가 19.1%↑…먹거리 물가 25%↑
의식주 물가, OECD 평균 대비 최대 1.6배 높아
근본 해결 위해 구조 자체를 바꾸는 대대적 개혁 필요
"물가가 안정됐다고 하면 굉장히 화내시는 분들이 많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0%) 근방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월급 빼곤 다 올라 점심 한 끼 사 먹는 데 1만원으론 부족해진 지가 한참이니 안정적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총재가 안정적이라는 건 올해 물가의 상승률을 말한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변동성을 키우긴 했지만 그간 꾸준히 내린 국제 유가가 물가 상승률 진정에 영향을 준 결과다. 경기가 부진해 수요 압력이 줄어든 점도 기여했다.
화가 나는 건, 상승률 안정과는 좀 다른 문제다. 그간 누적된 상승으로 국민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이미 버거운 수준이다. 한은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인 2021년 이후 올해 5월까지 필수재 중심의 생활물가 누적 상승률은 19.1%에 달했다. 특히 먹거리 물가가 급등하면서 국민의 얇은 지갑 사정을 더욱 어렵게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외식 부문 소비자물가지수를 100으로 했을 때 지난달 지수는 124.56으로 약 25% 뛰었다. 39개 외식 품목 중 점심 메뉴 후보에 흔히 오르는 김밥, 햄버거, 떡볶이, 짜장면, 생선회, 도시락, 라면, 갈비탕 등의 가격은 30% 이상 급등했다.
우리나라의 의식주 물가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물가를 100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식료품, 의류, 주거비는 각각 156, 161, 123이다. OECD 평균 대비 최대 1.6배 높은 셈이다. 생활필수품이 중심인 생활물가의 급등은 취약계층을 비롯해 국민 대부분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결국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한은 설문조사에서 올해 1~4월 소비 지출을 늘리지 않았다는 응답자의 62%는 '물가 상승에 따른 구매력 축소'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물가 안정과 경제 회복에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라'라고 주문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식품 수급·유통구조 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전날 첫 회의를 여는 등 발 빠르게 물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이유다.
정부는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가 상승한 데엔 원가가 누적 상승한 데 따른 불가피한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식품 원재료 할당관세 적용 연장 등에 나섰다. 식품업계와 협의를 통해 인상 품목과 인상률을 최소화하고, 할인 행사 진행 등으로 소비자 부담을 최소화할 방안도 발굴한다는 방침이다. 유통 구조에 불합리한 관행 등이 있는지도 점검한다. 모두 당장의 체감물가 진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단 점에선 고무적인 시도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높은 의식주 물가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관행을 솎아내는 수준을 넘어 구조 자체를 바꾸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2023년 기준 농축산물 평균 유통비용률은 49.2%로, 1만원짜리 농산물에 실린 유통 비용이 5000원에 달했다. 적지 않은 이들의 밥벌이가 달린 문제이니만큼 접근이 쉽진 않겠지만 고민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 간 경쟁 촉진, 농산물 등 원재료 수입선 다변화, 기후 변화에 강한 종자 연구 지원 등에 대해 실현 가능성부터 빠르게 따져보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도입을 검토할 일이다.
김유리 경제금융부 차장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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