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거버넌스는 물론 사회 변화 요구
'경계하는 주인' 개념, 전세계 기업 뒤흔들어
"더 많은 사람이 주인되면 세상 더 진보할 것"
기업은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조직이면서도 무서운 조직이다. 놀라운 이유는 삶에 필요한 필수품은 물론 사치품까지 풍부하게 생산하기 때문이다. 또 무서운 이유는 기업이라는 조직 자체가 매우 강력하고 거침이 없어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 때문이다. 18세기 영국 대법관 에드워드 서로우 경은 "기업은 벌을 받을 육체도 없고, 단죄받을 영혼도 없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양면적인 존재에서 최선의 모습을 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해결책은 직업윤리 등의 교육을 통해 책임감 있는 경영진을 양성하는 것이다. 두 번째, 정부의 규제를 통해 기업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근로자, 공급망 업체들, 주주 등 자본주의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해 각 주체의 참여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아이디어는 저마다의 문제를 낳았다. 경영주의(managerialism)는 고용된 경영자들이 남의 돈을 관리할 때 자신의 돈처럼 신중하게 관리하지 않는다는 결함이 있다. 이와 관련해 애덤 스미스는 "회사의 경영에는 언제나 부주의와 낭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이미 1776년에 지적한 바 있다. 또 정부 규제는 권력을 가진 내부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며 독단적인 지도자들에 의해 정실주의(cronyism)가 심각해질 수 있다. 한편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권한을 부여해 모든 사람이 책임자가 되면 아무도 진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기업 통제 수단으로 남는 것은 애덤 스미스가 말한 '감시하는 주인들(vigilant owners)'이다. 대표적으로 카네기 철강회사, 스탠더드 오일 같은 대기업을 일군 창업자들은 거의 모든 움직임을 계획하고 돈의 흐름을 감독했던 경계심 강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성공 때문에 무대 뒤로 밀려났다. 기업이 너무 커지면서 전문 경영인이 필요했고, 막대한 자본이 요구되자 공개시장에 의존하게 됐다. 1920년대가 되자 수백만 소액 투자자들이 기업을 '소유'하게 됐는데, 이 소액 투자자들은 너무 흩어져 있어서 기업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기업에 더 이상 '경계심'을 가진 진짜 주인이 존재하지 않고, 낭비를 일삼는 경영자가 승리한 듯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두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일반 시민들이 증시에 뛰어들면서 막대한 자본이 축적됐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저축의 일부를 주식에 투자하도록 장려했다. 이에 뮤추얼 펀드, 연기금 같은 기관 투자자들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현대 경영학의 대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1976년 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The Unseen Revolution)'에서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 국면을 '연금 펀드 사회주의'라 부르기도 했지만, 사실상 '대중 자본주의'라고 표현했다면 더 적절했을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 투자자들이 기업의 진정한 주인처럼 행동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사업가 몇몇은 드러커가 말한 '보이지 않는 혁명'의 가능성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T. 분 피컨스와 일부 기업 사냥꾼들은 부실한 기업을 인수하거나 자산을 분해해 매각하는 식으로 수익을 올렸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은 유망한 기업에 장기 투자해 그들의 실적을 끌어올렸으며 다른 수천 명의 소액 투자자를 백만장자로 만들었다.
이 같은 인물 중에서도 가장 포부가 컸던 인물은 지난달 29일 세상을 떠난 로버트 몽크스였다. 몽크스는 일반 대중의 주식 소유가 책임 있는 자본주의의 열쇠라고 믿었다. 많은 사람이 '경계심 있는 주인'이 되면 회사의 경영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에서 시작해 사회 전체에 이르는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몽크스가 주장한 책임 있는 소유는 초기에 기업 경영진의 적대감과 기관 투자자들의 무관심에 부딪혔다. 당시 경영진은 기존 체제에서 막대한 이득을 누리고 있었고, 기관 투자자들은 '주식을 그저 사고파는 것'을 임무로 여기며 자신들이 기업의 최대 주주라는 사실은 무시했다. 몽크스의 혜안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몽크스는 포기하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면서 미국을 넘어 전 세계 기업 지형을 뒤흔들었다. 한때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무시당하던 기업지배구조는 이제 중요한 과제가 됐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은 기업 이사회 중 과반수를 외부 이사로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게다가 이사들은 경영대학원에서 전문 교육을 받아야 한다(몽크스는 이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케임브리지 경영대학원에 기부했다). 그 결과 유명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이사회에서 해고당하기도 했다. 모건스탠리의 필립 퍼셀, 패니메이의 프랭클린 레인스,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스너, AIG의 행크 그린버그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의결권 자문사인 인스티튜셔널 셰어홀더 서비스(ISS)는 4000곳이 넘는 고객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업가치는 23억달러에 달한다.
주주행동주의가 최근 들어 형식적으로 변하고 있긴 하다. 기관 투자자들은 몽크스가 비판했던 기존 경영진의 특성을 닮아가고 있고 '경계심 있는 경영'은 체크리스트의 하나로 작성될 뿐이다. 이에 기관 투자자들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와 같은 유행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기도 했다. 몽크스는 '감시자를 감시하라(Watching the Watchers)'는 책을 쓴 적이 있는데, 이제는 기업을 감시하는 감시자들까지도 면밀히 감시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들 또한 하나의 권력 집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크스가 예견한 '소유권의 혁명'은 이제 확실히 정착했다. 이는 올바른 방향이다. 사람들이 노후를 준비하는 좋은 방법중 하나는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것이며, 세계 자본의 수호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무는 일반 대중의 저축이 올바르게 투자·관리되도록 하는 것이다. '소유자의 경계심'만큼 강력한 감시는 없다고 말한 애덤 스미스는 옳았다. 더 많은 사람이 주인이 될수록 세상은 더 진보할 것이다.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DEI May Not Survive. But Shareholder Activism Will을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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