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구성 다양성 심각한 결여
'집단사고의 함정' 빠질 우려
비법관 출신 임명 법제화 방안도
언제부턴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중요 형사재판에서 주심이나 재판장의 정치 성향을 따져 결과를 예측하는 풍토가 생겼다. 14명의 대법관과 9명의 헌법재판관 각각의 정치 성향을 진보와 보수, 중도로 구분한 분석표가 돌아다니고, 좌파냐 우파냐, 무슨 연구회 출신이냐, 어느 당이 추천했느냐 등이 논란이 된다.
그런데, 이처럼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정치 성향을 따지는 사이 우리가 간과한 게 있다. 바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인적 구성의 다양화다.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의 대법관이 전부 판사 출신이다. 짧게는 25년에서 길게는 32년 동안 법원이라는 같은 조직에 몸담고 함께 일했던 선후배 혹은 동료 관계다. 18일 퇴임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 그리고 최근에 임명된 마은혁 재판관을 포함해 9명의 헌법재판관도 모두 판사 출신이다. 각각 22~35년의 판사 경력을 지녔다.
이런 적이 없었다. 과거에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중 적어도 1~2명은 검사 출신 혹은 판사 경력이 없는 재야 법조인 출신이 포함돼 있었다. 여러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또 여러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퇴임사에서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화가 필요함을 지적했고, 대국민 여론 조사에서도 늘 필요성이 대두됐는데 오히려 퇴보한 셈이다. 법원 출신 외에도 검찰이나 행정부, 학계 출신 등 다양한 법률 전문가로 구성되는 일본 최고재판소와 비교할 때 편중성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할 수 있다.
대법원은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법률적 분쟁의 최종 결론을 내는 곳이다. 또 사형이나 무기징역 선고를 통해 한 사람의 생명권이나 자유권 전부를 박탈할 수도 있는 형사재판의 최종심을 담당한다. 이런 곳이 판사라는 같은 직역 출신으로만 구성돼서는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토대로 한 판결이 나오기 어렵다. 구성의 다양성은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정치적 사법기관'이라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느 조직이든 구성원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고 편중되면 '집단사고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더욱이 법원은 다른 어느 조직보다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이다. 원래 그렇지 않았더라도, 20년 이상 판사로 재직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집단문화에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라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적 구성의 다양화가 필수적이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1~2명이 냈던 소수의견이 언젠가 다수의견으로, 법정의견으로 바뀌어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온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한 원로 법조인은 법원의 만성적인 인사 적체 문제를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판사 일색이 된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 도입이 좌초되고, 이후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까지 폐지되면서 대법관 한 자리, 헌법재판관 한 자리가 고위 법관들 인사에서 숨통이 됐을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다른 방법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꼭 검사 출신이 아니더라도 판사 출신이 아니지만 법률이 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재야 법조인, 법학전문대학원이나 법대 교수,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법률 사무 종사자 등 다양한 경력의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필요하다. 아예 비법관 출신의 임명에 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최석진 로앤비즈 스페셜리스트 csj0404@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흔들리는 韓, 퇴직자 954만명 대기 중…연금은 안 나오고 인력은 빠져나간다[정년연장, 선택의 시간]](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93/2024091909225031871_1726705371.jpg)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