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미국 뉴욕 맨해튼 북쪽 할렘과 가까운 컬럼비아대를 방문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모교이기도 한 컬럼비아대에서 전 세계를 이끌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학구열을 느끼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차로 20분을 달려 도착한 컬럼비아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지난해 4월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에 항의하는 대학가 반전 시위가 컬럼비아대에서 시작된 후 학교 측은 학생들의 출입만 허용하고 캠퍼스 문을 걸어 잠갔다. 불법 시위를 막기 위한 조치다. 반전 시위가 시작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컬럼비아대는 외부인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고, 기자는 주말 오전에 허탕을 쳐야만 했다.
반전 시위의 여진은 굳게 닫힌 캠퍼스처럼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단죄 의지가 확고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컬럼비아대에 4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연방정부 보조금 지급 및 정부 계약을 취소했다. 향후 몇 년간 연방정부 차원에서 컬럼비아대에 지원하기로 한 보조금 50억달러 가운데 8%를 삭감한 셈이다. 보조금 삭감의 이유는 교내 반유대주의 방치다. 트럼프 정부는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한 후 유대계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폭력, 협박, 반유대주의적 괴롭힘에 시달려왔고 대학은 유대계 학생들에 대한 보호 의무를 포기했다고 주장한다. 컬럼비아대는 물론 여타 대학들에 대한 보조금 삭감 조치 또한 예고했다.
미국 정부는 보조금 삭감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올해 1월 취임 후 연방정부에서 자금 지원을 받는 대학이 유대계 학생이나 교직원을 반유대주의에서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경우 교육부가 해당 대학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에게는 학생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시위대를 본국으로 추방해야 한다고 밝힌 데 이어 며칠 전엔 시위에 참여한 외국인 학생은 본국으로 쫓아내고 미국인 학생은 영구 퇴학시키겠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언했다. 트럼프 개인의 친(親)이스라엘 성향에다 미국 정치권을 좌우하는 유대계 자본의 영향력 등을 감안한 행보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입장에서 학생 비자로 들어 온 외국인 학생의 반유대주의 시위는 더욱 못마땅했을 것이다.
이 같은 트럼프의 대응을 놓고 미국 사회에서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거래의 기술'이란 책까지 쓴 사업가 출신인 그는 자본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돈줄을 쥐고 흔드는 방식으로 대학을 길들이려는 트럼프의 노골적인 행보는 경계감을 낳기에 충분하다. 반전 시위가 미국 내 유대계에 대한 어떤 형태의 폭력으로도 이어져선 안 된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다만 반유대주의 퇴출이 미국 수정헌법 1조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점 또한 명백하다. 학문의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은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을 앞세운 '트럼프식 대학 길들이기'는 표현의 자유와 연구 활동을 위축시켜 미국의 본질적인 경쟁력까지 갉아먹을 공산이 크다. 카트리나 암스트롱 컬럼비아대 임시 총장은 이 같은 보조금 삭감 조치가 대학 연구와 환자 치료 등 중요한 활동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컬럼비아대 도서관 앞 광장에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아테나)'를 본뜬 알마 마터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동상의 치맛자락엔 부엉이 모양의 조각이 숨겨져 있다. 지혜의 상징으로 불리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제한된 트럼프 시대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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