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사태는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과 불안을 안겨주었다. 이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주주의는 특정 세력의 독재나 국민 기본권의 심각한 훼손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만약 국회에서 계엄을 막지 못했다면, 이런 원칙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위기를 극복할 준비가 돼 있을까.
민주주의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의문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미국에서는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폭력 시위대가 의회를 점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또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이민자를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고, 기후 위기의 징후에도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전쟁은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안병진 작가는 저서 ‘4부의 상상력’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그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오류를 찾는 데서 논의를 시작한다. 그가 주목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모델이자 대통령제의 기틀을 제공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재검토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설계한 민주주의는 처음에는 견고해 보였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 유능한 엘리트를 연방 대법관에 임명하고, 다수의 폭정을 막기 위해 상원을 구성하는 등 치밀한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그들의 설계에는 간과한 점들이 있었다. 자산을 가진 사람이 정치적 영향력을 더 크게 발휘할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부유층일수록 정치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또한 ‘당파성’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과소평가했다. 상원은 특정 세력의 입법 독주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각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양당제 내에서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와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믿음도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이러한 결함은 오늘날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구조상 현재에 충실한 유권자들에게 민감할 수밖에 없어, 미래를 고려하는 정치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게 작가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후 위기다. 지구온난화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은 지연되고 있다. 지금의 민주주의가 지속된다면 미래 세대는 물론,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 역시 점점 더 살기 어려운 세상에 직면할 것이다.
정치 제도의 사소한 개혁조차 어려운 시대에, 작가는 훨씬 더 과감한 변화를 요구한다. 기존 민주주의의 틀을 단순히 수선하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핵심은 제4부다. 그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이어 새로운 권력 기구인 ‘미래심의부’를 제안한다. 미래심의부는 기존 삼부가 내리는 의사결정을 현재, 미래, 비인간적 관점에서 분석·심의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중대한 하자가 발견되면 특정 조건에 따라 결정을 필리버스터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한다.
책이 제안하는 미래심의부의 구성, 절차, 요건, 역할에는 풍부한 아이디어가 담겨있다. 언뜻 실현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독자들에게 상상력과 실천력을 제한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세상은 점차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과 변화를 촉구하며,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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