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025년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2기 경제 정책에 대한 석학들의 전망이 쏟아졌다. 관세 논란도 뜨거웠다. 202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 등 많은 경제학자는 관세발(發)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다. 관세 인상이 기업의 수입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하지만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몇몇 학자들은 관세 부과 대상과 기간 등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물가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관세를 둘러싼 이 같은 엇갈린 전망과 논쟁은 오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경제 정책에 대한 낮아진 예측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전미경제학회에서 만난 202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카드 UC버클리 교수도 '트럼프 불확실성'을 올해 미국 경제 최대 리스크로 꼽았을 정도다. 관세·이민·감세 등 트럼프가 공약한 정책 중 어느 하나 파급 효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대응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경제학자들의 예측은 자주 빗나간다. 사실 틀려도 그만이다. 하지만 미국과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Fed가 경기 진단과 예측, 대응에 실패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빗나간 예측은 정책 실패로 이어지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가계, 기업 등 모든 경제 주체가 감당해야 한다. 시장은 제롬 파월 Fed 의장이 2021년 8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오판한 후, 미국 물가가 5.3%에서 이듬해 6월 9.1%까지 치솟았던 악몽을 경험했다. 파월이 뒤늦게 고강도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 불을 끈 건 다행이지만, 그 과정에서 Fed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도는 상당히 낮아졌다. 이미 오른 물가와 고금리 고통도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 2기 불확실성 속에 파월과 Fed는 또다시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더구나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파월 해고"를 운운하며 백악관 재입성 전부터 Fed의 독립성을 크게 흔들고 있다.
버냉키는 이번 전미경제학회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신뢰 확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2기의 최대 인플레이션 위협 요인으로 관세도, 이민도, 감세 정책도 아닌 Fed의 독립성 훼손을 꼽았다. 그러면서 Fed가 시장, 의회와 소통을 늘려 백악관으로부터 독립성을 지켜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위원들은 개별 발언을 줄이고, Fed는 경제 전망과 관련한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시장에 제시하라는 구체적인 조언도 내놨다. 시장은 경제 상황에 따른 통화정책 변화를 예측하고, Fed는 정책 유연성과 신뢰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Fed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버냉키는 과거 의장 시절 양적완화를 둘러싼 비판과 정치권의 독립성 제한 움직임에 맞서 Fed 기자회견을 처음 정례화했다. Fed 특유의 신비주의를 버리고 시장과의 소통을 택해 독립성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기에, 그의 우려 섞인 조언을 듣는 청중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겁고 진지했다.
정치권력이 경제를 쥐고 흔드는 '폴리코노미'의 시대다.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경제가 정치 논리에 좌우되는 순간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국민과 시장의 몫이다. 하물며 '경제 대통령' 격인 파월의 메시지와 Fed 통화정책의 약발이 시장에 먹히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전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가 떠안아야 할지도 모른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정치권력으로부터 지켜 줄 안전판은 시장의 신뢰란 버냉키의 말을 남 얘기 듣듯 흘려넘길 수 없는 이유다.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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