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불안의 시대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기후 위기다. 갑작스레 변한 기후로 인해 섬이 사라지거나 취약계층은 폭염과 강추위 등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미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넘겼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염병도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불과 4년 전,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사태를 겪었다. 멀쩡해 보이는 타인이 코로나19에 걸렸을 수 있다는 불안에 사회적 관계마저 망가졌다. 경제 위기, 전쟁 위기, 인구 위기 등 불안은 얼굴을 바꿔가며 우리에게 공포를 심는다.
이런 상황에서 철학자 한병철은 '불안사회'라는 제목의 신간을 내놓았다. 저자의 유명한 전작 '피로사회' '투명사회' 등은 현대사회에서 긍정성과 투명성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작용하는지 성찰한다. 피로사회의 경우, 막연한 긍정성은 오히려 한계를 지닌 인간을 피로하고 우울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투명사회 역시 지금 이 사회가 신봉하고 있는 투명성이 오히려 신뢰를 무너트리고 서로를 통제한다고 보고 있다.
신작 불안사회는 어떻게 보면 '희망 찬가'라고 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철학자는 희망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 상자'가 그 예다. 세상 모든 나쁜 것들이 흘러나오던 판도라 상자에는 희망이 마지막에 남았다. 알베르 카뮈는 희망을 '극도의 회피'라고 봤다. 하지만 저자는 결국 희망이 판도라 상자에 남아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희망은 극도의 회피가 아닌, 삶에 대한 긍정이라는 것이다. 희망이 있기에 인간은 열정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희망은 혁명을 낳는다.
희망을 낙관과도 구분한다. 저자는 희망에 부정적 성질이 있다고 해석한다. 우리가 저 밑 심연에 빠지는, 극도의 부정적인 상황에 이르렀을 때 희망은 태동한다. 저자는 이 상황을 '희망의 변증법'이라고 명한다. 반면 낙관에는 부정성이 없다. 그저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뿐, 오히려 직면해야 할 부정적인 상황도 회피하고 현실에 안주한다. 그렇기에 낙관은 아무런 발전, 더 나아가 혁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저자는 희망이 사라지면서 불안이 세상에 확산돼 있다고 주장한다. 희망과 달리 불안은 우리를 어떻게 만들까? 희망은 우리를 사유하게 하지만, 불안은 우리를 생존에만 몰두하게 한다. 희망은 우리가 자유를 찾도록 돕지만 불안은 자유를 없애버린다. 희망은 우리를 신뢰하도록 하지만 불안은 혐오만을 생산한다. 불안은 우리의 시야를 좁게 만든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정서가 불안이라는 지적은 여럿 나왔다. 한국은 이미 우울증 환자 100만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남녀 간 갈등, 세대 간 갈등, 계층 간 갈등 등 온 사회를 휘감고 있는 갈등과 혐오 속에 신뢰라는 가치를 찾아보긴 힘들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돼 버린 저출생 역시 불안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군사와 폭력을 동원하는 등 민주주의와 가장 거리가 먼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불안을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희망의 불씨를 찾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불안사회 | 한병철 지음 | 다산초당 | 172쪽 | 1만6800원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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