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한 밸류업 프로그램 효과가 단 3거래일 만에 사라졌다. 누구보다 국내 증시의 재평가를 바랐던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가 불러올 파장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믿고 국내 증시에 남았던 개인 투자자마저 미국 증시와 가상자산 시장으로 떠날 가능성이 커졌다. 증시 안정을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의 퇴진이 시급하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단 사흘 만에 KB금융지주와 신한지주는 각각 15.7%, 9.0% 하락했다. 전체 상장 주식의 36%가량이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일부터 6일까지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장중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종목은 953개로 집계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누적 순매도 1조원을 기록했다. 외국인은 주로 KB금융과 삼성전자, 신한지주, 현대차 등을 집중적으로 팔아 치웠다. 여의도 증권가는 국내 증시 변동성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급물살을 탄 대통령 탄핵 정국 등 정치 리스크는 단기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외국인을 중심으로 투매 후 짙은 관망세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탄핵정국 장기화 조짐으로 인한 불안으로 9일 국내 증시는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대폭 하락해 연중 최저점을 경신했고 원달러 환율은 1430원대에 올라섰다.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허영한 기자
지난주 국내 증시를 지켜본 개인 투자자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믿었던 대통령에게 발등을 찍힌 셈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꾸준하게 국내 주식시장에 관심을 보였다. 지난 1월2일 한국거래소 서울 사옥에서 개최된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 가운데 증시 개장식에 참석한 대통령은 윤 대통령이 유일하다.
윤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임기 중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공매도에 대해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11월1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근본적인 개선방안이 만들어질 때까지 공매도를 금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불법 공매도 문제를 방치하면 주식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을 어렵게 한다"며 "증권시장 신뢰 저하와 투자자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매도는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지만 지난 3일 밤 10시30분을 기점으로 국내 주식시장 매력도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국 유력 경제매체 포브스는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6일(현지시간) 포브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계엄령 사태의 대가는 5100만명 국민들이 분할해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고 한 '밸류업'이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식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윤 대통령의 돌발 행동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며 사태 수습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 사태 수습이 늦어질수록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박형수 기자 parkh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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