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 위험에 따른 할증 금지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
보원원리 반하는 불합리 정책
농어업재해보험법 일부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험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불러올 여러 조항이 담겼다. 특히 보험료를 산정할 때 재해 위험에 따른 할증을 금지하는 규정이 새롭게 추가됐다. 이는 농어업인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자는 데 목적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농어업재해보험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 면에서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 자칫 농어업재해보험의 근간이 흔들릴 소지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보험의 본질은 불확실한 사고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자금을 모아 손실을 보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험이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험료 수입과 보험금 지출이 서로 맞아 들어가야 한다. 사고 발생 확률이 높으면 그만큼 보험료를 추가해 더 받고, 사고 확률이 낮으면 보험료를 덜 받아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보험사고 발생 시 보험금을 제대로 줄 수 있다.
사고 위험도, 즉 재해 발생과 무관하게 모두 같은 보험료를 적용하면 지급할 보험금보다 받은 보험료가 적어진다. 그러면 수입과 지출이 안 맞게 된다. 결국 이는 보험 기금 고갈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보험사의 부도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보험가입자에게 돌아간다.
이를 피하려면 부족한 보험료를 어떤 식으로든 충당해야 한다. 위험이 낮은 지역 가입자에게 주어졌던 보험료 할인 혜택부터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불합리하다. 사고 발생 위험률에 따른 공평한 보험료 부과가 아니다. 보험 원리에 반하며 보험료율을 공정하게 산정해야 한다는 보험업법과도 충돌한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과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지역별 재해 위험도를 반영한 보험료율 할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 연방농작물보험만 하더라도 허리케인이나 가뭄 피해가 잦은 지역은 더 높은 보험료율을 책정해 보험 재원 고갈을 막고 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 역시 농업재해보상보험에서 재해 위험이 큰 지역은 할증 보험료를 부과한다. 또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리는 실손의료보험도 최근 보험료 할인·할증제도를 도입했다. 제4세대 실손의료보험 비급여 보험금 수령액에 따라 -5%에서 300%까지 보험료가 조정된다. 이처럼 할인·할증은 보험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보험의 기본 원칙이다.
단기적으로는 이번 개정안이 일부 농어업인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보험 재정의 불안정과 제도의 지속 가능성 저하, 궁극적으로는 세금 투입이나 보험 혜택 축소 등의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농어업인 보호라는 본래 목적에 역행할 수 있다.
할증 제도는 농어업인의 재해 경감 노력을 유도하는 기능도 있다. 물론 자연재해가 농가의 의지로 피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할증 제도를 통해 방재 시설을 설치하거나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하는 등 예방 조치를 장려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재해 위험을 낮추고 농어업인의 회복력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이러한 긍정적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 염려된다.
농어업인을 위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다. 진정 농어업재해보험의 효율성을 높이고, 농어업인을 보호하려면 보험의 원리와 원칙부터 충실히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보험이 튼실해지고, 농어업인에게 흔들림 없는 보험 보장을 지속할 수 있다.
남상욱 한국리스크관리학회 학회장(서원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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