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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상화된 '보증금 미반환' 공포, 전세 폐지가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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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일상화된 '보증금 미반환' 공포, 전세 폐지가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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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입자다. 자취생 시절부터 결혼 직후까지 빌라에 살았다. 2021년 아파트로 이사할 마음을 먹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길거리 담배 연기, 불편한 주차를 그만 견디기로 했다. 하필이면 새 임대차법으로 전셋값이 폭등한 때였다. 귀한 매물 찾아 아는 사람 없는 영등포 문래동까지 눈을 넓혔다. 지하철역 15분 거리의 소형 아파트를 어렵사리 구했다. 보증금은 최고가인 5억2000만원. 집값의 60%가 넘어 꺼림칙했지만 집주인이 의사 부부인 데다, 아파트니 괜찮겠지 하며 마음을 놓았다.


1년6개월 후 금리 인상으로 이자가 76만원에서 182만원으로 폭등했다. 집주인에게 갱신 의사가 없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믿었던 의사 부부는 전셋값을 돌려줄 여력이 없었다. 역월세 70만원을 제안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금리가 계속 오르던 시기였다. 당황하는 집주인에 불안감이 엄습하며 매일 밤 보증금 걱정을 했다. 다행히 대출규제가 풀려 집주인은 올해 1월 전셋값 1억원을 낮춰 세입자를 구했다. 명색이 부동산 기자인 나조차 2년 전 ‘전세 난민’이 됐다가, 2년 후 ‘렌트 푸어’로 살며 온몸으로 주거 불안을 경험했다. 전세를 택한 대가치고는 너무 크게 느껴졌다.

수개월이 지난 지금 서울 아파트는 역전세의 온상이다. 5월 자치구별 최대단지 실거래가를 보니 25개 중 21개가 역전세에 해당했다. 대부분의 세입자가 몇 달 전 나처럼 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일상적 공포를 안고 산다는 뜻이다. 하반기 역전세난이 더 만연해진다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늘 수 있다.


역전세난이 ‘일상다반사’가 된 지금, 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상환 능력이 검증된 집주인에게 잠시나마 돈 길을 터줘야 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높이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전세 폐지론이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모두가 원하는 방식은 아닐 터다. 세입자는 매달 목돈을 월세로 내기 어렵고,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없어 기존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다. 지난해 국내 전세 보증금 총액만 200조원에 이른다.


그렇다고 무(소)자본 갭투자로 역전세, 전세사기를 유발한 지금의 전세를 그대로 둘 수도 없다. 전세 시장에 재정적으로 건강한 집주인과, 이를 신뢰하는 세입자만 남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근저당이나 채무가 있을 경우 전세 보증금을 제한하거나, 전세 보증 비율을 더 내리는 방법 등 갖가지 방안이 있다. 고통스럽겠지만 위기의 전세를 구할 방법은 분명 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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