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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K-우먼] "성 역할 깨부수는 '공간의 힘'...'코리빙'으로 부가가치 창출"

최종수정 2022.09.15 13:41 기사입력 2022.09.08 13:31

"물질적인 환경이 삶의 방식에 영향"
'코리빙'으로 일상의 경제적 가치 공유
고시원 변신·세대 공존 등 다양성 꿈꿔

편집자주아시아경제는 오는 10월 개최하는 여성리더스포럼에서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들을 '파워 K-우먼'으로 선정합니다. 인종·국경·장애 등 경계를 극복하고 도전하고 무너뜨린 인물들을 '파워 K-우먼'으로 선정했습니다. 차별에 위축되거나 경계에 갇히지 않고 맞서 싸운 사람들의 가치를 널리 알려 청소년과 여성 등에게 새로운 리더십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친 세상에 위로를 주고, 누군가의 롤모델로 자리 잡아 공동체가 다시 나아갈 힘을 줄 것입니다.
일시 | 2022년 10월 19일(수) 오전9시~오후5시20분
장소 |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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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노경조 기자, 황서율 기자] "'모든 공간은 정치적'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치라는 게 결국은 '관계'(relation)잖아요. 우리가 서로 어떻게 교류하고 대하는지가 공간에 무의식적으로 다 녹아 있는 거예요."


건축가 송멜로디(Melody Song)는 다소 서툰 한국말을 이어갔다. 그는 '건축'에 관심이 생긴 순간을 이야기하며 공간의 유기성을 되짚었다. 나아가 자신에게 있어 프로젝트(P)는 "사회적 약자와 여성, 소수자들에게 물질적인 환경이 변화할 수 있고, 다양한 형태의 삶이 있다고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의 가사노동에 가치 부여…'코리빙'의 시작

건축가 송멜로디가 지난 8월 22일 서울 용산구 보다건축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강진형 기자 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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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커다란 은빛 스피커를 양축으로 가운데 통유리가 놓인 듯한 부채꼴 모양의 건물을 볼 수 있다. 송 건축가가 대표로 있는 '보다건축'과 입주사 직원들이 함께 쓰는 공간이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2층 높이로 한쪽 벽면의 절반 이상을 가득 채운 LP 음반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앞에는 나무 바닥 위로 갈색 테이블과 소파 등이 놓여 있다. 송 건축가는 이 공간에 대해 "모두에게 휴게실이 되기도, 회의실이 되기도 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일터 속 코리빙(Co-Living)의 축소판인 셈이다.


코리빙은 송 건축가가 역삼동 '트리하우스'를 통해 한국에는 처음 선보인 주거 형태로, 광의의 개념은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그는 크레타섬의 크노소스(Knossos) 등 고대 유럽 도시를 예로 들어 "당시 사람들은 하나의 성 자체가 도시이거나 지붕들이 다 연결된 단지에서 따로 또 같이 생활했다"며 "오늘날 '도시는 (예컨대) 다 A처럼 생겼다'고 내재화돼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리빙은) 어떻게 하면 도시가 친환경적이고,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발달에 다양한 선택지를 줄 수 있을지 생각하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공간·환경이 주는 힘은 강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송 건축가는 "우리 삶의 방식은 주변의 물질적인 환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며 "지난 1860년~1920년대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지위 변화가 이를 잘 나타낸다"고 말했다. 돌로레스 헤이든(Dolores Hayden) 미국 예일대 교수의 저서 '위대한 가정 혁명'(The Grand Domestic Revolution)에서 변화상을 상세히 접할 수 있다.


그는 책 내용을 빌려 "도시가 생겨나던 19세기 말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했다"며 "가정 돌봄에만 충실했던 여성들도 이때 처음으로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성 운동가들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주장했고, 부엌이 없는 집을 설계해 공동육아를 이뤄냈다. 송 건축가가 '공간이 만드는 부가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 지점이기도 하다.


실제 경제를 뜻하는 영어 '이코노미'(Economy)는 그리스어로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와 규율을 의미하는 노미아(Nomia)의 합성어 '오이코노모스'(Oikonomos)에서 유래됐다. 이와 관련해 송 건축가는 "자본주의에서 (가사노동과 같은 일은)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사회적 인정도가 떨어진다"며 "그러나 사람의 일은 대부분 자동화되고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있다. 먹고, 마시고, 청소하고, 함께 사는 일상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대 공존·시간 교환, 함께 만드는 부가가치 꿈꿔"

건축가 송멜로디가 지난 8월 22일 서울 용산구 보다건축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강진형 기자 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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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하우스는 물론이고 송 건축가가 앞으로 만들어 나갈 '코리빙하우스'에서는 일상의 경제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이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수기도 한다.


그는 "생각의 틀도 공간에 의해 형성된다"며 "보통 '벽을 움직이거나 뚫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잘 안 하지만, 그런 틀을 바꿀 수 있다고 인식하면 생각도 훨씬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이런 유연한 사고가 코리빙하우스를 지탱한다. 기존에는 아파트 속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부모와 자녀가 각자의 역할을 했다면, 코리빙하우스에서는 개인이 하나의 셀(cell)로서 움직인다. 셀들이 모여서 생긴 공용 공간에서는 함께 요리·빨래를 하고, 개인 공간에서는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가사노동도 특정인이 당연히 해야 할 몫에 그치지 않고 엄연히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송 건축가의 생각이 실현되는 것이다.


송 건축가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24시간 일을 하면서도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공간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꽃이 햇살을 받아 활짝 피듯 주변 환경이 폭력적이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이 열린다. 이런 환경을 만드는 게 건축가의 힘"이라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다음 코리빙하우스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그는 고시원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고시원은 여러 명이 사실상 한집에 사는데 '형체는 없고 소리만 있는' 공포감을 준다. 송 건축가는 "이런 안전상의 단점을 보완하면 고시원만큼 코리빙하우스에 적합한 주거 형태도 없다"며 "서울시 내 공용 주차장 등에 이동식 형태의 층고가 높고 야외 공간도 활용한 고시원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의 형태가 획일화된 한국에서 트리하우스는 1호 코리빙하우스로서 다양성을 불어넣었지만, 이 또한 하나의 예일 뿐이라는 것이다. 건축가이지 예술가는 아니라는 그는 "우리가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다른 방식들에 대해 보여주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례로 지금처럼 비슷한 연령대만 모여 사는 것이 아닌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코리빙하우스를 꿈꿨다. 운영 방식에도 환기를 촉구했다. 송 건축가는 "세입자가 보증금을 내면 집주인이 반대급부로 (건물의 가치를 지분화한) 주식을 줘 함께 가치를 키워나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며 "이 경우 세입자는 오래 살수록 주식이 많아지고,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 건물 관리에도 더욱 신경을 쓰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잘하는 일로 도움을 준 시간이 통화(currency)로 쓰일 수 있도록 하는 '시간 교환'도 언급했다. 그는 "부동산은 환경이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장 잘 보여준다"며 "가사노동을 비롯한 모든 행위가 경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해 지속해서 살 수 있는 코리빙하우스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송멜로디는 누구?
▲1990년 출생 ▲건축가
▲㈜보다설계사무소 및 HAP호프피탈리티 그룹 공동대표
▲뉴욕대학교 인류학 학사
▲예일대 건축 석사
▲인시아드 MBA 싱가포르 캠퍼스
▲2022 제주 모슬포호텔 기획 및 설계
▲2019 코오롱하우스비전 공유주택 ‘트리하우스’ 설계 및 운영 등 다수 작품
▲2021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작품상 등 다수 수상


노경조 기자 felizkj@asiae.co.kr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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