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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미래]⑮ "놀러 오는 동네가 아니라, 살러 오는 동네가 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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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수 서촌주거공간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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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의 주요 주거밀집지역은 대체로 사대문 밖에 자리하고 있지만, 원래는 도성 안에도 많은 사람이 살았다. 서촌을 비롯해 가회동, 익선동 등에 남아있는 한옥은 그 흔적이다. 서울이 변화를 겪으면서 이들 지역은 상업시설에 빠르게 잠식됐다. 서촌은 그나마 주거기능을 여전히 보전하고 있는 지역인데, '서촌의 미래'에 관해 다양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내는 주민들이 그 증거다.


골목청소, 골목텃밭, 수성동 계곡 보존 등을 해온 서촌 주민들의 모임인 서촌주거공간연구회의 장민수 대표는 서촌의 주거기능 보전과 발전에 서촌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말한다. 서촌 주민들은 주차장을 찾아 늦은 밤 좁은 골목을 헤매며,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서촌에는 사람이 살아야 하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살게 되길 바란다.

-- 서촌에 주거지가 늘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 규제다. 서촌은 사실상 건국이래 국립공원, 그린벨트보다도 더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다. 여기에는 여야, 보혁이 없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은 물론이고 박원순 시장 때까지도 지역주민을 억누르는 규제는 계속돼 왔다.


-- 서촌은 역사적 장소다. 보전의 이유가 상당한만큼 규제의 타당성도 있지 않나

▶ 보전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보전을 이유로 그렇게 강력한 규제를 하면서도, 그 부담과 책임을 온전히 주민에게만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서촌에 들어서 있는 공공기관 등은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고 들어서 있다.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집을 리모델링하거나 층수를 늘리려고 해도 별별 규제의 적용을 다 받게 된다. 서촌에 가해지고 있는 각종 규제는 결과적으로는 주민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서촌에 초고층 아파트를 짓게 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 강력한 규제의 필요성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도 줘야한다.


-- 가령 어떤 반대급부가 가능한가

▶ 서촌에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으려면 땅을 최대한 많이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서촌에서는 타 지역처럼 10층, 20층씩 아파트를 올릴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사업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재개발·재건축과 다르게 기부채납 비율을 조정하는 등 인센티브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지 않나. 불가피한 규제로 인해 높이를 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기부채납이라도 면제해달라는 것이다.

--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정부 입장에서는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규제의 형평성은 왜 고려해주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다른 방식의 접근도 가능하다. 서촌의 특징 중 하나는 공공자산·시설이 서촌 부지의 상당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런 곳들은 모두 동네 주민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운영된다. 밤에 인왕산에 올라 서촌을 내려다봤을 때, 불 꺼진 곳은 주민과 상관없는 곳들이다. 주민들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켠다.


장민수 서촌주거공간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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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시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 당장에 주차장과 놀이터 등 기초적인 시설이 부족하다. 주민들은 밤늦게 퇴근해 동네로 돌아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마을 구석구석을 뺑뺑 돈다. 그런데 서촌 한복판에 커다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공공시설 담벼락 너머에서는 테니스공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민 입장에선 열불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사직단 복원·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놀이터마저 사라졌다. 아이 키우기 어렵다며 마을을 떠나는 주민이 생긴다. 사라진 시설에 대한 대안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종로를 '정치 1번지'라고들 하고,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선거 때마다 나오는 곳인데 정작 놀이터 하나도 못 만들어내는 게 정치 1번지의 현실이다.


-- 청와대도 남겨진 공공시설이라 볼 수 있겠다. 이곳은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 현재 언론에서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 박물관, 공연장, 도서관 등 모두 일리 있는 이야기라고 본다. 시설이 워낙 거대해서 주민들이 쓰기도 어렵다. 개인적으론 대학을 유치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공공시설은 기숙사나 임대주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 서촌의 주거기능 확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런데 서촌에 즐비한 한옥은 주거 밀도가 낮은 편이다. 보전과 개발,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까.

▶ 주거기능, 인프라 개선을 하더라도 기존 서촌의 주거기능과 환경은 보전해야 한다. 서촌은 한국 근현대 주택의 역사가 모두 남아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한옥은 물론, 일제강점기 지어진 주택도 있다. 고도성장기에 지어진 빌라·공동주택도 있고, 최신 건축물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촌은 한국 근현대의 모든 주택 유형이 몰려있는 역사적인 장소다. 일개 빌라라도 리모델링을 할 건지 신축을 할 건지 따져볼만한 가치가 있다.


-- 새로 지어지는 주택이 한옥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것인가

▶ 그렇다. 서촌의 역사, 풍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양식이라면 꼭 한옥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현재 한옥이 적용받는 규제도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전통 한옥은 처마가 길게 나와야 하는데, 규제 때문에 처마가 짧아지는 등 기형적 한옥이 양산되고 있다. 한옥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따라야할 조건도 상당히 많은데, 이에 따라 한옥이 획일화되는 경향도 있다.


한옥 옆 빌라에 사는 주민들은 또 다른 불만이 있다. 똑같은 동네에 사는데 누구는 세금으로 주거개선비용을 지원받고, 누구는 빌라라는 이유로 소외된다. 규제는 똑같이 받고 있는데 말이다. 한옥만이 아니라 서촌 내 모든 주택 유형에 대한 공공의 지원이 필요하다. 단, 난개발을 막기 위해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이 안에서 다양한 주택을 공급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다.


-- 서촌의 미래는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까.

▶ 주거가 중심이 돼야 한다. 얼마 전에 홍대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거기서 '서촌의 미래는 홍대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홍대는 이제 주거지가 거의 없다. 경의선 철길 부근에도 주거시설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제는 모두 상업시설로 바뀌어있다. 서촌은 한옥을 포함해 다양한 유형의 주택이 남아있는 사실상 유일한 서울의 지역이다. 살고 있는 사람을 보호하고, 타 지역 사람들도 기꺼이 살고 싶은 동네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서촌은 '사람이 산다'는 게 경쟁력이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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