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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 미래]⑪"'서울에 남아있는 시민 생활의 터'를 묻는다면 서촌"-김원 광장 건축환경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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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은 철저히 자연발생적인 마을
오랜 기간 서촌 지킴이 활동하며
역사·문화 가치로 주민 설득 해내
청와대 이전 후에도 서촌 보존돼야
'인왕산 제 모습찾기'로 복원도 함께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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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서율 기자] 김원 광장 건축환경연구소 대표는 건축사무소가 아닌 ‘건축환경연구소’에서 일한다. ‘환경’이 들어간 사명에는 자연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필요한 만큼만 짓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는 실제로 동강, 영월댐 등 자연환경 보호 활동에 힘써왔다. 인터뷰 내내 온화한 모습 속에서도 환경에 대해서 만큼은 단호한 태도를 보인 김 대표의 건축 철학에는 ‘서촌 지킴이’ 역할을 자청하며 오랜 기간 싸워온 역사가 담겨 있었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의 건축 철학은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88년부터 서촌에 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자택을 직접 지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 곳에 터를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

▶(김원) 서촌에 집을 짓고 살게 된 것은 절반은 우연, 절반은 필연이었다. 딸이 중학생 때 학군 때문에 반포아파트에 살았다. 살다 보니 건축가라는 사람이 아파트에 사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는 보편화, 일반화된 조건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선호에 따라 맞춤형으로 지을 수 있는 개인주택과는 다르다. 또, 아파트는 사람을 소시민으로 만든다. 아파트에 살면 자기 현관 앞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도 자신이 치우지 않고 경비실에 전화를 한다. 이게 대표적인 ‘소시민화’다. 반면 개인주택에 살면 자기 집 앞에 눈이 쌓였을 때 자신이 치워야 한다. 이런 게 창조적인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던 시기에 딸이 중학교를 졸업해 서울예고에 진학하게 됐다. 당시 평창동은 지금과 같이 터널이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사과 밭이었다. 세검정은 그때만 해도 광화문에서 너무 멀고 대중교통도 없었다. 그래서 조금 가까운 곳을 고른 것이 인왕산 밑, 옥인동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산악반에서 클라이밍을 했는데 인왕산은 산악반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산만 봐도 기분이 좋은 사람이라 옥인동이라는 장소를 정해놓고 집을 보러 다녔다.

김원 광장 건축환경연구소 대표의 서울 종로구 옥인동 주택/사진=본인 제공

김원 광장 건축환경연구소 대표의 서울 종로구 옥인동 주택/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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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집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복덕방에 가서 물어봤더니 내놓은 집이 없다고 했다. 나중에 들어와서 보니까 3대째, 5대째 그냥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걸 반대로 말하면 이 동네가 좋은 동네라는 것이다. 안정돼있고,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에 아무도 팔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팔려고 내놓은 집만 보는 게 아니고 내가 사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자고. 복덕방은 ‘팔지도 않는 집을 어떻게 사냐’는 반응이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찍었다. 그러고는 복덕방에 "시세보다 20% 더 낼 테니 집주인에게 얘기해달라"고 말했다. 2년 정도 기다린 후에야 집주인이 팔겠다고 연락이 왔다.


---어떤 점에 매료됐기에 그 같은 공을 들여 터를 잡게 됐나?

▶우선 아침저녁으로 인왕산을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산의 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 또 서촌이라는 곳을 워낙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좋아하는 지역이고, 광화문에서 내려서 도보로 10분 이내로 갈 수 있다. 경복궁이 있어 조용하기도 하고, 공기도 좋은 동네다. 지금 40년 가까이 살고 있는데도 역시 그때의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옥인동 자택을 지은 방법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뼈대는 그대로 남겨두고 건축을 했다. 대표님의 철학이 담긴 것인가?

▶다 때려 부수고 새로 짓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렇지만 콘크리트, 철근 같은 폐기물들이 나올 것을 생각하니까 끔찍했다. 만일 아주 낡아서 구조상 위험이 있었다면 부술 수밖에 없었겠지만 집도 꽤 튼튼하고 햇빛도 잘 들고 통풍도 잘 되는 곳이라 가능하면 그대로 집을 보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환경 어쩌고 하는 사람이지 않느냐(웃음). 그래서 최소한으로 개수·보수를 하려고 했고 지금도 전혀 불만이 없다.

옥인동 주택/사진=본인 제공

옥인동 주택/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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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서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서촌의 건축에 대해서 설명해준다면?

▶서촌은 개발 형식으로 새로 지어진 북촌과는 다르다. 철저히 자연 발생적인 마을이다. 양쪽 처마가 닿을 정도로 좁은 골목이 이를 증명한다. 이는 자연과 상호의존하고자 하는 한국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기본적으로 물길 위에는 집을 못 지으니까 물길을 따라 집을 지었다. 그러다 보니 집이 지어진 뒤쪽에 또 집을 짓고 짓다 보니까 좁은 골목이 생겼다. 그렇게 서촌의 집들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다. 물길의 위쪽은 식수로 쓰고 아래쪽은 하수도 배수로 쓸 수 있다는 이점도 누릴 수 있었다. 자연의 혜택을 최대한 늘릴 수 있는 식으로 집이 배치돼있는 게 특징이다.

서촌 한옥에 대해서 말하자면, 역관, 의관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규모가 아기자기하고 검소하면서도 내실이 있다. 예를 들어, 양반들은 말을 탄 채로 대문을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대문을 크게 짓는다면 서촌 한옥은 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으로 너무 내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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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개방으로 이동 경로가 생기면서 서촌에도 유동인구가 많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시민들은 어떤 점에 매료될 수 있을까?

▶서촌에 담겨 있는 역사다. 서촌에 대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금이 사는 경복궁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고, 또 인왕산이 위쪽에 길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사이 좁다란 주거지구가 있는데 이게 서촌이다. 궁에서는 필요한 기능직들이 많다. 갓 만드는 사람, 가죽 만드는 사람, 신발 고치는 사람 등 요즘으로 치면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런 기능직들이 많이 필요한데 궁 안에는 살 수 없으니까 가장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서촌은 중인들의 주 거주지가 됐다.


그들 중에서도 돈도 많고 의식 수준이 높은 사람이 역관이다. 중국에 사신을 보낼 때 통역을 해야 하니까 역관도 따라간 것이다. 그런데 현대 말로 하자면 출장비용이 필요한데 그게 엄청난 비용이 드니까 현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허용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조선의 좋은 물건, 조선 종이·고려 인삼을 들고 가서 중국에 비싸게 파는 거다. 그러면 큰돈이 들어온다. 그럼 그 돈으로 조선 사람들이 원하는 중국의 귀한 물건들 예를 들면 안경 같은 걸 사서 조선에 또 판다.


※테크노크라트: 과학적 지식이나 전문 기술을 통해 사회 조직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역관들은 그렇게 책을 사오고 문물을 보면서 의식이 선진화 됐다. 의식 있고, 돈 있으니 사회 개혁의 세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인임에도 불구하고 글짓기를 하는 등 양반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래서 서촌에는 시사(시를 짓는 모임)가 있었다. 기록에 남아있는 시사만 서촌에 30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때로는 의관이 왕에게 침을 놓고 ‘15분 동안 누워 계십시오’ 할 때 왕이 시사에 대한 소식을 묻기도 했다. 한 마디로 서촌에는 계급의 연결 지점이자 교류의 역사도 있는 것이다. 중인 천수경이 만든 시사가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던 ‘송석원’에서는 추사 김정희를 모셔오기도 했다. 오늘날까지 이런 시사가 별로 알려지지 않고 묻힐 뻔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장 시절 서촌 지역 재개발을 약속하고, 이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알려졌다.


---서촌 지역 재개발 바람이 분 당시를 말하는 것 같다. 서촌 지킴이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주민들은 집이 너무 낡았고, 골목이 좁고, 주차장도 없으니까 개발을 원했다. 나는 당시 이에 반대했는데 이 때문에 주민들로부터 배척당하기도 했다. 집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니까. 연세대학교에 허경진 국문학과 교수라고 있는데 그분이 도움을 많이 줬다. 그 분이 서촌 중인 계급의 문학 활동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다. 또, 당시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정옥자 교수도 있다. 두 분이 서촌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말해준 덕분에 서촌 개발 반대운동이 힘을 얻고 주민들도 중요성을 이해하고 결국 재개발도 취소됐다. 정말 오랜 기간 싸웠다.


서울 종로구 서촌마을./강진형 기자aymsdream@

서울 종로구 서촌마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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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민들 설득이 쉽진 않았을 텐데?

▶아파트를 짓는 방향으로는 가면 안된다고 주민들을 설득을 하기 위해 옥인지구 재개발추진위원회 위원도 맡았다. 당시 ‘5층 이상 지으면 안된다, 아파트도 대규모로 짓는 것은 안되고 탑형으로 만들어 사방 전망을 다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결국 설득이 안돼서 비상대책위원까지 했다. 다행히 그때 쯤엔 주민들이 이를 개발하는 것보다 보존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허경진 교수도 당시 장소마다 이곳은 이상이 있었던 곳, 이곳은 윤동주 등 어떤 인물이 살았는지 역사를 들춰내면서 많이 도와줬다.


---청와대 이전으로 서촌에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은 불가피해졌다. 서촌 개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앞서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서촌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구석구석 있는 곳이다. 따라서 보존이 답이다. 그리고 ‘서울’하면 경복궁이 떠오르겠지만 남아있는 시민 생활의 터가 어디냐고 하면 서촌이다. 만들어진 북촌과는 다르다. 지금까지는 청와대가 있어 약간의 규제를 받긴 했다. 층수 제한이나 대규모 아파트 허가를 안 내준다든지 등. 그래서 다행히 서촌이 살아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가 풀린다고 해서 개발 바람이 불거나 헐거나 이런 일은 없어야 하고 가능하면 그대로 보존하는 게 좋다.


다만, 양이나 크기가 아니라 질 위주로 발전시킬 방법은 찾아야 한다. 나는 고건 전 시장 때 남산 제 모습 찾기처럼 인왕산 제 모습 찾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왕산에는 호랑이가 나온다는 이야기도 나올 만큼 산이 굉장히 깊은 산이다. 그런데 김신조 사건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아스팔트로 작전 수행 도로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인왕산의 물 좋은 약수터가 막히고 물이 말랐다. 청와대가 나갔으니까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보행자 산책로를 만들어 인왕산을 복원해야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에 있는 보스턴 프리덤 트레일/사진=위키백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에 있는 보스턴 프리덤 트레일/사진=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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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처럼 역사적인 장소에 조화로운 변화를 줬던 사례가 있을까?

▶미국 보스턴의 프리덤 트레일이다. 영국에서 필그림 파더스가 배를 타고 와서 처음 정박했던 바위 언덕과 자유의 종이 그대로 있다. 미국이 자유 국가로 탄생하게 된 거리가 그 곳에 보존돼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근대 개항기에 세워졌던 목포 개화기 거리가 있다. 금융조합 건물, 일본 주택들 등을 보면 역사를 알 수 있다.


※보스턴 프리덤 트레일: 프리덤 트레일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명소들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도로 위에 그려 놓은 빨간색 안내 선이다. 이 안내선을 따라가면 16개 보스턴의 역사 깊은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 보스턴은 1620년 영국의 청교도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상륙한 이래 정치, 문화, 학문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의 중심을 이뤄왔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는 통치 중심지였고, 18세기에는 필라델피아와 함께 독립 미국의 주역이었다. 보스턴 시내는 고층 빌딩이 있지만 역사적 장소들은 손잡이나 골목 등 일상의 소소한 것들까지 잘 보존돼있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필그림 파더스: 1620년 북아메리카 식민지시대 뉴잉글랜드 최초의 영국 식민지가 된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정착한 사람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서촌 일대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까?

▶현재 문화재청에서 광화문 월대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원래 광화문이 문만 있었던 게 아니라 월대가 함께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광화문을 복원할 때 문만 복원했다. 원안대로 월대가 복원된다면 광화문 광장에서 경복궁으로 갈 때 건너야 하는 도로가 막히기 때문에 신호등 없이 경복궁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청와대도 개방되고 북악산도 개방됐기 때문에 이순신 동상에서부터 북악산 꼭대기까지 어마어마한 벨트가 만들어진다. 그냥 공원도 아니고 역사 문화의 공원이 된다. 이게 확대되면 인왕산과 서촌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면 이곳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곳이 생기는 것이다. 뉴욕 센트럴파크에는 역사 문화가 없지만 여기는 녹지도 있고, 왕궁도 있고, 대통령 관저도 있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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