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최석진의 법조스토리] 조국 부부 재판과 ‘동양대 PC’ 증거능력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왼쪽부터).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왼쪽부터).

AD
원본보기 아이콘

최석진의 법조스토리에서는 법원, 검찰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법조계의 다양한 이슈들을 다뤄보려 합니다. 주요 사건의 법적 쟁점이나 전망, 사건의 이면, 기사로 쓰지 못한 뒷얘기 등을 주제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조금은 자유롭게 써볼 생각입니다. 오늘은 그 열다섯 번째 스토리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자녀 입시비리 혐의와 관련된 증거들이 나온 동양대 PC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지난주 대법원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딸 조민씨 관련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관련 등 혐의에 대한 유죄가 최종 확정됐습니다.

검찰이 표창장 위조 등 혐의로 먼저 기소한 정 전 교수의 다수 혐의가 유죄로 확정됐지만 조 전 장관은 따로 재판을 받고 있고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또 정 전 교수 역시 아들의 입시비리 등 혐의에 대해서는 조 전 장관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정 전 교수에 대한 상고심 선고를 앞두고 법원 안팎에서는 정 전 교수의 혐의 중 일부 혐의가 무죄가 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계기는 지난해 11월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6도348)과 이를 원용해 동양대 강사휴게실 PC에서 나온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힌 조 전 장관 재판부 재판장(마성영 부장판사)의 발언이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제3자가 임의제출한 저장매체에서 정보를 추출할 때에도 정보 주체의 참여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았는데 이를 이유로 조국 부부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부장판사 마성영·김상연·장용범)가 동양대 PC에서 나온 핵심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죠. 검찰은 재판부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과대 해석했고, 재판장의 태도가 지나치게 피고인 측에 기울어진 편향성을 보인다며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동양대 PC에서는 조 전 장관 부부가 자녀들의 입시에 활용하기 위해 각종 표창장과 인턴십 증명서 등을 위조한 명백한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때문에 표창장 위조 자체를 부인했던 조 전 장관과 정 전 교수 측은 재판이 시작되자 이들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런데 재판장이 이들 유력 증거들을 유죄의 증거로 삼지 않겠다고 밝혔으니 조 전 장관이나 정 전 교수 입장에선 최소한 자녀 입시비리 혐의와 관련해선 무죄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해 볼 만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죠. 대법원에서 정 전 교수에 대한 유죄 확정판결이 나온 뒤 조 전 장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늘 저녁은 가족이 모여 밥을 같이 먹을 줄 알았으나 헛된 희망이 되고 말았다”고 한 것 역시 그 같은 기대가 불발된 실망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앞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주심이 바로 정 전 교수 사건의 주심을 맡은 천대엽 대법관이었기 때문에 그 같은 관측에 더욱 힘이 실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정 전 교수 측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검찰이 기소한 15개 혐의 중 자녀 입시비리와 관련된 사문서위조 등 11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4년에 벌금 5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앞선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른다 해도 정 전 교수 사건에서는 동양대 PC에서 나온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양대 PC 증거능력 왜 안 뒤집혔나… 대법 “정경심 관리·처분 벗어난 PC” 판단

검찰은 기피 신청을 하며 재판부가 대법 판결의 취지를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같은 검찰의 주장이 나름 일리가 있었다는 게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사례와 정 전 교수 사건은 사실관계부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합 사건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불법 촬영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의 휴대전화를 경찰에 제출한 사건인 반면, 정 전 교수 사건은 강사휴게실에서 공용 PC로 사용하도록 정 전 교수가 관리·처분권을 포기한 PC를 해당 PC를 관리하던 조교가 검찰에 임의제출한 사건이었습니다. 각각 제3자가 임의제출 형태로 수사기관에 물건을 전달했다는 점은 같지만, 전합 사건은 휴대전화의 소유자가 직전까지 보관하며 관리해오던 전화기였던 반면, 동양대 강사휴게실에 있던 PC는 이미 3년째 공용으로 사용되거나 고장이 나 방치돼온 PC로 더 이상 정 전 교수의 관리·처분 권한이 미친다고 보기 어려운 PC였던 것이죠.


나아가 대법원 전합 판결의 취지는 피해자가 제출한 2대의 휴대전화 중 가해자가 과거에 사용했던 휴대전화에서 나온 사진이나 영상물을 가해자의 참여 없이 추출한 뒤 경찰이 수사 중이던 가해자의 범죄 외의 다른 범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뒤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하겠지만 피의자가 최근에 저지른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관련 증거를 찾기 위해 휴대전화 포렌식을 진행하다가 우연히 과거에 저지른 다른 범죄 증거가 나왔을 때, 법원으로부터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받고, 이에 대한 정보주체의 참여권을 보장한 상태에서 추출한 증거라야 증거능력이 있다는 판결입니다. 반면 정 전 교수 사건의 경우 정 전 교수의 사문서 위조 등 혐의 수사를 위해 해당 PC를 보관자인 조교로부터 임의제출 받았고, PC에서 나온 증거를 표창장 위조 등 수사 중인 바로 그 혐의의 증거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위 전합 판결의 논리에 따른다고 해서 동양대 PC의 증거능력을 부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성영 부장판사가 조국 부부 사건 재판에서 동양대 PC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검찰이 반발한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정 전 교수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18일 선고된 2016도348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에 따르더라도 피의자(정경심)에게 참여권을 보장해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즉 앞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이번에 선고된 정 전 교수의 상고심 판결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전합 판결의 취지에 따르더라도 동양대 PC의 증거능력은 충분히 인정된다는 게 대법원 판단입니다.


대법원은 앞선 전합 판결 내용을 원용해 “전자정보가 저장된 정보저장매체를 임의제출받는 경우 전자정보 압수의 범위는 압수의 동기가 된 범죄혐의사실과 관련되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가 있는 전자정보에 한해 압수의 대상이 된다”며 “그 관련성은 임의제출에 따른 압수의 동기가 된 범죄혐의사실의 내용과 수사의 대상, 수사의 경위, 임의제출의 과정 등을 종합해 구체적·개별적 연관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인정된다”고 전제했습니다.


또 “피해자 등 제3자가 피의자의 소유·관리에 속하는 정보저장매체를 영장에 의하지 않고 임의제출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소송법 제219조, 제121조, 제129조에 따라 피의자에게 참여권을 보장하고 압수한 전자정보 목록을 교부하는 등 피의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이와 같이 정보저장매체를 임의제출한 피압수자에 더하여 임의제출자 아닌 피의자에게도 참여권이 보장돼야 하는 ‘피의자의 소유·관리에 속하는 정보저장매체’라 함은, 피의자가 압수·수색 당시 또는 이와 시간적으로 근접한 시기까지 해당 정보저장매체를 현실적으로 지배·관리하면서 그 정보저장매체 내 전자정보 전반에 관한 전속적인 관리처분권을 보유·행사하고, 달리 이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포기하지 않은 경우로써, 피의자를 그 정보저장매체에 저장된 전자정보에 대해 실질적인 압수·수색 당사자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민사법상 권리의 귀속에 따른 법률적·사후적 판단이 아니라 압수·수색 당시 외형적·객관적으로 인식 가능한 사실상의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이러한 정보저장매체의 외형적·객관적 지배·관리 등 상태와 별도로 단지 피의자나 그 밖의 제3자가 과거 그 정보저장매체의 이용 내지 개별 전자정보의 생성·이용 등에 관여한 사실이 있다거나 그 과정에서 생성된 전자정보에 의해 식별되는 정보주체에 해당한다는 사정만으로 그들을 실질적으로 압수·수색을 받는 당사자로 취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제3자가 임의제출한 정보저장매체(즉 이번 사건에서는 조교가 임의제출한 동양대 PC)로부터 전자정보를 압수할 때, 제3자 외에 물건의 소유자나 피의자에게 참여권을 보장해야 할 때는 법적인 측면에서가 아닌 현실적으로 해당 물건을 지배·관리하면서 그 안에 있는 전자정보에 대한 관리처분권을 갖고 있는 경우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동양대 PC는 이미 임의제출된 2019년 9월 10일 당시 이미 지배·보관 및 관리처분권이 동양대 측에 있었기 때문에 PC 안에 있는 전자정보를 추출할 때 정 전 교수의 참여권을 보장해줄 필요가 없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재판 도중 정 전 교수 측 진술이 계속 바뀌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동양대에서 공용PC로 사용하던 PC를 정 전 교수가 일정 기간 자신의 집에 가져가 사용하다가(대법원에서 확정된 범죄사실에 따르면 정 전 교수는 2013년 6월 해당 PC 중 1대를 이용해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했습니다) 2016년 12월경 동양대 영어캠프 등에서 공용PC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동양대로 가져다 놓았고, 그때부터 3년 가까이 강사휴게실 내에 보관돼 있었던 만큼 PC에 대한 관리처분권은 동양대에 있다고 봐야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리고 강사휴게실 물품의 보관·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조교와 동양대 물품 관리를 총괄하는 행정지원처장이 PC의 임의제출에 각각 동의했고, PC의 이미징 및 탐색, 전자정보 추출 등 과정에 참관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으나 두 사람 모두 참관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검찰이 PC에서 정 전 교수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추출하는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미 PC의 관리처분권을 학교에 넘긴 정 전 교수가 설사 그 안에 저장된 전자정보의 주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참여권을 보장해야 하는 게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앞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밝힌 판결로 볼 수 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어떤 내용이었나

문제의 사건은 준강제추행죄와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죄가 문제된 성범죄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의 사실관계는 아래와 같습니다.


대학교수인 피고인 A씨는 2014년 12월 11일 저녁 자신이 거주하는 오피스텔에서 제자인 피해자 B씨(남·당시 24세)가 다른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하자 B씨를 질책하며 함께 술을 마신 후 옷을 벗은 채 술에 취해 침대 위에 누워있던 B씨의 성기를 의사에 반해 촬영한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 B씨는 즉시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뒤 출동한 경찰관에게 ‘A씨가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이 저장돼 있다’는 취지로 얘기하면서 피고인 A씨의 집에서 갖고 나온 2대의 휴대전화를 증거물로 임의제출했습니다.


A씨는 2대의 휴대전화 중 당시 사용 중이던 애플 아이폰4에 대해서는 즉시 잠금을 해제한 뒤 A씨를 촬영한 영상을 경찰에게 임의로 확인시켜줬습니다. 반면 A씨는 나머지 1대의 휴대전화인 삼성 갤럭시 S2 휴대폰은 잠금화면을 풀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삼성휴대폰에도 A씨가 B씨를 촬영한 영상과 사진 등 증거물이 담겨 있어 A씨가 일부러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진행된 디지털정보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A씨는 애초 비밀번호를 제공했던 아이폰에서 경찰이 저장된 파일을 추출하는 이미징 과정에는 참여했지만, 삼성휴대폰의 디지털정보 압수수색 과정에는 예상 소요시간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아이폰에서 B씨에 대해 A씨가 저지른 범행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동영상 파일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추가 증거 확보를 위해 충북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의뢰한 2대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증거분석(포렌식) 과정에서 피해자 B씨가 아닌 다른 남성 C씨(당시 25세)와 D씨(당시 25세)가 침대 위에서 잠든 모습과, A씨가 손으로 두 사람의 성기를 잡고 있는 모습 등이 촬영된 동영상 30개와 사진 등이 나왔습니다. A씨가 2013년 12월에 저지른 범행 장면들이었습니다. 검찰은 애초 수사 중이던 B씨에 대한 사건과 함께 A씨를 C·D두 사람에 대한 준강제추행 및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3명의 피해자에 대한 2건의 범죄사실을 함께 심리한 1심 재판부는 두 혐의 모두 유죄를 인정,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또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수강도 명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수강명령도 40시간에서 20시간으로 줄였습니다. A씨가 2014년 B씨에게 저지른 범죄의 증거를 찾기 위해 B씨로부터 임의제출받은 삼성휴대폰에서 A씨의 2013년 범행의 증거자료가 나왔지만, A씨가 삼성휴대폰에 대한 디지털증거분석 과정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것은 2014년 저지른 범죄와 관련해서였을 뿐 2013년 범죄에 대해서까지 참관을 포기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습니다. 또 검찰이 2014년 범죄의 증거를 찾기 위해 포렌식을 진행하던 중 완전히 새로운 2013년 범죄의 증거를 발견했다면, 따로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고 포렌식을 진행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사전 영장 없이 취득한 2013년 범죄의 증거들이나, 이를 토대로 사후에 영장을 발부받아 취득한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대법원도 이 같은 2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습니다. 정 전 교수 사건에서 대법원이 밝힌 기준에 비춰보면 휴대전화의 소유자가 아닌 제3자, 즉 피해자 B씨가 피의자 A씨의 휴대전화를 임의제출했고, 경찰에 제출되기 직전까지 휴대전화의 관리처분권이 A씨에게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휴대전화에서 전자정보를 추출할 때 A씨의 참여권이 반드시 보장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휴대전화에서 추출한 2013년 범죄의 증거들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가 돼버린 것입니다.

조국 부부 재판 어떻게 될까

일단은 재판부 기피 신청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재판부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이번 같은 경우 재판부가 피고인 측과 검사 앞에서 밝혔던 증거 관련 판단을 180도 번복해야 될 상황인 만큼, 기존 재판부가 심리를 이어가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하급심 재판부가 기존 대법원 판결을 꼭 따라야 하는 건 아닙니다. 법원조직법 제8조(상급심 재판의 기속력)는 ‘상급법원 재판에서의 판단은 해당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下級審)을 기속(羈束)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같은 사건에서 2심 법원의 판결이 대법원에서 깨졌을 때, 다시 사건을 넘겨받은 파기환송심은 상급법원인 대법원의 판단에 기속되지만, 거의 똑같은 사안이라고 해도 당사자가 다른 사건일 경우 대법원의 판단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닌 것이죠.


과거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처럼 하급심에서 대법원의 입장과 반대되는 판결이 쌓이면서 결국엔 대법원 판결이 바뀐 사례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 입장과 달리 하급심에서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신도들에게 병역법 위반 혐의 무죄를 선고했던 경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병역법 위반 사건은 시대가 바뀌면서 서서히 국민의 법감정에도 변화가 생겼고, 판사들이 그 같은 사회현실을 재판에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대법원이 지난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수립한 ‘제3자가 임의제출한 정보저장매체의 압수수색’과 관련된 법리를 이번 정 전 교수 사건에서 더욱 구체화했고, 두 사건의 주심은 천대엽 대법관으로 같았습니다. 그동안 명확하지 않았던 법적 쟁점에 대해 비로소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과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제시된 셈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 전 교수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앞선 전합 판결을 이유로 동양대 PC의 증거능력을 부정한 종전 입장을 계속 고집하기는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물론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 깨질 것을 각오하고 기존 견해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만,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사법부의 권위나 법적안정성 등 여러 면에서 볼 때 무리라고 판단됩니다.


결국 재판부 기피 신청이 받아들여지든, 그렇지 않든 남아있는 조국 부부 재판에서는 동양대 PC와 그 안에서 추출된 증거들이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이미 정 전 교수 재판에서 조 전 장관과의 공모관계가 확인된 혐의들에 대해 유죄가 확정된 만큼 조 전 장관도 유죄 판결을 피하기 어려워진 게 사실입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뉴진스의 창조주' 민희진 대표는 누구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