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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前경제수석 "정부가 '국민 삶 끌고가겠다' 발상하면, 그 경제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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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창간기획 - 대한민국 경제를 묻다>
'경쟁력·시스템·인식' 3대 위기
"韓 경제, 규제 풀어야 경쟁력…기업 '제발 내버려달라'"
"文정부, 시장에 대한 존중·이해 바탕으로 정책 펼쳐야"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4일 서울 용산구 철도정책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4일 서울 용산구 철도정책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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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최일권 아시아경제 경제부장, 정리=손선희 기자] "정부가 경제를 예측하고 판단해 국민의 삶을 ‘어떤 식’으로 끌고가겠다고 발상하는 순간 그 경제는 끝입니다. 정부는 그렇게 유능한 존재가 아니에요."


30여년 정통 경제관료로 일했던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79)은 최근 아시아경제 창간 기념 인터뷰에서 "정부가 탁월한 예지력과 판단력, 나아가 도덕적 기반까지 갖춰서 국민을 이끌어간다는 전제가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지구상에 그런 정부는 존재한 적이 없다"며 이같이 잘라 말했다. 정부에서 오랜 기간 몸담고 경제정책을 펼쳤던 그는 긴 관직생활 끝에 역설적으로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됐다고 했다. 정부의 시장개입을 줄이고 규제를 개혁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영원한 시장주의자'답게 시장의 작동불능을 우리 경제의 문제로 지적했다. 경쟁을 죄악시하고 시장이 돌아가지 않는 위기라는 것인데, 그런 위기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더 큰 문제로 꼽았다.


김 이사장은 김영삼 정부에서 장관급 첫 공정거래위원장을 거쳐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다. 전례없는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대응해온 관료 입장에서 한국이 겪을 수 있는 새로운 위기를 진단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엔 무게감이 실린다.


특히 그는 시장의 작동원리를 외면하는 현 정부의 경제철학에 대해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김 이사장은 "개별적인 지표의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경제를 운영하는 철학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단적인 예로 부동산정책을 들며 "전부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가 야기한 어마어마한 부채는 위기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부채는 사상 최고치인 281조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연간 세계총생산(국가별 국내총생산 합계)을 고스란히 모아 갚는다고 가정해도 3년 이상이 걸리는 규모다. 빚이 촉발할 수 있는 경제적 위험에 대해 "아직 인식조차 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평가해 우리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위기의 단초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막대한 규모의 부채는 위기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김 이사장은 "과거 1998년 외환위기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결국 최종 의존수단은 공적자금이었다"며 "국가 재정은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정부빚만 1000조원, 가계빚은 2000조원을 넘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여전히 ‘확장재정’ 기조를 고집하며 재정준칙 마련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점에 대해선 "2025년부터 재정준칙을 적용하겠다는 말은 ‘생색은 현 정부가 내고 다음 정부는 갚기만 하라는 것’"이라며 "그런 정부는 존재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4일 서울 용산구 철도정책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4일 서울 용산구 철도정책연구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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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김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한국 경제 현황을 어떻게 보나.

▲경쟁력의 위기다. 물론 반도체처럼 잘 되고 있는 분야도 있지만,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반도체, 조선,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등이 주력 상품이 된 지는 20년이 지났다. 지금도 여전하다. 미국을 보라.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나. 그게 산업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세계 밸류체인도 미국이 다시 장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겨우 뒤따라가는 데 급급하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3차 산업혁명까지 한국보다 앞섰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는 뒤처져 있다. ‘초지능, 초연결, 초융합’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은 ‘불가지 불가측(不可知 不可測)’이다. 세계 석학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에서 어떤 경제가 살아남나. 가장 유연하고 자율적인 경제다. 내가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이유다. 미국이 계속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는 것 역시 가장 유연하고 규제가 가장 적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시장경제하는 나라가 맞냐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최근 거시경제 지표 흐름을 보면 펀더멘탈은 좋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개별적인 지표의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경제를 운영하는 철학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본철학이 잘못이라면 큰 문제 아닌가.

▲부동산정책을 보라. 현 정부 들어 시도한 부동산정책 전부를 가능하다면 다 폐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이상 해결이 안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 것 중에 남겨야 할 게 하나도 없다. 애초에 부동산정책 목표를 잘못 설정했다. ‘투기 억제, 불로소득 환수’가 어떻게 목표가 될 수 있나. 투기와 투자는 실제론 구분이 안 된다. 정부는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는다지만 더 나은 집으로 옮겨가겠다는 국민의 욕구를 감안하면 그에 미치지 못한다. 정당한 욕구를 전부 투기로 간주하고 때려잡겠다고 하고 있다. 정책 목표를 ‘국민 주거안정’으로 두고, 좀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옮기고 싶어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인정해야 한다. 정부가 직접 집을 짓겠다는 자세도 문제다. 최저소득층을 위한다면 몰라도, 금융을 통해 집을 살 수 있는 국민들에게까지 왜 정부가 지은 집에서 살도록 하나. 한국의 건설회사는 많고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자재도 많다. 정부는 오로지 땅 공급에만 집중하면 된다.


-현재 재정상황을 봤을 때 다음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일까.

▲그렇다. 우선 차기 정권과 국회의 임기가 맞지 않는다. 국회 동의 없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상당히 어려운 정치환경이 조성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포용력을 발휘하면서도, 중요할 땐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재정을 활용한 정부 역할은 더 커졌다.

▲보건, 복지 등은 정부의 주영역이다. 정부 도움 없이는 도저히 못버티는 최저소득층은 당연히 보살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경제를 다 해결하겠다는 발상을 하면 안 된다. 정책 영역과 시장 기능은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예를 들어 교도소의 죄수를 관리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하지만 교도소에 음식과 잠자리를 공급하는 일은 민간 숙박업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교도소라고 해서 정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한다는 발상을 할 필요가 없다. 정부가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찾아 민간에 맡길 영역은 얼마든지 있다.


-시장의 요구는 무엇인가.

▲제발 규제 좀 줄여달라는 것이다. 예전엔 주로 ‘싼 이자로 돈을 더 얻게 해달라’는 금융지원 요청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얘기하는 기업은 별로 없다. 도와줄 것도, 필요한 것도 없고 ‘제발 내버려달라’는 게 기업하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이다. 고용도 정부가 공공 일자리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문제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너무 간단하고 평범한 논리 아닌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이 ‘나쁜 짓을 한다’는 인식이 있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기업이 아무리 나빠도 거대 정부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불러오는 해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경제 권력이 정치를 압도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는 권력이 아니다. 경제 권력이 아무리 세도 정치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니다. 이재용씨를 봐라.


-올해 추가세수로 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하겠다고 한다.

▲필요하다면 할 순 있다. 하지만 재원으로 쓰겠다는 일시적 추가세수를 코로나19로 완전히 주저앉았던 지난해와 비교해 늘었다고 하면 안 된다. 올해 세수는 많이 걷힌 게 아니라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재정운용의 원칙은 세계잉여금이 생기면 빚(국채)부터 갚으라는 것이다. 법에 명시돼 있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뒀던 1997년(청와대 경제수석 재직 당시)에 다음해 예산을 물가상승률과 비슷한 수준(3%)으로 사실상 동결하겠다고 했더니, 당시 여당에서 ‘당신들 미쳤나. 선거 지면 다 끝이다’라고 하더라. 고함에 삿대질 당하면서도 끝까지 버텼다. 그렇게 해서 유지한 재정건전성이다. 한국 재정이 일시적으론 몰라도 지금처럼 ‘구조적 빚’은 없던 시절이다. 빚에 대한 유혹은 개인이건 기업이건 정부건 다르지 않다. 빚만큼 쉬운 수단이 어디 있나.


-증세가 필요하다고 보나.

▲위기는 어떤 형태로든 온다. 얼마나 건전한 재정을 운영하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적 위기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 역할을 줄여 효율을 높이고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그게 안 된다면 증세를 할 수밖에 없다. 증세 없이 계속 돈을 퍼주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의회의 시작은 ‘입법권’이 아니라 ‘재정권’이었다. 기본적으로 권력이 시민에게 멋대로 추가부담을 지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회가 생겨났다. 지금도 국회가 세출예산을 늘릴 땐 행정부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의회 정신이다. 그런데 지금은 국회가 나서서 재정지출을 늘리고 추경을 하자고 한다. 제동을 걸 기제가 필요하다. 이미 인구 상위소득 10%가 전체 조세의 55%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근로소득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도 40%나 된다. 이런 것부터 고쳐야 한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인데,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경제를 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시장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정부의 역할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완벽한 시장은 없다. 당연히 결함이 있을 수 있다. 정부는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의도하는 방향으로 경제가 돌아가는지 면밀히 연구하고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또 기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기업이 예뻐서가 아니다. 적어도 고용면에서는 제일 나쁜 기업이라도 제일 좋은 정치인보다 국민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이 돈 벌면 결국 국민경제로 환류된다. 기업인이 기업하고 싶게끔 만들어야 한다.




세종=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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