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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②'경제개발계획' 추진과 '시멘트협회'의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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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멘트산업사

쌍용양회 동해공장을 시찰하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홍재선 쌍용양회 회장( 박 전 대통령 오른쪽).[사진=한국시멘트협회]

쌍용양회 동해공장을 시찰하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홍재선 쌍용양회 회장( 박 전 대통령 오른쪽).[사진=한국시멘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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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한국은 연간 6000여만톤의 생산규모를 갖춘 세계 12위의 시멘트 대국이다. 시멘트 기술면에서도 1980년대부터 해외에 생산기술을 수출할 만큼 시멘트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한국 시멘트산업의 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지난 60~70년대 경제발전기 국가기간산업의 역할을 다 했지만, 2000년대 들어 환경을 망치는 공해산업으로 낙인찍히면서 국민 관심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시멘트산업은 친환경산업으로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본지는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나고 있는 한국 시멘트산업의 역사를 10회에 걸쳐 재조명해 본다.[편집자주]


국내 시멘트산업은 1960년대의 경제개발정책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정부의 공업화 정책이 진행됨에 따라 철도·발전시설·항만·하천·교량·수리시설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급진전 됐기 때문이다.

경제기획원이 1962년 1월 13일 공식 발표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가운데 시멘트 부문의 주요 골자는 기간내 시멘트공장을 신설 및 확장해 기준연도의 연생산 65만톤을, 목표연도에 137만톤으로 증대시켜 국내 예상 수요량인 120만톤을 초과 달성하는 것이었다.

쌍용양회가 첫 생산한 시멘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싸인했다. [사진=한국시멘트협회]

쌍용양회가 첫 생산한 시멘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싸인했다. [사진=한국시멘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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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제개발 정책은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해있던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여건 하에서 그야말로 획기적인 도전이었다. 시멘트는 철근, 목재 등과 더불어 산업건설의 기초자재였지만, 기존의 동양시멘트와 대한양회의 생산량으로는 매년 늘어나는 시멘트의 수요를 충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


그러자 시멘트의 수입 의존도는 1960년 11.1%에서 1963년에는 26.2%로 늘어났다. 정부도 이를 감안, 경제개발 계획의 추진과 함께 시멘트 공장의 신·증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기존의 동양시멘트와 대한양회의 생산시설을 확충함과 동시에 쌍용양회, 한일, 현대, 성신양회, 유니온 등이 새로이 시멘트업계에 진출했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 시멘트의 연간 생산실적은 100만톤을 넘어섰고, 마침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게 된다. 또 1964년 베트남에 시멘트를 처음 수출함으로서 기술력을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게 된다.

1963년 7월 1일 한국양회공업협회가 발족하면서 국내 시멘트산업은 국가기간산업으로 그 위치를 굳게 다지고, 성장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한국양회공업협회는 현 '한국시멘트협회'의 전신이다.


국가경제개발에 맞춰 시멘트산업이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업계 단결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데 동양시멘트, 대한시멘트(1975년 쌍용양회에 흡수합병됨), 쌍용양회, 한일시멘트, 현대시멘트 등 5개사가 공감하게 된다. 이에 5개사 대표는 시멘트업계의 앞날을 위해 동업자간 대화를 통해 회원사의 권익증대와 친목도모, 국내수요 충족 및 해외시장 진출 등 국민경제에 이바지하고자 협회를 출범시킨다.

'한국시멘트협회'의 전신인 '한국양회공업협회'를 출범시킨 5인의 발기인들. 사진 왼쪽부터 이양구 동양시멘트 회장(동양그룹 회장), 이정림 대한양회 회장(전경련 회장), 홍재선 쌍용양회 회장, 허채경 한일시멘트 회장, 정주영 현대시멘트 회장(현대그룹 회장).

'한국시멘트협회'의 전신인 '한국양회공업협회'를 출범시킨 5인의 발기인들. 사진 왼쪽부터 이양구 동양시멘트 회장(동양그룹 회장), 이정림 대한양회 회장(전경련 회장), 홍재선 쌍용양회 회장, 허채경 한일시멘트 회장, 정주영 현대시멘트 회장(현대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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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도전을 통해 시련을 극복하고 획기적인 국력신장을 성취한 도약의 연대라고 할 수 있다. 1, 2차 석유파동으로 빚어진 세계경제의 침체와 불황, 1979년 발발한 10.26 사태 여파 등 국내외 불안요인으로 인해 매우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1960년대 이래 꾸준히 실시해 온 경제개발계획을 강력히 추진해 나감으로써 오랜 빈곤에서 탈출했고, 국제수지를 개선해 자립경제의 기틀을 다졌다. 1978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비록 1979년에 이르러 경제성장 속도가 급격히 둔화되고, 새롭게 맞이한 1980년대의 시작이 그리 밝지 않았지만 1970년대를 거치며 이룩한 우리나라의 괄목(刮目)할 만한 성장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1960년대 시작된 경제개발 정책으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 됐고, 한국시멘트협회의 전신인 '한국양회공업협회'의 출범으로 시멘트산업은 발전 가도를 달리게 된다"면서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은 시멘트산업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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