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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사람]파리 시내서 거지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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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거지들은 대부분 개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파리의 거지들은 대부분 개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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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로 알려진 나라의 주요 도시에 의외로 '거지'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거지나 노숙자를 국가의 '그늘'로 생각하고 이를 숨기려는 나라도 있지만, 굳이 감추려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입니다. 미국의 경우 로스엔젤레스(LA)나 샌프란시스코 등 날씨가 따뜻한 태평양 연안의 대도시에는 거리 곳곳에서 거지를 목격할 수 있습니다. 거지가 정말 많은 도시 중에 프랑스의 파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계 어느 도시의 거지보다 파리의 거지는 유명합니다.

관광객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기 때문에 당국에서도 파리의 거지들을 단속하지만 이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현지에서 '망디앙(mendiant)'이라 불리는 이들은 주요 공원과 역 광장, 블러바드 오스만 스트리트 같은 관광호텔 밀집지역, 명품샵이 즐비한 샹젤리제, 몽테뉴 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파리에 이토록 거지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프랑스는 세계 7위의 경제대국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은 미국입니다. 미국은 국내총생산(명목 GDP 기준) 19조399억 달러로 중국(12조1000억 달러)보다 한참을 앞서고 있습니다.


3위는 일본(4조8700억 달러), 4위 독일(3조6800억 달러), 5위 영국(2조6200억 달러), 6위 인도(2조6160억 달러), 7위 프랑스(2조5800억 달러), 8위 브라질(2조5억 달러), 9위 이탈리아(1조9300억 달러), 10위 캐나다(1조5000억 달러), 11위 한국(1조53억 달러) 등의 순입니다.

국민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를 따질 때는 1인당 국민소득(PPP 기준)이 얼마냐를 따집니다. 1인당 국민소득을 순서로 해도 프랑스가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IMF가 2019년을 기준으로 집계한 1인당 국민소득 1위 국가는 룩셈부르크(11만2850 달러)입니다. 프랑스는 4만2470 달러(19위)이고, 한국은 3만1940 달러(29위)입니다.


파리에 거지나 노숙자가 다른 부유한 나라의 도시들에 비해 많은 것은 프랑스가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이민정책과 불법 체류자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당국이 주장하는 이유는 "인권과 자유를 중시하기 때문"이지만, 속내는 험한 일을 할 노동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리에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파리 시내는 쓰레기에 뒤덮이고, 센강은 똥물로 변한다고 할 정도로 노동자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프랑스는 유럽에서 망명자와 불법 체류자가 가장 많은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리의 거지들은 일을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운영하는 고용센터에 요청하면 즉시 일자리를 알선해줍니다. 일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세 차례나 재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거지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파리의 거지들을 주목해서 보면, 대부분이 강아지를 데리고 있습니다. 덩치 큰 개가 아닌 중소형 강아지입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강아지와 관광객들이 던져줄 동전을 받는 용도로 사용하는 더러운 페도라와 커다란 맥도날드 종이컵은 이들의 생존도구입니다. 거지가 강아지를 키운다고? 한국 사람들의 판단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들이 강아지를 키우는 이유 중 하나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프랑스는 애완동물을 유기하면 처벌합니다. 경찰이 거지를 단속하면 남겨진 개를 책임져야 합니다. 개를 책임지기도 곤란하고, 단속 과정에서 개를 학대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알려지기라도 하면 난처해집니다. 단속은 자연스럽게 느슨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강아지를 옆에 꼭 끼고 다니는 다른 이유는 추울 때 난로 대용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온이 떨어지는 아침과 겨울에는 꼭 안고자는 바이오 히터인 셈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실업자(거지 포함)가 개를 키우면 지방 정부에서 실업자는 물론, 개에게도 사육보조금을 주기 때문입니다. 강아지를 옆에 끼고만 있어도 파리시에서 보조금을 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동정심을 자극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인정많은 관광객이나 파리 시민들은 거지가 강아지를 굶길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거지는 그다지 불쌍하지 않더라도 강아지가 불쌍해서 개사료를 사라고 돈을 페도라나 종이컵에 던져 넣습니다.


파리 거지들은 나름대로 고도의 영업 전술을 구사하는 셈입니다. 관광객이, 파리 시민이 돈을 페도라에 던져주는 한 파리 거지들이 영업을 그만 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파리의 거지들도 나름의 영업 방식이 있습니다. 실업자를 위한 제도의 빈틈을 악용하는 그들의 방식이 문제일까요, 게으른 인간의 본성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거지에게 적선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일까요?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파리의 거지들도 나름의 영업 방식이 있습니다. 실업자를 위한 제도의 빈틈을 악용하는 그들의 방식이 문제일까요, 게으른 인간의 본성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거지에게 적선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일까요?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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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거리에서 거지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개사료까지 걱정해주는 지나친 프랑스 정부의 복지정책 때문일까요, 사람보다 개를 더 걱정하는 파리 시민들의 오지랖 때문일까요? 아니면 게으른 인간의 본성 때문일까요?


지난 9일 기초연금법이 개정되면서 월 최대 3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이 현행 소득 하위 20%에서 2020년 소득 하위 40%로 늘어납니다. 내년에는 소득 하위 70%까지 기초연금을 받게 됩니다. 한국의 복지도 점차 확대되고 있고, 추세는 '기본소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복지제도는 프랑스 등 서구 부유한 나라들에 비해 아직 미흡한 수준임은 분명합니다. 올바른 복지정책의 실현을 위해서는 시행 전에 제도적 장단점을 꼼꼼하게 살펴 빈틈이 없어야 합니다. 파리의 거지들은 프랑스 복지제도의 맹점을 활용해 살아남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제도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28년만에 전면 개정돼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에 대해 노동계는 "김용균법에 정작 김용균은 없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김용균법은 1년여 전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으로 촉발됐습니다. 그런데 김용균법의 적용 대상에서 화력발전소는 제외됐습니다.


한국 정치의 웃픈 현실입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제도를 만들어도 걱정, 만들지 않아도 걱정. 그렇게 보면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요? 사람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제도를 만들면서 개를 배려해야 하는 것일까요? 개는 개를 위한 제도를 만들 때 생각하면 됩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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