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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국가원수가 방문하면 왜 예포를 '21발' 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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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방홍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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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한 국가의 원수가 다른나라에 국빈방문할 때마다 상대국에서 외교의전으로 예포 21발을 발사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보통 전용기를 타고 오는 국가원수를 공항에서 맞이하면서 쏘며, 국가마다 세부사항은 다르지만 특이하게 국가원수가 방문할 경우에는 동일하게 21발을 쏜다.


20발도 아니고 30발도 아닌, 21발을 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해적이 판을 치던 17세기 유럽의 바다로 올라가야한다. 본격적인 대항해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당시에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유럽의 삼각무역을 잇는 수많은 무역선들이 오고갔고, 이 무역선들을 약탈하거나 무역루트를 독점하기 위한 제해권을 쥐고자 벌이는 해상전도 잦았다. 특히 '해적의 나라'라 불리던 영국에서 오늘날까지 남은 해상관습들이 대부분 비롯됐는데, 예포 역시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포는 당시 해상전에서 항복한 쪽이 더이상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적에게 알리기 위해 했던 무장해제 표시였다. 항복 전 대포에 아직 장전된 잔여 탄환을 모두 소진시켜 현재 함선이 전투에 나설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관습이었다. 당시 함정에 적재하는 대포의 경우, 화약을 넣고 장전하는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미 장전된 대포를 모두 소진시키는 것만으로도 무장해제가 가능했다.


콜럼비아에서 2018년 발견된 침몰 범선에서 나온 대포의 모습. 당시 해상용 대포는 육상에서보다 발포시간이 3배가 길었다. 이런 당시 기술적 한계가 해상에서 7발 쏘던 예포가 육상에선 21발로 늘어난 이유가 됐다.(사진=AP연합뉴스)

콜럼비아에서 2018년 발견된 침몰 범선에서 나온 대포의 모습. 당시 해상용 대포는 육상에서보다 발포시간이 3배가 길었다. 이런 당시 기술적 한계가 해상에서 7발 쏘던 예포가 육상에선 21발로 늘어난 이유가 됐다.(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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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함선들은 적재한 표준 함포수가 7문이었기 때문에 7발의 예포로 항복을 표하곤 했다. 이것이 육상 행사로 넘어오면서 21발로 늘게 됐는데, 이유는 해상보다 육상에서 같은 시간에 3배 빨리 포를 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 예포는 유럽의 기본 외교의전으로 정착돼 왕의 대관식이나 왕의 국빈방문에 주로 쓰이기 시작했다.


21발의 예포를 '로얄살루트(Royal Salute)'라고 부른 이유도 왕들의 행차나 대관식에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인 로얄살루트의 이름도 여기서 왔다. 1953년 6월2일 현재 영국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에서 쐈던 예포의 수를 따서 붙였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고 영국왕이 인도황제직을 겸하게 됐을 때, 인도에서는 101발의 예포를 쐈다고 알려져있으며, 각 지역의 왕, 제후, 토후들에게 직급에 따라 쏘는 대포수를 달리했다고 한다. 직급이 낮을수록 쏘는 대포의 숫자도 줄어드는 방식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1607년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지브롤터 해전을 그린 그림. 당시 전투는 적선의 격침보다는 근접전으로 적의 배와 화물을 뺏는데 더 집중돼있었다.(사진=위키피디아)

1607년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지브롤터 해전을 그린 그림. 당시 전투는 적선의 격침보다는 근접전으로 적의 배와 화물을 뺏는데 더 집중돼있었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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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포 관습이 외교의전까지 올라가게 된 주요이유는 당시 해상전의 특징 때문이었다. 근대초기까지 해상전은 적함을 완전히 파괴하는 현대 해상전과 달리 적의 배를 뺏거나 화물을 뺏는 약탈전에 더 집중돼있었다. 함선 건조비용이 워낙 비쌌던 탓에 아군이든 적군이든 함대 손실이 큰 포격전은 잘 선호하지 않았다. 더구나 사거리와 폭파력이 현저히 떨어지던 당시 대포로는 몇번의 포격으로 배를 완전히 파손시키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로인해 해적들 뿐만 아니라 각국의 해군들도 적의 배를 뺏는데 혈안이 되곤 했다. 캐리비안의 해적 등 18~19세기 해상전을 다룬 영화들에서 1차 포격전이 끝난 이후 배끼리 연결해 백병전을 벌이는 장면이 많은 것도 여기서 기인한다. 내구성이 우수한 프랑스 함선은 영국이, 포격에 강한 영국 함선은 프랑스인이 서로 뺏아 운영하곤했다. 이런 고전적인 백병전은 19세기 말, 거대한 철갑전함들이 바다를 누비면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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