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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담(手談)] '야전사령관' 서봉수의 백발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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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승 최초 달성 '고추장 바둑'
70세 나이에도 젊은 기사들과 명승부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국내 프로바둑 최초의 1000승 기록은 누가 세웠을까. 국보급 기사라는 조훈현 9단일까. 아니면 신산(神算)이라 불리는 이창호 9단일까. 주인공은 의외의(?) 인물이다. ‘야전 사령관’으로 불리는 서봉수 9단. 그는 1994년에 1000승이라는 대기록을 가장 먼저 세웠다.


서봉수는 한국 바둑계의 돈키호테와 같은 존재다. 1953년 2월 대전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생 때 바둑을 시작했다. 동네 기원에서 바둑을 즐겨두던 부친 때문에 인연을 맺었다. 이른바 ‘어깨 너머’ 독학 바둑이다.

배문고 재학 시절인 1970년, 서봉수는 만 17세에 프로기사로 입단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프로생활을 하는 동료 기사들과 비교하면 입단 시기는 늦은 편이다. 하지만 서봉수는 입단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바둑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조훈현 9단과 바둑을 두고 있는 서봉수 9단(사진 오른쪽). [사진제공=한국기원]

조훈현 9단과 바둑을 두고 있는 서봉수 9단(사진 오른쪽). [사진제공=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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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명인전에서 당대 최고수로 인식되던 조남철 9단(당시 8단)을 꺾고 타이틀을 차지했다. 프로 2단(서봉수)이 8단(조남철)을 꺾고 우승한 것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명인전 우승은 일간지 1면 기사로도 실렸다.


보통의 프로 기사들은 탄탄한 정석을 중시한다. 반면 서봉수는 실전성을 중시한다. 뭔가 둔탁한 것 같지만 승부에는 강한 서봉수 스타일은 그렇게 완성됐다. 실제로 서봉수는 일본 유학파 출신이 대세를 이루던 시절, ‘토종 바둑’ 대표주자였다. ‘고추장 바둑, 된장 바둑, 야전 사령관, 토종 승부사….’ 서봉수의 애칭에는 구수한 장맛과 같은 정겨움이 있다.

서봉수 바둑 인생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조훈현이다. 1953년생 동갑내기인 두 기사는 바둑계의 대표적인 라이벌이다. 천재형 정통파 조훈현, 노력형 실전파 서봉수. 바둑 스타일은 달랐지만 두 기사 모두 실력은 출중했다.


1970~1980년대, 두 기사는 이른바 ‘조서(曺徐)시대’를 이끈 주인공이다. 대다수 타이틀은 사실상 두 기사의 맞대결이었다. 조훈현이 타이틀을 방어하고 서봉수가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두 기사의 대결은 결과와 무관하게 특유의 긴장이 있었다.


서봉수는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과 함께 한국 바둑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이른바 ‘4대 천왕’시대. 다만 서봉수는 그들과 비교해서 성적이나 스타성 모두 아쉬움이 있었다. 국내 무대는 이창호라는 벽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반면 국제무대에서는 고추장 바둑의 매서움이 살아 있었다.


압권은 1997년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 한국 대표로 출전한 서봉수는 중국과 일본 기사 9명을 차례로 격파하며 홀로 우승을 견인했다. 국가 대항전 9연승은 세계 바둑사의 기록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기사들에게 서봉수는 공포 그 자체였다.


서봉수 바둑 인생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일군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서봉수도 이제 한국 나이로 70세가 됐다. 백발성성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바둑을 둔다. 그것도 현역 최고수들을 상대로.


올해 추석을 맞아 서봉수는 박정환 9단, 강동윤 9단 등 한국 랭킹 최상위권 젊은 기사 5명을 상대로 속기 대국을 벌였다. 호선(互先)으로 시작해 패하면 정선(定先), 다시 패하면 2점을 깔고 두는 치수 고치기 바둑.


서봉수는 1승 4패를 거뒀지만, 결과 이상의 의미를 남긴 경기였다. 권위와 자존심,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 100세 시대에는 70대도 청춘이라는 것을, 가장 역동적인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인생은 서봉수처럼….




류정민 문화스포츠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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