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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 인상 좋은 이웃·의지하는 애인… 성범죄자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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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 인상 좋은 이웃·의지하는 애인… 성범죄자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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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 "실형이 선고되더라도 전자장치 부착명령만은 기각해주십시오." 지난해 집행유예 기간 중 성추행을 반복한 50대 남성은 법원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그는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보다 출소 후 착용할 위치추적 전자장치, 즉 전자발찌를 더 무서워했다.


전자발찌는 성폭력 사범 등 재범 위험성이 높은 범죄자를 24시간 추적·감시하기 위해 2008년 도입됐다. 억지로 풀면 관제센터의 신고에 따라 경찰과 보호관찰관이 출동한다. 도입 전 5년간 전체 성폭력사범의 평균 재범률은 14.1%였지만, 2020년 기준 재범률은 1.3%로 낮아졌다.

하지만 신간 '나는 전자발찌를 채우는 사람입니다'는 "대한민국은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검찰청에 따르면, 2020년 성범죄는 3만105건 발생했고, 지난 10년 동안 성범죄는 32.9% 늘었다. 저자 안병헌은 "성범죄자를 외모와 인상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정부의 관리를 받지 않고 있거나, 초범일 확률이 높다. 인상 좋고 친절한 이웃, 믿고 의지하는 애인과 가족 역시 성범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친밀감을 내세워 접근하는 그루밍 성범죄, 장소를 가리지 않는 불법촬영, 직장 내 성폭력 등 유형도 천차만별이다. 반려동물을 이용해 피해자를 유인하는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저자는 무도실무관으로서 경험하고 연구한 범행 및 예방법을 소개한다.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한 저자는 10년 간 성범죄자 300여명을 만나 전자발찌를 채웠다. 연령별, 상황별, 장소별 범죄 양상과 예방 솔루션을 책에 담았다.


저자는 직장 내 성폭력에 노출됐다면 주저 없이 폭로하라고 조언한다. 날짜 및 장소, 가해자의 행위, 당시의 대처 방안과 기분 등을 꼼꼼히 기록해 법적 절차에 대응해야 한다. 원룸에 사는 자취생은 현관문 잠금장치 뿐 아니라 창문 방범창이 얼마나 튼튼한지도 확인해야 한다. 비상용 호출기와 호신용품을 비치해두는 것도 좋다. 대중교통에선 사람이 많은 장소에 있어야 성범죄 목격자를 찾기 쉽다.

국가가 제공하는 안전 서비스에 대한 정보도 담겼다. 서울시와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여성 안심 귀가 서비스'는 약속된 장소에서 신원이 보증된 두 명의 안심 스카우트가 집까지 안전하게 동행해 준다. '여성·아동 안심 지킴이집'은 경찰청과 편의점이 공동업무를 체결해 위험에 처했을 때 긴급 대피, 신고, 안전 귀가 서비스를 돕는다. 택배를 직접 받는 게 두렵다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여성 안심 택배보관함'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비스 근처에 사는 범죄자의 신원을 알려주는 '성범죄자 알림e', 성폭력 상담센터 '여성 긴급 전화 1366', '해바라기센터'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등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성범죄는 구조적으로 불평등하고 일상적인 사회적 문제다. 저자는 "대한민국에서 성범죄가 만연한 이유 중 하나는, 성범죄 사실을 알면서도 입을 닫는 방관자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동료의 피해 사실을 알고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무관심한 사람도, 심지어 웃는 사람도 있다. 여전히 조직 내에서 가해자들이 안하무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폭로하는 여성들을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지만, 이런 여성 운동에 무관심한 사람 모두 방관자다.


저자가 밝혔듯 책에서 설명하는 성범죄 예방이 대부분 가해자를 막기보단 '피해자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구성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저자는 당부한다.

"(예고 없는) 범죄는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략) 당신은 범죄 예방을 위해 지금 당장 이론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나는 전자발찌를 채우는 사람입니다 | 안병헌 지음 | 슬로미디어 | 272쪽 | 1만6000원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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