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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규의 야구라는 프리즘]한국은행은 금리인상, KBO는 S존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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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인플레 일어나면 금리인상 등 정책수단 동원
KBO 스트라이크존 조절 비슷, 존 넓혀 투수에게 도움줘
존 규칙에 비해 좁거나 넓다면 누군가는 '부당이득' 취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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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개막한 프로야구는 25일까지 아흔여덟 경기를 했다. 전체 일정의 13.6%를 소화했다. 뚜렷한 특징이 보인다. ‘투고타저’다. 오랫동안 타격에 눌려왔던 투수들이 힘을 낸다. 리그 평균자책점은 3.41. 마흔네 번의 페넌트레이스 가운데 다섯 번째로 낮다. 1993년(3.27) 이후 29년 만에 최저치를 찍고 있다.


삼진과 볼넷 수는 투타 균형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지표다. 올해 타자들은 전례 없이 많은 삼진을 당한다. 삼진을 타석수로 나눈 삼진율은 19.3%로, 역대 가장 높다. 볼넷률(볼넷/타석)은 8.5%로, 역대 열한 번째로 낮다. 역대 최고였던 지난해 기록(10.5%)과 대조적이다. 볼넷률이 2.0%p 이상 감소한 해는 지난해까지 2002년(-2.1%p)이 유일했다.

매년 그렇진 않지만, 대체로 시즌 초반인 4월은 타자보다 투수에게 유리한 달이다. 투수는 개막전에 맞춰 구속 등 투구 능력을 100%에 맞추려 한다. 타자의 스윙 감각은 투수의 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에야 올라온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올해 4월의 투고타저는 너무나 뚜렷하다. 시즌 내내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투고타저를 이끄는 명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KBO는 올 시즌 스트라이크존을 넓혔다. 지난해까지는 야구규칙의 정의보다 높은 쪽 존이 낮았다. 특히 좌우 끄트머리 코스는 야구공(지름 약 7.3㎝) 한 개 반 정도만큼 낮았다. 그만큼 투수는 불리했다. 지난해 역대 가장 높은 빈도로 볼넷이 쏟아진 이유와 무관치 않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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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정책수단을 동원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스트라이크존 조절을 이와 유사한 수단으로 삼아왔다. 득점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스트라이크존을 넓혀 투수에게 이로움을 주는 식이다.

올해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프로야구 스카우팅리포트 발간 작업에 참여하면서 역대 KBO 스트라이크존 변화를 추적해봤다. 1990년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아홉 번의 변화가 있었다. 결과는 한국은행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스트라이크존 변화라는 KBO의 정책수단은 매우 잘 작동했다. 존이 확대되면 볼넷과 득점이 줄어들고, 축소되면 늘어난다는 게 이론적 방향이다. 올해를 포함해 존 변화가 시행된 첫 시즌에 9이닝당 볼넷은 모두 이론적 방향으로 변했다. 평균자책점은 1996년 딱 한 번을 제외하고 존이 확대된 시즌에는 줄었고, 축소된 시즌에는 늘었다.


그런데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KBO는 2010년, 2015년, 2017년에 이어 올해 네 번 연속 존을 확대했다. ‘네 번 연속’이라는 구절에서 존 확대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점이 바로 드러난다. 첫 해에는 의도한 대로 효과가 나타났으나 시간이 갈수록 흐지부지되는 패턴이 반복됐다. 시즌 후반쯤엔 현장에서 "존이 원상회복됐다"는 이야기가 어김없이 나왔다.


지난 23일 열린 다섯 경기에서는 타자 퇴장이 두 건 발생했다. LG 트윈스 김현수와 삼성 라이온즈 호세 피렐라가 주심의 존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 선언을 받았다. 사랑하는 선수가 경기장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본 팬은 비난의 화살을 심판에게 돌린다. 이런 항의가 잦아지면 심판은 타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적극적인 스트라이크 판정을 기피하게 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부작위 편향’이다. 타자의 이익은 곧 투수의 불이익이다. 하지만 투수는 타자보다 심판과의 물리적 거리가 훨씬 멀다. 심판의 심사를 거슬러 받는 불이익도 한 경기에 서너 타석만 들어서면 되는 타자보다 훨씬 크다. 투수보다 타자에게 받는 압력이 심판에게는 더 강한 셈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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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존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가상공간이다. 심판은 물론 투수와 타자에 따라 개인 차가 있다. 오랫동안 야구경기가 치러져 존 모양새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형성됐다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지난해까지 KBO리그에서 이 존은 규칙상 존에 비해 위쪽이 낮았다. 국내 선수와 심판은 아마추어에서부터 ‘높은 공=나쁜 공’이라고 배운다. ‘나쁜 공’을 ‘쳐야 할 공(스트라이크)’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2010년 이후 존 확대가 결과적으로 실패한 이유는 필드 안 사람들의 심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KBO는 과거와 달리 스트라이크존 판정을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 프로야구장에 설치된 트래킹시스템은 투구가 꽂힌 지점의 좌표를 레이더와 카메라를 활용해 측정한다. 메이저리그는 이 시스템을 이용해 실제 스트라이크존을 규칙상 존과 거의 일치시키는 데 성공했다. KBO는 그러지 못했다. 판정 정확도가 아닌 ‘일관성’을 심판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는 정책적 오류도 있었다. 심판이 트래킹데이터로 구현한 규칙상 존에 맞게 판정했는지는 정확도에서 평가된다. 일관성은 규칙상 존과의 일치 여부와 관계없이 심판이 같은 코스에 같은 판정을 내렸는지를 따진다. 일관성을 우선하면 ‘존을 규칙에 맞게 판정하겠다’는 당초 취지는 실현되기 어렵다.


KBO는 올해 존 확대부터 일관성이 아닌 정확도를 평가 기준으로 삼았다. 분명 진일보했다. 하지만 필드 안 사람들에게 그들이 습득해 온 ‘암묵적 존’을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과정도 못지않게 필요할 것이다. 존이 규칙에 비해 좁거나, 혹은 넓다면 누군가는 ‘부당 이득’을 취한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기량을 끌어올려 야구장에 팬을 불러 모은다는 프로스포츠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한국야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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