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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트램이 있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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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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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도시는 둘로 나눌 수 있다. 트램이 있는 도시와 트램이 없는 도시."


언젠가 무릎을 ‘탁’ 치며 읽은 글인데 출전이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 글에서 기막히게 맞아 들어갈 듯한데 원문을 찾을 수 없어 몇 년째 써먹지 못하고 머릿속에만 맴돌고 있다. 그렇다! 트램이 있는 도시는 운치가 있다. 전차가 자동차와 자전거와 사람과 함께 섞여 오가는 풍경은 낯선 도시도 금세 친근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덜컹거리는 금속성 소음, 나무로 된 의자, 백 년은 돼 보이는 낡은 디자인의 전차가 고색창연한 도심을 달린다. 밀라노, 리스본, 뉴올리언스는 트램부터 떠오르는 도시다. 도시가 너무 작아도, 너무 커도 트램은 가질 수 없으니 트램이 있다는 것은 적정 규모의 도시라는 뜻일 터이고 도시 특유의 서정성이 트램이라는 대상을 통해 응축돼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트램은 19세기 초반 서구에서 시작된 도시형 대중교통수단이었다. 유럽과 달리 시내 도로포장이 열악했던 미국에서 선로를 깔고 그 위를 말이 끄는 버스를 정기적으로 운행하던 것이 시초다. 이것이 다시 유럽으로 퍼졌고 증기기관차를 거쳐 전기로 움직이는 노면전차가 돼서 19세기 말에는 세계 곳곳의 100개 이상 도시가 트램을 갖추었다. 그중에는 서울도 있었다. 대한제국 시절인 1899년 일본 동경을 앞서 운행을 시작했고 수도의 이름이 한성에서 경성으로 다시 서울로 바뀌는 동안 내내 있었던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1968년 운행을 중단했는데 이 또한 세계적인 대도시의 추세였다. 자동차가 늘어나 도심이 혼잡해지고 버스와 지하철이 대신한 것이 이유였다.


트램은 지하철보다 경제적이다. 땅속 깊숙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니 간편하고 달리는 동안 도시풍경을 볼 수 있어 훨씬 덜 답답하다. 버스 만큼 자주 정류장을 만들 수 있지만, 쇠바퀴를 달고 있는 엄연한 인프라로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운행한다. 공해와 소음과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친환경적 교통수단이다.


무엇보다 트램은 도시를 서정적으로 만든다. 복고적인 취향이나 향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모이고 서로 교류할 기회를 만들기에 인간적이며 도시적인 교통수단이다. 2차대전 이후 자동차의 폭발적인 보급에 밀려났다는 사실은 전차가 대중교통과 걷기에 중요한 요소임을 역설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집을 나서며 목적지까지 여정을 상상해 보고 한숨이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버스는 오래 걸리고 지하철은 번거롭다. 길고 지루한 환승 통로, 다시 거리로 올라와서는 걷기에도, 다시 버스로 갈아타기에도 어중간해서 한숨이 나왔고 포기하고 처음부터 택시를 탔던 경험이 많다. 그때마다 대부분 길이 막혀서 늦으며 선택을 후회했다. 그에 비하면 트램은 훌륭하고 쾌적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자가용이나 택시 대신 타게 될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서울은 이미 중앙버스 차로가 잘 갖춰져 있어서 당장이라도 트램을 운행할 수 있는 조건이다. 예전처럼 주렁주렁 전선을 매달지 않아도 될 만큼 기술은 발전해 있어 도시미관에 주는 영향은 미미하다. 자율주행도 가능하며 자기부상열차가 도심에 등장하는 미래가 이미 가까이 와 있다.


서울은 너무 크다고? 그래서 더 필요할 수도 있겠다. 트램은 대중교통과 걷기를 활성화해서 도시를 물리적, 심리적으로 쉽게 닿게 하기 때문이다. 트램이 서는 곳마다 인간적인 장소를 만들어 크지만 가깝고, 넓지만 지루하지 않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 서울도 트램이 있는 도시였으면 싶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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