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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공간의 관용

최종수정 2021.11.25 11:01 기사입력 2021.11.2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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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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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아간 어떤 장소가 변함없이 그대로라면 마치 그곳에 옛 기억이 살고 있는 것처럼 반갑고 정겹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들은 조금씩 변해가고 느낄 수 있는 변화와 그렇지 않은 변화가 있을 뿐이다. 하나의 장소가 갖는 감성의 수면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심하고도 이유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그 평온함을 파괴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얼마 전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전체가 커다란 은빛 폴리프로필렌 천으로 덮어졌다. 이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1935~2020)의 유작 ‘포장된 개선문’이었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세계 곳곳에 대지미술 작품을 설치했고 파리의 퐁뇌프, 베를린의 국회의사당 등을 천으로 감싸는 포장된 연작을 제작해 왔다. 개선문 프로젝트는 그가 1961년부터 구상했던 작업이다. 그 공간에 얼마나 많은 상상의 그림을 그려 보았을지 짐작이 된다. 2019년 프랑스 대통령과 정부의 승인을 받아 기술적 점검을 기반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 등으로 설치가 지연되던 중 작가는 타계했다. 프로젝트팀은 설치를 지속했고 작가가 60년을 준비한 이 작품은 결국 16일 동안 우리 곁에서 함께할 수 있었다.

‘포장된 개선문’은 개선문을 보이지 않게 하면서 개선문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개선문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지만 긴 세월을 견디는 동안 전쟁, 축제, 시위 등 다양한 시대적 배경이 돼왔다. 무감각해진 그 장소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의도일까. 크리스토는 역사적 조형물을 선물처럼 포장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보라고 제안하는 것만 같다.


독일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년마다 열린다. 그 기간에는 도시 곳곳이 조형물로 가득하게 되는데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시대적 이슈가 밸런스를 맞추며 꽤나 근사한 작업들이 즐비하게 된다. 영구적으로 남게 되는 작품들도 오랜 고민을 거쳐 신중하게 선택해 10년이 지난 뒤 그 작품과 재회하는 기쁨도 맛볼 수 있다. 공간은 의미 있는 장소가 되고 그 장소는 기억에 기억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매우 느리고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그만큼 쉽게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작품들과 우연히 마주친다. 그럼에도 작품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갑자기 등장한 작품에 대해 큰 불평을 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작품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공공의 장소에 예술작품이 함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차피 공공미술과 함께 가야 한다면 현명하게 거리의 예술작품들과 조우하는 방법은 없을까. 작품들은 공간에서 시작되니 우선 그 공간을 깊이 읽어 보고 작품이 놓여지면 좋겠다. 그리고 향유하는 사람들은 작품과 대면하는 순간 마음의 여유를 충분히 가져 보는 건 어떨까. 분명 크리스토의 작품을 보면서 불편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유의 대상으로서 작품에 의연함을 보였다.


공간은 기다리고 인내하면서 의미 있는 장소가 되어간다. 예술작품이 조화롭게 스며든 공간은 평온을 되찾는다. 이것이 공간이 가르쳐주는 관용이다.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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