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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미두왕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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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 1921년 5월의 마지막 토요일 조선호텔에서는 당시 조선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이 열렸다. 인천부윤(지금의 인천시장)이 직접 축사까지 낭독할 정도로 당시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가한 결혼식이었다. 이 결혼식을 위해 인천에서 특별 객차 1대를 전세내고, 서울역에서 조선호텔까지는 당시 서울 자동차의 1/3을 대절해서 하객들을 수송, 장관을 연출했다.


이 결혼식의 주인공은 당시 ‘미두왕(米豆王)’으로 유명한 22살의 청년 반복창. 일본식 이름 ‘반지로(潘次郞)’로 더 알려진 이 청년은 미곡 선물시장인 인천 미두시장에서 불과 1년 사이에 재산을 1000배로 불린 기린아였다. 미두시장 심부름꾼으로 시작해 모은 돈 400원(현재가치 4000만원)으로 예금만 40만원(400억원)을 할 정도로 큰돈을 벌었다. 이 돈으로 반지로는 인천에서 가장 좋은 집터에 호화로운 집을 짓고 당시 조선 최고의 미녀라는 김후동이란 여인과 초호화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결혼식 비용만 3만원(30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무일푼이던 반지로가 단기간 조선 최고 갑부 대열에 들 수 있었던 것은 증거금으로 미곡 값의 10%만 내고 거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0배의 레버리지 효과 덕에 반지로는 단 한 번의 거래로 18만원(180억원)을 손에 쥐기도 했다.

반지로의 화려한 결혼식이 열린지 100년이 지난 2021년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가상화폐 투자에 빠져있다. 점심 식사를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다 만나는 젊은 직원들은 대부분 휴대전화로 가상화폐 시세를 본다. 대화 주제에도 가상화폐가 단골손님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아예 수업시간에도 가상화폐 시세창을 열어놓을 정도라고 한다.


젊은 세대의 가상화폐 투자 열기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금융위원회가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분기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의 이용자 수는 총 366만여명인데 이중 20~30대가 223만여명이나 된다. 가상화폐 투자자 3명중 2명가량은 20~30대 젊은이란 얘기다.


이들은 이미 부동산과 주식으로 재산을 축적한 기성세대와 달리 자신들은 부자가 될 길은 이제 코인(가상화폐)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 몇몇 코인이 수십 배씩 오르는 사례도 생기다 보니 투자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4대 거래소를 통한 가상화폐의 하루 거래대금만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한 거래대금의 2배를 넘을 정도다.

문제는 가상화폐들의 내재가치를 평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주가수익비율(PER)이니 주가순자산비율(PBR)이니 해서 주식가치를 평가할 수 있지만 가상화폐들은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다 보니 적정가격 추정이 어렵다. 대부분 투자자들이 차트를 보거나 ‘몇 배 간다더라’ 하는 불확실한 정보를 믿고 투자하는 이유다.


김후동과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반지로는 결혼식 직후부터 잇달아 투자에 실패했다. 사면 오르고 팔면 내렸던 미곡 가격은 거짓말처럼 반대로 움직였다. 한때 조선 최고의 거부를 꿈꿨던 그가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완전히 파산하는 데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내재가치가 아닌 수급만 믿고 매매를 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고 투기다. 그리고 투기의 끝은 대부분 허망하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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